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작성글에서 제 글의 출처가 미스테리 프로그램 '서프XXX'라는 댓글을 보고 빡친 나머지,
이번에는 그 방송을 한번 까볼까 합니다.
저는 글을 쓰기 전에 TV를 보지 않으므로 표절이 나올 수가 없지만(물론 예전에 읽어둔 학술지식이나 잡식들을 가지고 쓰는 것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사실 TV도 없습니다) 그 방송을 까려고 해도 별로 본 적이 없어 깔 것도 실상 없습니다.
근데 밥집에서 순대국밥 먹다가 본 거 중에 좀 어이 없었던 내용이 하나 떠오르네요.
바로 바벨탑 전설과,
그 중에서도 언어의 확산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주제는 이걸로 가겠습니다.
(짤방은 거장 요코야마 미쓰테루 선생의 전략 60권 바벨 2세)
바벨탑의 떡밥이란 역사학적으로도 고전문학적으로도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어서,
꽤나 많은 대중서사의 모티브로 활용되어 왔던 축에 속합니다.
하지만 좀 더 시기를 빠르게 하자면,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이 이 바벨탑 떡밥에 헉헉대었다는 것이 바벨류의 시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나 로마 시대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시대로서
각종 합리적인 사상과 과학, 예술이 발전되는 시기였다면,
그 뒤에 찾아온 기독교 봉건사회에 의해 서양사는 대 암흑기를 맞게 됩니다.
지동설과 천동설의 문제로도 잘 알고 있으실테고,
그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여자 역할을 남자가 연기해야 했던 것처럼
신에 의한 사회가 도래하게 되면서,
인간의 예술과 학문은 정체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바로 르네상스냥?)
당대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서
신에 종속되는 학문과 예술을 하기보다는,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을 위한 그것을 해보자,
그리스 시대의 그것으로 회귀하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바로 르네상스죠.
해서,
오페라도 이때 그리스 시대의 악보를 발굴, 이것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오페라에는 인간사의 정욕이 꿈틀거리는 내용이 꽤나 많이도 담겨져 있지요.
(이게 바벨탑입니다 바벨탑)
이렇듯,
예술가들은 신을 떠나서 자유로운 주제와 의도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의 유력한 소재가 바로 바벨탑이었습니다.
화가들은 자신이 남길 마스터피스의 주제를 구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고
바벨탑을 그리기 위해 중동에도 방문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바벨탑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고
또한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들이 평소 보아오던 유럽 건축 양식과 중동 지방의 건축물은 판이하게 달라서,
중동에서 발견한 특이한(자신들이 보기에) 건축물을 보고 그것을 모티브로 바벨탑을 그리는 것이 일대 유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모티브가 된 건축물이 무엇인고 하니,
지구라트였던 겁니다.
피라미드, 치첸 이사와 더불어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 건축물로 강력한 떡밥을 주고 있는 바로 그 건물인데,
이 부분은 짧게 얘기하면 그저 왕권, 신권(혹은 대신관의 그것)이나 고전적인 왕과 신의 일체권이 피라미드 스타일의 건축물로 그려진 것일 뿐,
외계인을 가져다 붙이는 것은 무리한 것일테지요.
원래, 인류의 무리 문화와 무리 지도자의 강화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만한 양식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 밖에도,
회교국 나선형 첨탑의 테마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거 같군요.
그런데,
다들 익히 알고 있는 바벨탑 전설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중동 문명,
그러니까 수메르나 메소포타미아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일까요?
물론 아니란거죠.
그럼 어디서 튀어나온 이야기가 쌩뚱맞게 그들 민족의 역사를 이리도 대중적인 것으로 규정지었는가 하면,
바로 기독경입니다.
홀리 바이블.
세계 유력의 베스트셀러이니까,
아무래도 그 내용의 지배력이 막강했던 것이죠.
그들 나라의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구비문학 등으로 전해져내려오지도 않는 이야기가,
'성경'이란 단어를 독차지한 기독교의 경전에는 실려있고, 그것이 대중들에게는 정설인 것마냥 믿어지고 있다?
벌써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이 기회에 까보기로 한 그 '깜놀' 방송에서는,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신에게 닿을 만큼 높이높이 쌓다가 신의 분노를 받아 바벨탑이 무너졌고,
또한 그 과정에서 당시의 유력 문명이자 국가이던 바빌로니아의 사람들의 언어를 신이 서로 뒤섞어놓아,
언어가 통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의 언어 갈래가 생겨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가하였죠.
(물론 방송이니만큼 이거 믿어라! 가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 그게 미스테리 아니겠어? 하는 흥미 본위에 불과한 어법과 책임소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근거로,
아빠, 엄마, 맘마, 하는 등의 단어들이 여러 국가의 여러 언어들에서 대부분 비슷하게 나타나지 않느냐, 는 거였는데요.
실상 그 말만 듣고 보면 그럴 듯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의 언어들끼리 유사점이나 혹은 같은 의미의 비슷한 발음이 더러 제시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습니다.
까놓고 보면 세상에는 미스테리 따위는 없는 셈입니다.
일본과 한국, 중국은 같은 한자 단어를 놓고 그 발음이 그대로 옮겨지면서 각국 언어에 맞게 적응된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발음이 같은 경우도 있죠.
