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변 어른들은 내가 특별하다고 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어딜 가던 듣던 말 이었다.
어떤 이는 내가 예언가의 운명을 타고났다고도 한다.
가끔 나도 모르게 내 뱉는 말 중에 앞으로 일어날 일이 있던 적이 많다. 무슨 초능력이나 심령술 같은 것은 아닌 것 같고, 꿈속이나 공상 중에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를 보고 말을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비슷하거나 다르지만.
이런 특별한 관심은 내가 성인이 되고 취업을 해 도시로 떠난 후에야 잦아들었다.
내 이름은 장혁수. 현재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온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다. 내 꿈은 그냥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살다 죽는 것. 소박한 꿈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전진중이다.
항상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오늘 또한 특별함은 없다. 출근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퇴근을 하고. 만원버스 만원지하철에 찌는 듯한 여름 무더위만이 있을 뿐이다.
도시로 이사한지 올해 딱 3년째다. 성격 탓인지 사람을 쉽게 사귀지 못해 친구랄 것도 없다. 퇴근 후 항상 집에서 티비를 보다 잠드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릴 때 느꼈던 이상한 느낌들이 자주 든다. 뭔가 뒷목을 누르는 듯 한 느낌과 입에서 나는 쇠맛.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거나 떠오르기 전에 있던 증상들이다. 이상하다. 최근 몇 년간 없던 증상이 다시 나타나서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건 최근 들어 집 주변에서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신경과민일까. 이상한 기분을 뒤로한 채 또 잠이 들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일어나 티비부터 켜고 아침을 준비했다. 일 때문에 바빠서 못 본 영화들을 볼 참이었다. 소박하게 아침을 차려놓고 식탁에 앉으려는데 현관 쪽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일요일에 누가 왔나싶어 현관 쪽으로 가니 현관 문 밑에서 밀어 넣은 듯 한 편지봉투가 신발장에 있었다. 황당하기도 하면서 호기심에 냉큼 집어 내용물을 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조만간 뵙게 될 거에요. 제가 누군지 궁금하시겠지만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S-"
순간적으로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윗집 아가씨인가? 아니면 회계파트에 박대리?’
나름 귀여운 상상을 하곤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여름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르고 저녁 퇴근길에 무식하게 쏟아 붓고 있었다. 우산은 있으나 마나였다. 최대한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피면서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앞을 못보고 어떤 사람과 부딪혔다. 긴 생머리에 검은 옷을 입은 뭔가 예쁘면서도 창백해 보이는, 그리고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있는 여자이었다. 몇 초간 우산은 펴다 만 채로 그 여자만 쳐다보다 놀라서 사과부터 했다.
“죄, 죄송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미처 앞을 못보고..”
그 여자는 당황해서 사과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얼굴에 미동하나 없었다. 그 상태로 어색하게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더 사과를 할까 하다가 대꾸도 없으니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려는데 뒤에서 그 여자가 내 옷깃을 잡아챘다. 순간 너무 놀라서 뒤를 돌아보다 넘어졌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물었다.
“왜, 왜 그러시죠?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또 물끄러미 쳐다만 볼 뿐 말이 없었다.
‘에이씨..장난하나...“
속으로 중얼대며 일어나는데 그 여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혁수씨..이렇게 또....만났네요......”
난 분명히 처음 보는 여자인데 내 이름을 말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를 아세요? 저는 처음 뵙는 듯 합니다만..”
“네. 잘 알아요.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어디서 스쳤거나 그냥 나 몰래 짝사랑 했거나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니. 그 여자는 마치 서로가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말을 했다. 때마침 비도 조금 잦아들기도 했고 호기심이 발동해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지만 상대는 여자고 난 남자니까 걱정할건 없었다.
“저를 알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한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잠깐 앉으시죠.”
