공판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치 그들의 거짓말 대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김용국의 처 가 따라왔다.
“남편이 진실하지 못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요”
긴장한 얼굴이었다. 가난해도 정직한 사람을 보면 맑은 샘물을 본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남편 김용국이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숨기는 걸 느끼고 있었다. 재판장도 계산된 정직성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오늘 방청 온 회장 측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내가 궁금해 하면서 물었다. 연극 같은 법정보다 그 뒷 무대가 그들의 저의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님이 부리는 사람들이 전부 출동했어요. 법정 내려오는 계단에서 회장님을 만났는데 저보고 ‘좋은 변호사 구했구만 잘 해봐’하고 빈정 대시더라구요. 회장님이 뒤에서 전체를 지휘하고 계시는데 친척들 말이 로펌에 거액을 줬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은 무죄로 빠져 나간대요. 로펌의 높은 변호사들이 뒤에서 검찰과 법원 고위층까지 움직일 거래요.”
요즈음 로펌은 고위직에 있던 법조인을 영입하기도 했다.
“남편 김용국씨를 위해 증언해 줄 친구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이 지난번 너무 나쁘게 말했다. 그걸 희석시켜줄 어렸을 적 친구가 필요했다.
“남편이나 마기룡을 다 아는 고등학교 동창 한 분이 보일러기사로 있어요.그렇지만 여기 올 시간은 없을텐데.”
“그럼 내일 같이 가 봅시다.”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발로 뛰어야 한 사람의 얘기라도 더 들을 수 있다. 그들의 고교시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다음날인 토요일 인천 쪽으로 가는 오후의 지하철은 붐볐다. 나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김용국의 처에게 물어 보았다.
“회장부인과 싸운 적이 있어요?”
수사기록 중에 간단히 그런 내용이 있었다.
“남편이 잡혀 오기 전이었어요. 회장부인인 고모님이 울산의 분식점 앞에서 저를 보자고 했어요. 어떻게나 치밀한 여잔지 고모는 그때도 기록이 남는 비행기는 절대 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자기 차도 타지 않고 버스로 다녔어요. 분식점 앞에 대놓은 빌린 친척차 안에서 만나자고 해서 그 차 안으로 들어갔죠. 모자를 쓰고 커다란 썬글래스를 쓰고 있더라구요
.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있는 거예요. 차안에 들어가 인사를 했는데도 도무지 말을 안 해요. 녹음이라도 할까봐 그랬나 봐요. 그때 저는 정말 화가 났어요. 남편이 베트남까지 도망을 갔는데 고모인 회장부인은 뭔가 설명이 없는 거예요. 전 그 치밀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멍청한 남편이 이용당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 집 파출부를 좀 해봐서 인간성을 알아요. 제가 막 따졌죠. 이렇게 된 판에 이젠 고모라던가 회장부인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제가 남편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요. 진실이 뭐냐구요?
그랬더니 고모가 자기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 말에 제가 모를 리가 있느냐 뒤에서 다 시켜놓고 같이 일한 걸 아는데 그렇다면 어디 경찰서에 가서 진실을 같이 따져보자고 덤볐죠. 말하는 도중에 고모가 나보고 도대체 조카며느리라는 게 어디 이따위 버릇이 있느냐고 뺨을 한대 갈기더라구요. 저도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해서 같이 덤벼 들었어요”
어느새 차창 밖으로 부천역이란 간판이 보였다.
“그 다음은 어땠어요?”
회장부인은 김용국의 처가 산통을 깨지 않을까 걱정을 했을 것이다.
“며칠 후에 시누남편을 통해 연락이 왔어요. 제 남편이 총대를 메주면 50억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회장이 시누남편에게 그렇게 얘기했대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 했어요”
“나이 많으신 고모님이 죄 값을 받으시고 젊은 조카인 우리남편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면서 거절했어요.”
“그 돈을 받고 싶은 유혹이 없었어요?”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거절하기 힘든 금액이다.
“회장부부는 철저하게 남 줄 돈 안주고 해서 부자 된 사람인걸 제가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또 속아보세요. 평생 얼마나 한이 남겠어요? ” 그녀는 회장부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참 변호사님”
그녀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죽은 정혜경이 머리에 총을 여섯 발 맞고 죽었잖아요?”
“그랬죠”
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총을 여러 발 쏜 건 원한의 표현이 아니겠어요? 저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처음에 회장부인이 쏜 걸로 알았어요.”
