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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와일드싱'의 전설, 미치 윌리엄스
게시물ID : baseball_21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he_Guevara
추천 : 0
조회수 : 18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15 19:27:49
윌리엄스는 이렇게 던지고 나서 자주 넘어졌다 ⓒ gettyimages/멀티비츠 비록 우타자에 애틀랜타 출신이긴 하지만, 영화 <더 팬>에서 웨슬리 스나입스의 모델은 누가 보더라도 배리 본즈다(스나입스는 본즈의 귀걸이까지 하고 있다). 한편 영화 <메이저리그>에서 스나입스가 맡은 발 빠른 1번타자는 리키 헨더슨을 떠오르게 하지만, 영화상에서 그의 이름은 윌리 '메이스' 헤이스다. 그렇다면 제구력이 엉망이었던 주인공 리키 본(찰리 신)의 모델은 누구일까. 폭발적인 강속구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제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비운의 주인공이 된 미치 윌리엄스일 것이다. 영화에서 찰리 신의 별명은 '와일드 싱(Wild Thing)'이었는데, 영화 개봉 이후 윌리엄스의 별명 또한 그랬다. 윌리엄스는 고교 졸업반이었던 1982년 샌디에이고로부터 8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심각한 제구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1985년 윌리엄스는 마이너에서 132이닝을 던지면서 175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165개의 볼넷을 내줬다). 1984시즌이 끝난 후, 샌디에이고는 윌리엄스를 보호선수로 지정하지 않았고, 텍사스는 룰파이브 드래프트를 통해 윌리엄스를 데려갔다(텍사스는 이후 윌리엄스를 샌디에이고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트레이드로 데려온다). 1986-1988년 3년간 불펜투수로서 가능성을 보인 윌리엄스를 다시 데려간 팀은 시카고 컵스였다. 1989년 컵스는 텍사스에 3명의 선수를 내주고 윌리엄스가 포함된 6명을 받았는데, 컵스가 내준 3명 중 2명은 라파엘 팔메이로와 제이미 모이어였다. 영화 <메이저리그>가 개봉한 그 해, 윌리엄스는 컵스의 마무리를 맡아 4승4패 36세이브 2.76를 기록한다(비록 11블론을 범하긴 했지만). 1991년 또 다른 팀이 윌리엄스를 데려갔다. 꿈 같은 마이크 슈미트-스티브 칼튼 시대가 끝나고 하위권으로 처져 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윌리엄스는 필라델피아에서 1991년 12승5패 30세이브 2.34, 1992년 5승8패 29세이브 3.78, 1993년 3승7패 43세이브 3.34를 기록하며 마무리로 자리를 잡았다. 윌리엄스는 좌완으로서 99마일의 강속구를 뿌렸다. 마크 그레이스가 마치 불이 붙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고 한 그의 공은, 타자들이 뿌려지는 시점을 찾아내기가 대단히 어려워 실제 구속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졌다. 그 당시 시애틀에서 마구 '볼 질'을 해대고 있었던 랜디 존슨의 불펜 버전이었던 것. 윌리엄스의 통산 피안타율인 .218는 빌리 와그너(.187)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존슨(.221)보다는 좋다. 한편 1993년 윌리엄스는 등번호를 28번에서 99번으로 바꾸게 되는데(영화에서 리키 본의 등번호가 99번이다), 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보기만 해도 불안해 보이는 리프팅탑 자세 ⓒ gettyimages/멀티비츠 윌리엄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온몸을 쥐어짜듯이 던졌기 때문에 제구가 대단히 불안했던 것. 심지어 윌리엄스는 공을 던진 후 마운드에서 자주 넘어졌다. 만화 주인공인 독고탁의 실사판이었던 셈이다. 공을 던진 후 넘어지다 보니 수비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윌리엄스의 통산 수비율은 .840으로 그렉 매덕스(통산 .970)는 물론, 당시 리그 평균인 .955와도 거리가 한참 멀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는 1루주자를 견제구로 잡아내는 데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면서 통산 691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24개의 보크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역시 공짜 출루였다. 윌리엄스가 기록한 9이닝당 통산 7.08개의 볼넷은 메이저리그에서 5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최고 기록이다. 