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중국에는 바다를 무대로 세계에 진출한 역사가 전무에 가까웠다는 한계를 특징 짓는 역설이 되기도 합니다.
정화와 그의 대함대의 규모에는 중국에 있어 큰 의미가 발견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중국인들만이 아닌, 세계 역사에 있어서 정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그가 바로 콜럼버스에 앞서 미리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확한 해도를 남겨,
이 영향으로 유럽 해양국가들의 해양 확장정책이 절정을 맞아 인류 발전의 가속화 시대를 불러일으켰다고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총 7번의 원정을 했다고 하는데,
영국 해군 출신의 연구자 개빈 멘지스에 따르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화 함대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당연하겠지만 아메리카 대륙에 거점으로 정착지를 두었을 정도이며(이건 확실함. 내가 대항해시대를 해봐서 아는데...남미에서 숨겨진 마을 들러서 보급 안하고 그냥 항해 계속하면 굶어죽거나 선상 반란 일어남 ㅇㅇ)
남미 대륙과 호주, 뉴질랜드까지 발견했으며 심지어는 마젤란 해협도 통과,
남십자성과 노인성의 천문학적 재발견 등을 수립한 대단한 업적들이 모두 그의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콜럼버스,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과 같은 사람들의 발견은 정화에 비해 뒤쳐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화가 제작한 해도를 그들이 소지하였고 그 바탕으로 그들의 여정이 있었다는 거지요.
결국,
개리 멘지스의 연구에 따르면
산업시대에 이르기 전까지 인류 부흥을 이끌어온 대항해시대는,
결국 정화에 의해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리 멘지스의 연구와 정화 함대의 신대륙 발견 등의 업적에 관련된 자료들이 신빙성이 높고 기정사실화 하여도 무리가 없는 것일지라도,
아직은 세계 역사학자들의 정설로서의 '콜럼버스 신대륙 최초 발견'을 대체하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앞으로 '정화 신대륙 최초 발견'이 주류에서의 입지를 키워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그 업적들이 종전처럼 계속 콜럼버스, 마젤란 등의 인물들이 그대로 타이틀을 쥐고 있다는거죠.
그런데 정화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면 고작 반세기 정도 후의 콜럼버스 발견 때까지 신대륙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은 대단치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왜?'라는 의문이면서 동시에 '따라서'가 되기도 합니다.
무슨 의미인고 하니,
정화가 불러일으킨 유럽의 대항해시대란,
결국 대해적시대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잉카 제국 멸망사는 다 아시다시피,
엘도라도의 황금전설에 집착한 스페인 모험가들의 비열한 책략과 백인들이 자신들의 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란 예언에 집착하던 잉카인들...그러니까 양국 문명의 조우가 약탈과 피착취로 점철된 대표적인 예일 것인데,
대항해시대의 유럽 항해국가들은 모두 항해활동을 통한 부를 축적하기 위한 목적이 신 영토 발견의 의미 그 자체였으므로 잉카와 스페인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관계는 없었던 것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가령, 모험가들이 국가에 신대륙 발견을 위한 모험 항해의 투자를 요구하면, 왕과 대신들은 투자한 만큼의 보물과 자원을 대가로 요구합니다.
반대로 모험가가 먼저 그 대가를 떡밥으로 던져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었구요.
문제는, 모험가고 왕족이고 대신들이고...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까, 신대륙이나 아시아에는 보물로 뒤덮인 야만국가가 있어서 보물이 땅바닥에 굴러다닐 정도,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팽배했다는 거죠.
그래서 엘도라도 전설처럼 대단히 황금이 많은 것도 아닌 잉카가 계속해서 황금을 내놓으라는 어린아이 같은 스페인의 독촉 끝에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갔고...
혹은 황금을 비롯한 보물들을 대신하기 위해 고무 따위의 사치 자원들로 대체하는 식으로 노동 착취를 당한다거나 하였는데,
만약 정화가 아메리카 대륙의 첫 발견자라는 타이틀로 세계사가 정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콜럼버스의 잔여 타이틀은 '노예상인, 포주, 세계로의 성병 확산자'라는 그랜드 슬램만이 남게 됩니다.
콜럼버스 역시 왕가에 보물 헌납을 약속하고 투자를 받아 결국 인도 대신 신대륙을 발견하였는데,
환영을 표하는 이곳 원주민들을 학살하여 주종관계를 명확히 한 뒤,
금이 잔뜩 산출될거란 믿음을 가지고 막대한 양의 금을 요구합니다.
물론 이것은 충족될리가 없었을 뿐더러, 에스파냐로부터의 보물 독촉이 다가오자
원주민들을 노예로 팔아넘기기 시작합니다.
물론 금을 채취하는 인원은 남겨두어 계속 금을 요구하였을 뿐더러,
여자는 자신과 뱃사람들의 성노리개로 이용하면서 또한 매춘부로 '다른 형태'의 노예로서 본국에 팔아넘겼죠.