일리가 있었다. 마기룡은 프로가 아닌 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침착하게 죽이기가 힘든 것이다.
“사위여자관계를 폭로한 처음의 그 전화는 어디서 온거죠?”
내가 물었다. 괴 전화를 한 사람도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사귀던 여자 아니면 중매쟁이라고 해요.”
“그 외 이 사건에 대해 생각나는 게 없어요?”
그들이 흘려버린 한조각의 진실이라도 발견해 내고 싶었다.
“한참 나중에야 이해한 사실이 있어요. 회장부인이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그게 맞냐? 확실하냐? 그런 소리들을 자주 하는 걸 옆에서 들었어요. 전 그때 그 소리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건 독극물 얘기인 것 같았어요. 살인교사가 틀림없어요.”
지하철이 어느새 중동역 플랫폼에 들어서고 있었다.
김용국의 친구가 보일러 일을 한다는 역 근처의 허름한 빌딩은 한산했다. 3층의 제약회사 빈 사무실에서김용국 마기룡의 고교동창이라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국이나 기룡이는 다 고향친구고 동창이죠. 용국이 하곤 어려서부터 불알친군데 그렇게 죄를 질 독한 애는 아닌데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넉넉한 편이었어요. 동창들 모두 뉴스를 보고 놀랐죠.”
그의 표정과 말에서 진실이 느껴졌다.
“김용국은 학교 때 껄렁껄렁하고 싸움을 잘했다면서요?”
고모인 회장부인은 법정에서 그렇게 몰아쳤다. 살인을 할 수 있는 성질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용국이 원래 싸움 못해요. 전혀 그런 소질이 없다니까요.”
“그럼 마기룡이는요?”
“기룡이는 덩치도 좋고 싸움도 잘하는 편이었죠.”
“김용국을 근래에 만나 무슨 얘기를 나준 적이 없어요?”
“글쎄요 한번은 와서 자기가 미행을 하는데 같이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근무 중인 사람이 어떻게 가느냐면서 안된다고 했죠. 아마 또 다른 친구가 미행할 때 몇 번 따라갔을 거예요. 뭐라더라? 돈 받을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마기룡은 어떤 사람이죠?”
난 그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알고 싶었다.
“2002년 2월인가 동창회에서 본 일이 있어요. 기룡이가 잠깐 있더니 일이 있어 가야한다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저보다는 용국이가 기룡이하고 더 친한데서로 아웅다웅하기도 했어요. 서로 어음을 빌려주기도 한 사이고요. 그런데 기룡이는 사채일을 하면서는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았어요.”
“마기룡씨 성품은 어때요?”
“글쎄요 용국이 보다는 좀 사기성이 있다고 할까? 순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허풍이 엄청 세요. 항상 말이 일이백만원이 아니라 몇 억 몇 십억 해요. 보일러공하는 나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기가 죽어요. 말이 안 통하는 거죠.”
“마기룡씨는 무슨 일을 한다고 합디까?
”
“어디 가서 빚 받아내는 게 전문이래요. 그것도 용국이가 전한 말이지 기룡이는 자기가뭘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평소 선한 사람은 그런 일 못하잖아요? ”
“두 사람 성격을 비교한다면 어때요?”
“글쎄요 마기룡이는 책임을 전가하는 성격은 아니예요. 자잘한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김용국일 겁니다.”
그가 옆에 있는 김용국의 처를 보면서 멋쩍은 듯 말했다. 처는 아무 말 없었다. 긍정하는 표정이었다.
삼십분 후. 나와 김용국의 처는 역 부근의 허름한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착한 성격이라고 친구가 그러는데 왜 이 사건에 말려 들었을까요?”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인 고모가 남편에게 자기말만 잘 들으면 뭔가 해 줄 것처럼 남편을 꾀었을 거예요. 순진한 남편이 그 말을 믿고 한 면도 있을 거구요. 그렇지만 전 돈 한 푼 받아본 적 없습니다. 지금 생활비도 제가 파출부일을 하면서 법니다.”
그녀는 내가 돈에 대해 의심할까봐 미리 막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회장부인이 무기징역이라도 받으면 가장 좋은 사람이 첩일 거예요. 지금 애가 학교 갈 때가 됐는데 정식으로 그 집 사모님이 될 위치니까요. 그런 면에서 회장부인 김귀숙도 알고 보면 불쌍한 여자예요.