그렇게 그 여자와 나는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내가 질문을 하려는 순간 그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실 지금 이렇게 둘이 앉아서 대화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이렇게 돼 버리면 혁수씨나 저한테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위험하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저를 어떻게 알고 계신지...”
그 여자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뭔가 하는 듯 했다.
뭔가에 쫓기는 듯 한 불안한 행동처럼 보였다.
“누굴 기다리시는 건가요? 대답하기 힘드시면 안 해도 좋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는 않군요.”
나는 답답해서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몇 마디 하고 가버렸다.
“곧 또 보게 될 거에요. 다음부턴 저번처럼 쪽지로 남길게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정류장에 앉아서 그 여자가 가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아! 저번에 현관으로 쪽지를 밀어 넣은 사람이 저 여자구나!“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서 쫓으려 했지만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굴까..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스토커인가?’
찝찝한 기분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그러려니 하기에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계속 생각이 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낯선 얼굴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회사 일로 만난 사람도 아닐 것이며 지인의 지인도 아니다. 분명했다. 그런데 꼭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을까.
그렇게 잠이 들고 정말 오랜만에 꿈을 꿨다. 그 여자가 나왔다. 어젯밤 봤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밝고 맑은 모습. 꿈에서의 시점은 나였다. 나를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어제의 그 여자와 그 여자를 보며 소리 내어 웃는 나. 한적한 노천카페에서 그 여자와 나는 연인처럼 웃고 있었다. 실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기분으로 잠이 깼다. 아직도 궁금하고 의아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이런 기분을 뒤로하고 또 언제나처럼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약간은 멍하게 밥숟갈을 뜨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셨다.
“우리 아들, 밥은 잘 묵고 사나? 일은 힘들지 않고?”
“네.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마침 아침밥 먹으려던 참이었어요.”
“요즘은 꿈같은 거 안 꾸나? 이상한 사람들 조심하레이.”
“이상한 사람이요? 누구요?”
“아니다. 세상이 흉흉하니께 사람 조심하레이.”
오랜만에 전화하셔선 알 수 없는 말을 하시곤 끊으셨다.
‘어제 일과 관련이 있나? 요 며칠 이상하네..’
최근 들어 다시 꾸게 되는 꿈과 스쳐 지나는 사진 같은 장면들. 그리고 어젯밤 그 여자.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온 몸을 감싸 돌았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하면 대략 한 시간쯤 걸린다. 일단 버스를 타려면 골목골목을 지나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골목들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도 별로 안보였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내려가고 있는데 내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놀라서 돌아봤지만 사람은 없었다. 어제부터 계속 이상하다. 그 여자일까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골목 끝이 다 왔을 때 비루한 옷차림의 한 노인이 앞길을 막아섰다.
“자네. 나를 알아보겠는가? 나를 기억하는가?”
조금 다급한 말투로 다짜고짜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뇨. 처음 뵙는데 누구신지..”
“....일단 바쁘지 않으면 잠깐 시간좀 내줄 수 있겠나?..”
“아, 지금 출근하는 길이어서 어려울 것 같은데..왜 그러시는데요?”
황당했다. 어제는 모르는 여자가 나를 알아보더니 이제는 노인까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다.
“지금 꼭 얘기를 해야 하네. 제발 잠깐만 시간을 내주게...”
노인은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부탁했다.
“그럼 저쪽 놀이터에서 잠시 얘기하시죠.”
그 노인과 함께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노인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네. 다른 사람과는 아주 다르지. 물론 자네 같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네만..일단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게. 부탁이네.”
“네, 말씀하세요.”
“어제 자네를 안다는 어떤 여자가 찾아왔을걸세. 물론 자네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는 자네를 아주 잘 안다고 했겠지. 나 또한 그 여자처럼 자네를 아주 잘 알고 있네.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지금 다 얘기하자면 너무 기네. 일단은 자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주려고 자네를 찾아왔네.”
“제가 위험해지다니요? 뭐가 위험하다는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됩니다. 무슨 일인가요?”
