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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의 사람 여럿 살린 바보짓.
게시물ID : military2_27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파마늘판타지
추천 : 14
조회수 : 2746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7/12/04 04:15:19

  일본 해군의 파일럿 선발 과정은 대단히 엄격했습니다.

  할거 다 해 놓고 수료 전날 군복 단추를 제대로 잠그지 않았다고 퇴교시키는 등의 사소한 규정 위반으로도 파일럿이 될수 없는 등 쓰잘데기 없는데서 엄격한게 문제지만.(...)

  그 왜...북한 공군이 김정은 앞에서 비행기 모형 들고 지도 위를 걸어다니는 훈련을 하는 짤이 있었지요?

  그거 원조가 이양반들 입니다.

  후보생들을 일열로 주루룩 세워 놓고는 이륙하는 상황을 가정해 점프를 하는게 정식 훈련 과정이었다는군요.-_-;;;

  훈련 과정이 이따위인지라 1936년 1500여명이 입교한 카스미가우라 항공대에서 최종 선발 과정까지 살아 남은 후보생은 36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닌게...

  여기서 한번 더 걸러 내겠답시고 한가지 과정을 더 추가해 26명까지 줄이려 했다는데 말이죠, 그 과정이라는게...

  동경대에서 골상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와서 손금을 보고는 "명줄이 짧은 손금인디?" 하면 그친구는 불합격.(...)

  이런 어이없는 양성 과정덕에 매년 배출되는 수송기 조종사(전투기 말고!)가 100명 안팎으로 왔다갔다 했답니다.

  ...그것도 평시에.-_-;;;

  많아 보인다구요?

  일본 해군은 2차대전 기간동안 2900대의 항공기를 굴리던 거대한 항공대를 보유한 군사집단이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보다 조종 난이도가 낮은편인 수송기 조종사가 연간 100명 내외인데 전투기 조종사를 1년에 수십명 양성해 봐야 필요한 조종사 소요를 감당할수 있을리가 없지요.

  이러다 보니 전쟁때는 파일럿의 공급이 부족해졌고, 결국 규정을 많이 완화시켰는데, 이번에는 교육과정까지 완화시켜서 전쟁 전에 양성되어 실전을 겪으며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에이스 파일럿들의 눈에는(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도저히 파일럿으로 봐주기 힘든 약체들이 대량 양성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진주만 공습 당시 카가와 아카기에 배속된 제 1 항공전단의 파일럿들은 얕은 수심에 어뢰를 착수시켜 명중시키기 위해 어뢰에 나무로 만든 부품을 달아 부력을 증가시키고 초 저공으로 날며 미군의 대공포를 피해 뇌격을 하는 묘기에 가까운 전술을 구사했습니다.(제 1 항공전단은 중일전쟁에서 실전을 치르며 경험을 쌓은 일본 해군 최정예 항공단이었습니다.)

  당연히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실제로 1항전 역시 이 초저공 뇌격을 연습하던 중 사망자가 나오는 등 혹독한 훈련을 한 끝에 이런 묘기를 부릴수 있었습니다.), 신참 조종사들로 구성된 쇼카쿠, 즈이카쿠의 제 5항공전단은 비교적 안전한 임무를 수행하며 전원 생환할수 있었지만 1항공 전단은 전사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당장 1항전이 이런 베테랑들이었고, 5항전등의 기타 항공대들도 경험치를 쌓아 베테랑이 된 와중에 교육도 야메로 받은 오합지졸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뭐...

  그나마 대우가 좋았냐 하면...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일본의 파일럿들중 장교 계급을 받고 싸운 사람은 일부에 불과 했습니다.

  많은 파일럿들이 부사관, 심지어 병계급을 받고 근무하고 있었고(당장 장갑 항공모함 다이호에 발사된 어뢰를 이륙중 발견하고 기체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몸으로 막고 전사한 고마츠라는 파일럿의 계급이 상등 비행병조였습니다. 상등병조라는건 한국군 상사에 해당합니다.), 개중에 살아서 장교계급을 받아 진급한 사람이 제가 알기로 두명인가 그렇습니다.(...)