콜럼버스 일당의 이 문란한 ㅍㅍㅅㅅ 과정 속에, 아메리카 대륙에 소수로만 존재했던 매독이 대거 창궐,
콜럼버스는 유럽/아프리카/아시아로 연결되는 우리의 구세계에 매독을 전파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혁혁한 업적을 세워 설령 그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역사상에 이름을 분명하게 새긴 인물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자신도 매독에 걸려 사망하였다고 하죠.
원주민 학살이 약 2천만명 추산에, 매독 전파로 인하여 사망한 역사상의 인구수를 더한다면...
제노사이더로서는 콜럼버스가 히틀러에 밑진다고 하면 섭섭할 지경이라고도 하겠죠.
아무튼,
정화가 이러한 악행을 저질러 역사에 분명한 기록을 남겼더라면,
그가 아메리카의 최초 발견자로 이름을 남겨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런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또한, 콜럼버스의 계란 궤변과 함께 그를 위인전을 통해 배우고 기억해왔으니.
이렇듯, 정화에 의해 만들어진 신대륙과 남극이 표현된 해도가 바로 그 오파츠 세계지도의 정체이거나 기원이라고 할진데...
사실은 정화 이전에도 신대륙이 미리 발견되어졌다는 설이 있고, 또한 여기에는 고고학적 보증이 어느 정도 뒤따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모험자의 정체가 뭔고 하니
바로 길 잃은 바이킹!
배타고 설치는거 하면 유럽 역사에선 바로 바이킹인데,
이 털쟁이들이 자신들의 항해 솜씨 가지고 인근 국가의 마을을 습격해 약탈, 방화, 파괴혼돈망가! 만을 수행했다고만 한다면 이미지가 너무 싱겁겠지요.
(얘네는 그냥...숲에서만 사는 산적이던가?)
이들 바이킹의 신대륙 발견 전설에는,
980년대의 반 뱃사람 반 농부인 헤르욜프손이 그린란드로 가다가 폭풍우를 만난 끝에 어딘가 처음 보는 땅에 도착했고,
그냥 어리숙하게 '여긴 어디야 몰라 무서워 집에 가고 싶어 엉엉'을 외치며 그린란드로 돌아왔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왜 거기 정찰해서 우리 땅으로 개척할 준비 안했냐'라고 빈축을 샀다는 이야기올시다...
라고 얘기 끝나면 싱거우니까,
두번째 전설입니다.
딱 1천년이 되던 해, 에릭손은 새천년 11세기에 헤르욜프손의 표류기로부터 들은 거도 같고 아닌 거도 같은 땅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이길 빈란드, 헬루랜드, 마크랜드라고 나누어 부르게 하였는데, 다행히도 정착지를 만들어서 빈란드를 충분히 탐색한 뒤 그린란드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린랜더의 모험담'에 기록된 내용으로는, 에릭손은 그린란드로 돌아와 빈란드가 곡물과 과일 등의 식량이 풍부하고 기후가 좋은 곳이라 선전하여 이주를 위한 두번째 모험을 떠났는데,
이번에는 빈란드의 원주민 스크라엘림들과 마주쳐 전투 끝에 사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전설에는 뒷 이야기가 따르는데,
1960년대에 고고학자들이 캐나다의 동북쪽 부근에서 바이킹 유적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들 고고학자가 그곳이 바이킹 유적지라고 확신할 만한 것은 바로 철기, 동기 등을 비롯한 제련, 대장기술과 관련한 것들이었는데
이것은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에스키모의 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을 뿐더러,
선박 잔해와 정착지로 보이는 곳의 건축 양식들이 바이킹의 바로 그것이라는 거였죠.
결국 이 발견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콜럼버스의 그것에 비해 매우 미미하지만
분명히 바이킹은 아메리카에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도착했다! 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바이킹도, 정화도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착하였는데
왜 여전히 대항해시대의 업적들이 최초이자 최고의 의미로 여겨질까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대륙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지만 그들의 재화와 노동력을 통하여
유럽의 항해국가들은 많은 부를 축적하였고,
이것이 대국적으로는 인류 문명 발전의 가속에 기여하였으며
신대륙으로의 이주와 구대륙 문명의 확장과 발전에 따라 기록된 역사가 풍부해졌기 때문일 따름이겠죠.
이쯤에서 요령좋게 결론을 내어봅시다.
교조적인 진리를 흉내낸다 조롱받을지는 몰라도,
단순 흥미거리 미스테리 이야기이건, 역사 이야기이건, 결과적으로는 다 같은 것이 발견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살해당해왔습니다.
20세기 이전엔 야만과 무지가 학살을 불러왔고
20세기는 히틀러, 무솔리니, 쇼와 일왕과 일제 군부가 저지른 것처럼
지식인들이 지성, 상식, 논리를 오히려 학살의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파시즘의 피해자로서 20세기를 통과하여 21세기를 맞았구요
그런 우리 손에서, 다시금 지식과 논리, 상식을 빙자하여 비인간성을 생산하는 파시즘이 되살아나서는 안되겠지요.
지구 상에는 더 이상 새로 발견할 대륙 따윈 없지만, 전제주의 부활의 국가들에 끼여 살고 있는 우리가 파시즘의 비인간성을 저항하는 전위대로서의 한국이 된다면, 그 또한 신세계 개척으로의 업적 아닐까요.
칙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