윌리엄스를 제외하면 7개를 넘어가는 투수는 아무도 없다. 근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엉망인 제구를 보였던 선수들에는 이시이 가즈히사, 다니엘 카브레라, 빅터 삼브라노 등이 있는데, 이들의 9이닝당 볼넷수는 5.65개, 5.24개, 5.15개로 윌리엄스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 수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윌리엄스는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것(49개)보다 더 많이 타자를 맞혔다(52개). 이렇게 늘 살얼음 판을 걷는 듯했던 그의 경기는, 결국 대형 사고를 불러오게 된다. 1993년 필라델피아는 97승을 거두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서부지구 우승 팀 애틀랜타와 격돌했다.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준우승 후 그렉 매덕스를 새로 영입한 애틀랜타는 104승을 거둔 그 해 메이저리그 최강 팀이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예상을 깨고 애틀랜타를 4승2패로 꺾었다. 윌리엄스는 1차전과 5차전에서 두 번의 블론세이브를 범했지만 팀은 연장전 끝에 승리했고, 6차전에서는 마지막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내고 포수 대런 돌턴과 얼싸안았다. 월드시리즈 상대는 2연패에 도전하는 토론토였다. 필라델피아는 4차전에서 8회초에만 6점을 내주며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이 나온 경기를 패했지만(토론토 15-14 필라델피아), 5차전에서는 에이스 커트 실링의 완봉 역투에 힘입어 시리즈 탈락 위기를 넘겼다. 다시 장소를 옮겨 스카이돔에서 치러진 6차전. 필라델피아는 1-5로 뒤진 7회초 레니 다익스트라의 스리런홈런 등으로 5점을 내며 6-5로 극적인 역전, 최종 7차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7차전에는 챔피언십시리즈 MVP이자 5차전 완봉승의 주인공 실링도 불펜 대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9회말 1사 1,2루에서 윌리엄스가 조 카터에게 던진 5구는 왼쪽 펜스를 훌쩍 넘고 말았다. 1960년 빌 마제로스키(피츠버그)의 7차전 끝내기홈런에 이어 월드시리즈에서 나온 2번째 '시리즈 끝내기홈런'이었다. 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친 조 카터 ⓒ gettyimages/멀티비츠 충격적인 패배 이후, 윌리엄스는 필라델피아 팬들로부터 엄청난 살해 협박을 받았다. 경찰이 집을 보호하고 가족들을 피신시켜야 할 정도였다. 더불어 많은 필라델피아 팬들은 윌리엄스가 1986년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블론세이브를 범하고 몇 년 후 권총 자살을 한 도니 무어의 뒤를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다. 윌리엄스를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었던 필라델피아는 그를 휴스턴으로 트레이드했다. 윌리엄스는 1994년 휴스턴, 1995년 에인절스, 1997년 캔자스티에서 뛰며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 3년간 윌리엄스는 7.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9이닝당 12.5개의 볼넷을 내줬다. 한창 때인 32살의 나이로 유니폼을 벗은 윌리엄스는 은퇴 후 필라델피아 근교에 볼링장을 차렸다. 그리고 매일 같이 볼링을 쳤다. 그의 볼링공 제구는 야구공 제구보다 훨씬 나았다. 1996년 필라델피아 베테랑스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번외 행사에서, 윌리엄스는 조 카터와 볼링 대결을 벌여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카터는 학창 시절 뛰어난 볼링 선수이기도 했다. 그 날의 조심스런 등장 이후, 윌리엄스는 필라델피아의 라디오 해설가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MLB 네트워크의 분석가로 활약하며 'Wild Thing Southpaw Salsa'라는 살사소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인생 참 뭐 같네요. 나 들어갈 자리를 내가 직접 마련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믿어주세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네이버 스포츠 기사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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