“빠른 시일 내에 어떤 사람들이 자네를 찾아올걸세. 정부에서 왔다거나 경찰 운운하면서 자네를 데려가려 할걸세.”
“네?! 경찰이 왜 저를..전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요....”
“자세하게 말해줄 수 는 없지만 일단은 다른 곳으로 피해있으면 안되겠나? 믿을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꼭 그래야만 하네.”
노인이 하는 말들은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최근 일어난 일들과 다시 시작된 꿈들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던 건 사실이다. 일단 노인에게는 알았다고 한 뒤 다시 출근을 재촉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노인의 말과 어젯밤 그 여자가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고 혼자 휴게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공상을 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뭔가가 머리를 스쳤다.
‘그 노인!’
나는 부장에게 얘기한 뒤 조퇴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노인을 마주쳤던 골목과 놀이터부터 찾아 갔다. 왜 일까. 왜 머릿속에 스친 장면에서 그 노인이 죽어있는 것을 본 것일까. 집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30분을 돌아다녀도 그 노인을 찾지 못했다.
‘있을 턱이 없지..’
그렇게 체념하고 집으로 갔다. 계단을 오르는데 어젯밤 그 여자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뭐라도 물어보고 싶은 생각에 계단을 뛰어 올랐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에 봤던 그 노인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이, 일단 119에 신고를...!!!!!!”
“안 돼요! 신고..하면 안 돼요!...”
그 여자는 내 휴대폰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아니 지금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뭐 하는 짓입니까!”
“안 돼요..신고하면 그들이 찾아올 겁니다..당신이 여기 있는걸 그들이 알면 안 돼요....”
“아니 대체 어제부터 여기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까지..대체 무슨 말들을 하시는거에요!”
나는 다시 휴대폰을 빼앗아 119에 신고를 했다. 쓰러져 있는 노인을 잠시 살피는 동안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내 구급대가 오고 노인을 근처 병원으로 데려갔다. 물론 나도 보호자격으로 동승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응급 수술실 앞에서 서너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을 마친 의사가 마침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괜찮습니까?”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조심스례 말을 꺼냈다.
“일단 생명에는 지장은 없습니다. 혹시 어떻게 다치신건지는 아십니까? 두개골 골절이 심합니다. 전신에 타박상도 심하고요. 뭔가에 세게 타격을 입으신 것 같아보이네요. 경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의식이 돌아오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전 그저 집에 가는 길에 저희집 계단에 쓰러져 있는걸 발견한 것 뿐이고 사실상 보호자는 아닙니다. 일단 위기를 넘겼다니 다행은 다행이네요..”
몇분 후 노인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는 병원 로비에 앉아 경찰에 신고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중이었다.
‘아까 그 여자는 갑자기 어딜 가버린거야. 이거 괜히 나만 복잡한 일에 말려든거 아냐?“
혼자 속으로 중얼대며 온갖 상상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 입구쪽에서 거무틱틱한 정장을 입은 장정 여러명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사뭇 정부요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나 또한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그냥 그려려니 했다. 한참을 로비에 앉아 생각하다가 중환자실 면회시간이 돼서 노인을 찾아갔다. 분명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이동하는걸 봤는데 없었다. 환자 명단에도 빠져있었다. 다급히 간호사실로 가서 물어봤지만 조금 전에 보호자 여러명이 와서 데려갔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로비에서 봤던 검은 옷의 장정들이 떠올랐다.
‘아차!’
이제야 대충 실마리가 보였다. 그 노인이 이야기 했던 정부나 경찰쪽에서 왔으리라 짐작이 갔다. 그런데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범죄자인가, 아니면 그 쪽 사람이었던가.
마치 영화에나 나올법한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는데..’
마음속엔 아쉬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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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소설(?) 이라는걸 써봅니다..
부족한 점이 많을거라 생각이 되네요~
마구마구 지적 부탁 드립니다 (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