  그중 한명이 그 유명한 사카이 사부로 중위.

  연합군, 특히 미군이 일단 파일럿이 되면 기존 계급이 뭐건 간에 최소 소위 계급을 보장 해 준 이유가 파일럿에게 장교로서의 책임감을 부여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는걸 생각 하면 일본군의 파일럿 대우는 그냥 욕나오는 수준이었던겁니다.-_-;;;

  일본 해군은 한반도에서 병력을 징병했던 육군과는 달리 식민지인은 믿을수 없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자국민을 대상으로만 징병을 실시 했는데, 나중에는 징병 대상자가 씨가 마르다 보니 항공대와 육전대(해병대), 그외의 지원부대에 한해 조선인 병력을 받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전대(해병대)의 경우 사실상 좌천이라고 할 정도로 진급길 막히는 지름길이었고, 수병들 간의 가혹행위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지원부대는 좀 사정이 나았지면 역시나 육상근무였고, 조선인들에게는 절대로 함정 근무를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윤응열 소장이 공고급 순양전함 3번함 하루나에 승조한적이 있는데 하루나 소속 승조원으로서가 아니라 기지 이동을 위해 타고 갔던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항공대는? 이라고 하실수도 있는데...항공대에 파일럿으로 입대한 경우도 꽤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윤응열 전 공군 소장이라거나...

  이 경우는 그냥 자폭 공격용 생체 CPU로 받아들인거라 사실상 해군 수뇌부는 내 놓은 자식 취급이었고, 오히려 일선 근무를 하는 일부 지휘관들이 '귀중한 파일럿을 이따위로 낭비한단 말이냐!? 이런건 작전이라고 할수도 없다!' 면서 조선인,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파일럿들을 보호하려고 했다는군요.(...)

  이때 정말로 조선인 파일럿들을 전우로 인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시 일본이 밀던 내선일체에 감화되어 '너는 조선인이지만 우리 일본인과 다를게 없다. 그러니 너는 우리의 동료다.'라는 식으로 한바퀴 꼬아 보호 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의외로 육군에도 이런 이유로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전쟁 전, 이 쓸데없이 엄격하고 의미없는 선발 과정으로 인해 탈락한 병력들은 정비병으로 재교육을 받아 각 항공대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합격한 파일럿들이 일본제 항공기의 막장스런 성능으로 연합군에게 잡아 먹히거나, 자폭공격으로 의미없는 죽음을 맞이할때 이 사람들은 그래도 꽤나 높은 확율로 생존할수는 있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철수 시에는 파일럿이 1순위 철수 대상이라 정비병들이 버려지거나 보병으로 징집당해 육전대로 떨어지는등(...) 막장상황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일본군 항공기의 높은 정비불량 비전투 손실의 원인중 하나로서, 나치 독일 루프트바페의 파일럿들이 정비병을 데리고 가겠다고 무전기까지 때다 버려버리고(조금이라도 기체 중량을 줄여 한명이라도 더 살려 보겠다고.-_-;;;) 정비병들을 우겨넣듯 태운 뒤 탈출을 시도하여 성공하곤 했던 상황과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었죠.

  실제로 일본의 떨어지는 공업 수준 뿐만 아니라, 이런식으로 숙련공을 천대하는 인식이 일본군의 패전 이유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뭐 결국 일본의 이런 바보같은 양성 과정 덕에 하늘에서 죽을뻔 했던 사람들이 그나마 좀 더 안전할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해군은 기술군이다 보니 육군보다는 덜했지만(오히려 아카시, 아사히 등의 공작함에 승조하는 기술자들은 민간인 신분으로 군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기껏 실전에서 구르며 정비 실력을 쌓은 정비병을 보병으로 징집하는 꼴을 보면 육군은 어땠을지 안봐도 비디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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