특히 한국어와 일본어만 비교해보면, 한국어의 한자 발음이 종성과 중성에서 매우 제한적이다보니 이것이 무너져 일본어로 정착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가능한 것들이 널려있죠.
아예 일본어는 기원적으로 한국어와 동계라는 설도 있습니다.
영어나 불어, 독일어 따위의 유럽의 언어들끼리의 유사성은 두말할 것도 없겠죠?
사족을 붙이자면,
한국어가 알타이 어족이라는 가상의 언어군에 속한다면, 영어 따위의 유럽의 언어들은 인구어족에 속합니다.
유럽 언어의 대부분의 기원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출발했다는거죠.
그런데,
이러한 언어 체계와 계통도 상 고대 바빌로니아와 바벨탑 전설의 설정이 잘 맞지 않죠?
인도에서 발생한 언어 체계인데 뜬금없는 중동이라니...글쎄?
(가엾고 딱한 방송이로다!)
그리고 방송에서 예로 제시되었던,
엄마, 아빠 / 마더, 파더 / 마마, 파파
하는 것들은 모두 같은 의미의 비슷한 발음이기는 하지만
모두 초성이 순음이거나 전체적인 발음상 순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에서 순음, 반치음, 하는 것들을 들어보셨을텐데,
순음은 바로 입술소리입니다.
그리고 입술소리는,
가장 발음하기 쉬워 아기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발음이죠.
엄마, 아빠를 음마, 빠빠, 등으로 아기들이 발음하시는 것도 보셨을테고,
응가, 맘마라는 우리 말이라거나 푸, 피라고 하는 영어에서의 대소변 발음도 아실텐데요.
어린 아이의 언어 체득상 순음부터로의 습득은 필연적이고,
이러한 성격 탓에 서로 다른 계통의 언어끼리도 같은 순음이라는 한계 하에, 또한 어린 아이의 필요성의 문제에서
같은 의미의 비슷한 발음이 발생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 밖에도
각 국 간의 언어 전파라던가, 언어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어 온 부분을 감안하면 이상할 일도 아니라는 거죠.
다음으로는,
과연 바벨탑이 기독교 경전에 기록된 것처럼 신을 모독하는 의도로 지어졌느냐는 문제가 남아있겠네요.
바벨탑 전설의 오랜 모티브를 준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지구라트는 마르두크의 지구라트라고 하는데,
지구라트 대부분이 보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만,
위에서 제시한 복원도에서 보았듯
완전한 형태에서도 크기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엥?
이제 인간이 신을 넘어섰어, 하는 의도로 하늘의 신을 찌르듯 건축한거라며?
아닙니다.
그만한 높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 종교인들은 실제 높이가 중요한게 아니라 신을 모독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건축물이었기에 신벌을 받은 것, 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라는 거죠.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브갓네살 2세 曰, 내가 지구라트를 좀 지어봐서 아는데...오해다. 잠시만 기다려달라.)
앞서 말했다시피,
바벨탑이 신을 모독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기독교 경전에 의한 것입니다.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의 후손들인 지금의 중동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쾌해하죠.
애초에,
바벨탑이라는 단어조차 바빌론에서 무리하게 따와져 만들어진 단어가 아닌가 여겨지고 있으며,
이러한 곡해가 실리지 않은 실제의 발음은
바브-일,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신들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곳'
이란거죠.
그러면 누가 이러한 정 반대의 곡해된 내용을 퍼뜨리거나 기록했는가,
하면
역시나 원작자인 유대인들의 소행을 따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바빌로니아에 잡혀간 유대인 노예들의 수는 상당했다고 하는데,
개뿔 욕만 나오는 모래밭에 천막 쳐놓고 사는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바빌로니아 문명의 건축물이 컬쳐쇼크 그 자체였다는 거죠.
아마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그들이 바빌로니아로부터 탈출해 돌아왔을 때 전해준 이야기 내용들이 상상에 의해 부풀려지면서 그러한 형태를 띈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에는 왜 이러한 인식이 지속되고 있는가 하면,
우선은 바벨탑 전설에 대한 흥미 본위적인 접근을 일단 짚을 수 있겠죠.
다음으로는 미/중동간 대립, 그러니까 민족과 국가, 전통 문화 방위를 위해 결집한 회교도 세력과 미국과 유럽 연합의 기독교 세력의 대결 구도에서
기득권을 가진 서방세력의 문화가 우위를 점하고 악역을 넘겨주어 점철한 문제도 있을 겁니다.
또 한가지가, 르네상스 이야기를 거론할 때 들었던 것처럼
근본주의적 종교인들에 의한 문제인거죠.
물론 그네들의 종교 교리상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단순한 민담이나 신화 등의 고전문학적인 입장으로 접근, 감안해야 할 부분을 신에 의한 실제의 역사로 고정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지나치다는 겁니다.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의 시야를 가리는 데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이번엔 특히 이 경우.
인간을 위한 종교로 만들어 가느냐,
종교를 위한 인간이 되고 마느냐,
이 모두가 사람 손에 달려있는 것인데,
이 때문에 인간은 너무도 오랜 세월을 맹인처럼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