사랑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니까.”
그 말에 난 문득 짚이는게 있었다. 회장의 변호방향이었다. 재판장은 이미 노골적으로 유죄의 심증을 나타내고 있었다. 로펌의 변호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회장측은 김용국 부부와 마기룡 그리고 심지어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 까지 오히려 자극하고 있었다. 정의택과 김용국의 처가 다음증인으로 결정되었다.
2004년 1월 29일 오후2시 40분. 창문하나 없는 법정 안은 묵지룩하고 불쾌한 기운이 흘렀다. 미리 법정에 온 나는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붉은 얼굴의 회장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앞으로 회장부인의 자매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명이 나와 눈길이 부딪치자 입을 삐죽거리고 흰눈을 치켜 올렸다.나는 내가 발견한 진실을 글로 적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사역시 그가 알아낸 진실을 법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판사들은 그 싸움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회장부인과 내 의뢰인인 김용국과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난 회장 측에서 돈으로 입을 막으려는 그 사실자체도 글을 통해 폭로했다.
회장은 재판이 끝나면 나를 고소하겠다고 김용국의 처를 통해 협박해 왔다. 청부살인도 하는 사람들에게 협박은 아무것도 아닐지 몰랐다. 이왕 나선 김에 김용국의 처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이차로 공개적으로 확실히 할 계획이었다.
방청석 반대편에 그들이 죽인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이 고개를 떨 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피해자인데도 방청석의 대다수인 회장 측 사람들은 자기네를 피해자로 착각하고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 이제 재판시작 5분전이었다. 무료한 듯 서기가 책상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다른 손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속기사가 모니터를 보면서 공상에 잠겨 있었다.
법정 벽 위에 매미같이 달라붙은 시계의 바늘이 정확히 세시를 가리켰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법정으로 등장했다. 벽 쪽의 문이 열리면서 회장부인의 찡그린 얼굴이 보였다. 절룩거리면서 나오는 그녀는세상의 고통을 혼자 다 진 표정이었다. 그 뒤를 따라 구깃한재소자복을 입은 김용국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 역시 입이 잔뜩 부어있었다. 바로 뒤에 마기룡이 붙어있었다.
마기룡은 허리를 낮추고 본능적으로 주위의 공기를 살폈다.
이윽고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씨가 증인석에 올라와 앉았다. 정말 치밀한 공작을 하려면 회장은 설사 살인교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를 설득해야 했었다. 그러나 반대였다.회장부인의 공판담당 변호사가 일어나 정의택에게 물었다.
“증인은 진실을 밝혀 죽은 딸의 영혼을 밝힌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돈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죠?”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해서 이 사건의 일심판결이 나기도 전에 회장부인을 상대로 24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전 재산을 압류했죠?” 변호사는 정의택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죽은 딸이 발견됐을 당시 범인들은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그런 상태에서는 회장부인을 살인죄로 걸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전 독자적으로 살인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검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민사로라도 진실규명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그런 목적인데 그렇게 거액을 청구하신건가요?”
변호사의 어조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제가 상담한 변호사는 회장부인 같은 그런 여자는 미국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천억이나 이천억이라도 받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서 그걸 다 빼앗아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증인은 회장부인에게는 그렇게 민사배상을 청구했으면서도 김용국이나 마기룡은 그냥 놔두셨던데 왜죠?”
“저 두 사람은 회장부인의 돈으로 망가진 불쌍한 살인도구들입니다. 내가 그런 인간들에게 돈을 청구하기 싫었습니다.” 회장측은 철저히 그를 매도했다. 나도 김용국의 변호사였다. 한번쯤은 회장 측의 시각으로 정의택을 의심해 봤다.
그러나아니었다. 그는 무관심한 권력과 거대한 금력 앞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수사해 달라고 사정하는 초조한 아버지한테 술과 뇌물을 얻어먹으면서 탐욕의 눈길을 번들거리던 형사들을 증오했다. 차라리 시골의 순박한 형사가 조사를 다 해주었다고 했다. 그랬다. 돈은 경찰도 검찰도 변호사도 그 누구도 마취시켜 사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증인 한 가지 다시 참고삼아 묻겠습니다.”
검사가 끼어들어 물었다. 그는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집요한 수사의지로 회장부인은 공판정에 선 것 같았다. 변호사지만 속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회장부인인 김귀숙은 정의택씨가 언론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자기가 억울하게 범인이 됐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회장부인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언론플레이라는 말을 쓴 자체가 순수하지 못한 정치성을 느끼게 했다.
“사건이 터지고 수많은 기자들이 접근하고 인터뷰하자고 했습니다. 제 딸이 살해된 게 뭐가 그렇게 명예로운 일이겠습니까?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한번은 동아일보에서 ‘여대생이 알고 지내는 남자의 장모 구속’이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피가 끓어올라 제가 그 기자에게 항의했습니다.이종 사촌 오빠를 알고 지내는 남자로 표현하느냐고 말이죠. 그런 식이면 당신 외삼촌은 알고 지내는 여자의 동생이냐고 물었죠. 다음부터 그런 원색적인 제목은 없어졌습니다. 애비로서는 정말 언론과는 얘기도 하기 싫고 힘들었습니다. 지난 설날 모란공원에 뼈로 차갑게 남아있는 딸을 보고 왔습니다. 한창 즐거워야 할 청춘에 우리애가 왜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합니까?”
그는 특히 문제의 발단인 조카 김판사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얘기해 주는데요 김판사 자기 때문에 내 딸 혜경이가 살해당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얼마전 법원부장과 김판사 그녀석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김판사는 이 사건을 너무나 남의 일 같이 생각하는 태도라는 겁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놈이라 대학때부터 이종사촌인 우리 혜경이가 좋아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은 그런 놈을 판사로 쓰고 있습니까?”
그의 분노가 재판부의 가슴에 투사되고 있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제가 이 재판 전에 이 글을 한부 드렸는데 읽으셨습니까?”
“읽었습니다.”
나는 내가 발견한 진실을 기도하고 적었었다.
“잘못 쓰거나 진실에 어긋난 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일단 진실은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게 태도라는 생각이다. 변호사가 돈에 취해 사실을 왜곡하면 그건 또 다른 범죄다.
“딸의 시신을 처음 봤을 때 감정을 얘기해 주시죠.”
“우리 혜경이가 죽은 지 열흘이 됐는데도 내가 갔는데 눈을 한쪽 번쩍 떴어요. 그리고는 입을 씰룩거렸습니다. 저는 그런 걸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한 맺힌 딸의 영혼이 가지 못하고 나를 기다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허억”하고 마른 울음을 터쳤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그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는 철저히 침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말을 계속했다.
“죽은 딸의 하얀 얼굴을 보고 처음에는 총에 맞은지 몰랐습니다. 양미간에 구멍이 보여서 굵은 송곳에 찔린 줄 알았어요. 이미 경찰이 얼굴에 피를 닦아 놓은 것 같았어요. 판사님들은 수사를 하지 않으면서 민적거리는 형사반장이나 죽은 애 아버지가 사주는 밥과 술을 느긋하게 쳐 먹는 제 마음을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차마 제가 세부적인 사항은 말씀 못드리겠습니다만 인터폴에 협조하는 것 까지 저 아니면 이 사건 밝히지 못했을 겁니다.”
“이 넥타이를 보세요”
그가 자기가 매고 있는 포도주색 넥타이를 가리켰다.
“이건 죽은 딸 혜경이가 선물한 겁니다. 저 악마 같은 더러운 여자가 끝까지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 따라가서 우리 혜경이 복수를 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재판이 열릴 때마다 이 넥타이를 매고 나옵니다.”
그가 한 맺힌 얼굴로 고개를 돌려 회장부인을 바라보았다. 기세등등하던 회장부인이 순간 움찔했다. 나는 다음질문으로 들어갔다.
“증인역시 살해되실 뻔 했죠?”
그 말에정의택씨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야! 이 놈!”
순간 마기룡의 목이 자라같이 들어갔다.
“네가 날 죽이려고 할 때도 내가 험하게 대하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내 딸을...”
정의택이 울부짖었다. 그가 재판장을 보면서 절규했다.
“재판장님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을 바쳐서 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싶습니다.”
법정에는 냉냉한 법만 아니라 그런 피해자의 격분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사회적분노도 판사들의 가슴에 저며 든다. 나는 그 순간 회장부인에게로 무심코 시선이 갔다. 기가 죽을 만 한데도 회장부인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검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녀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재판장이 허락하거나 말거나 그녀가 소리쳤다.
“저 사람은 말이죠. 소설을 쓰고 있어요거짓말입니다.”
나는 악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eomsangik/40022167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