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관종새끼'가 자살한 그 사건에 대해 담희, 소랑, 계철, 오형, 선실 다섯 사람은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아니, 우리뿐만 아니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관종새끼'를 아는 누구나라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잘못은 '관종새끼' 그 자신한테 있었다. 그 뿐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관종새끼'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 관종새끼를 끔찍하게 사랑하던 어머니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하는 걱정이외에 다른 걱정은 없었다. '그 일'은 그저 마음 속에 묻어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썰렁한 분위기가 다섯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드문드문 친척이 앉은 테이블이 몇 보였을 뿐 또래나 그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람들은 찾을 수가 없었고,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도 담을 쌓고 지낸 '관종새끼'의 말로가 이런 것인가싶은 실감이 그 순간 다섯 친구 모두의 마음 속에 들어왔고, 그것이 이상하게도 인생의 어떤 비의감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을 맞이한 관종새끼의 누나에게 어머니가 왜 보이지 않는지 물었을 때 병원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고, 그순간 어머니를 맞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그 일'에 대해 말해야 했던 건 아닌가하는 뒤늦은 후회가 그들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저기, 사실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깐만..."
그렇게 말하고 관종새끼의 누나는 신위 옆 상주방으로 갔다가 잠시 후 원색의 편지봉투 몇 개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지열이가 (유서랑 함께) 남긴거야."
그렇게 말하고 "오형아.", "선실야"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관종새끼의 누나는 오색의 편지지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 순간 그들에게 떠오른 생각은 '그 일'이 있던 날 관종새끼가 그들에게 물었던 말이었다.
"담희는 분홍색 좋아하는 거 알고, 한 사람씩 좋아하는 색깔 하나씩 골라봐.턱으로."
지금 그들의 손에 쥐어진 편지지는 그때 그 공포의 순간속에서 그들이 마지못해 택했던 바로 그 색이었던 것이다.
"보고싶어서 왔지."
'그 날', 야근을 마친 자신을 찾아온 관종새끼에게 어쩐 일이냐고 오형이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우리 회사 어떻게 알았어?"
자신이 나온 빌딩쪽을 가리키며 오형이 물었고, 웃으며 관종새끼가 손에 든 스마트폰을 톡톡 두드렸다.
"페이스북 친구잖아, 우리."
그때 오형은 겁이 났다기보다 혐오감이 들었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관종새끼를 바라봤고, 한심하다는 뉘앙스가 전달되도록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오늘 피곤하다. 다음에 하자."
관종새끼는 여전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술 마시자고 온 거 아냐."
"그럼?"
"나랑 잠깐 어디 좀 가자."
흰 종이가 깔린 빈소탁자에 앉은 다섯 친구는 잠시 말없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선실과 소랑의 눈빛은 살짝, 그리고 담희의 눈빛은 '아주' 젖어 있었다. 홍어회무침과 떡, 플라스틱에 담긴 육개장과 밥이 나오고도 오랫동안 가라앉은 분위기는 이어졌다.
"진짜..."
빈소를 돌아본 계철이가 뭔가를 말하려다 삼켰고, 그 옆에 앉은 오형이가 먼저 붉은색 봉투에 담긴 자신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이 나머지 친구들도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이 손에 든 편지 봉투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소랑만이 소주병을 따 종이컵에 따른 다음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잠시 그렇게 편지를 읽는 시간이 이어졌고, 그러다 의외의 장소에서 오열이 터져나왔다. 평소에 관종새끼와 가장 친하지 않았던 선실이였고, 이어서 담희의 울음보가 터졌다.
"미친 새끼, 이렇게 갈려고 우리한테 그 짓을 벌인 거야?"
우리들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로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그들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함정이었기 때문에...
"야, 뭐하는 거야?"
싫다는 오형이의 소매를 붙든 관종새끼는 택시를 잡아 뒷좌석에 옛 친구를 밀어넣었고, 자신도 올라탔다. 내리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한 오형이는 어깨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는 건데?"
"우리집."
기가 찬 표정으로 오형이는 관종새끼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는 늘 주인공대접을 받아오던 녀석이었다. 나이를 쳐먹고도 그 유치한 주인공 의식이 남아있는 모양인지 모임에는 나오지도 않는 주제에 이렇게 한 번씩 엉뚱한 일을 벌이는 녀석이었다. 오형이는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끌어올랐다. 택시가 도착한 곳은 큰길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어둑한 골목 한 켠이었고, 오형이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던 곳이었다. 관종새끼가 택시비를 치루는 동안 오형이는 택시에서 내렸다. 고색창연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스산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퇴락한 동네에서 바람을 맞고 있자니 한결 더 억울한 느낌과 이런 데서 장난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야, 나 진짜 오늘 가야돼.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
골목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가 유턴해서 나오는 택시를 오형이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자."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관종새끼가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을 때 뚜렷한 협박의 기세를 오형은 느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오형이가 하기 시작한 것은...
관종새끼가 자기 집 문을 열었을 때 녹색의 뭔가가 번들거리는 모습이 오형이의 눈에 먼저 들어왔다. 무릎을 꿇고 있는 네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오형은 관종새끼의 그 작은 원룸안에서 지금 저 네 친구가 청테이프로 뭔가 게임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내 그들의 입을 보고 그들이 묶여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았을 때 오형이의 목에서 억하고 신음이 터져나왔고, 다음 순간 관종새끼의 손에 쥐어진 손수건이 오형의 얼굴을 덮쳐왔다. 오형이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담희는 그때 지금 자기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을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공포로 눈물이 났고, 신음을 계속 했지만 그 소리는 테이프에 막히고 말았다. 이제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때 연인이었던 관종새끼가 벌이고 있는 이 미친 짓이 도저히 사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한 예전의 관종새끼는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관종'이라는 유행어가 없던 그 시절에도 관종새끼는 관종새끼였다. 한 때는 그 자신감이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랬는데...
관종새끼의 이 조그만 원룸에 가장 먼저 잡혀 들어온 것은 담희였다. 담희를 이곳으로 끌어들일 때 관종새끼는 야비하게도 자신이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그녀가 운영하는 데코샾에 찾아왔던 것이었고, 그곳에서 담희로써는 정말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현기증이 나는 연기를 해댔다. 놀란 자신이 119에 전화를 하려고 하자 '그냥 집에 데려다 달라'고 관종새끼가 말했다. 처음에는 물론 말도 안되는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종새끼의 슬픈 눈빛이 담희에게 별안간 예전 사귀던 시절의 애틋함을 상기시키게 만들었고, '그래, 집까지는 바래다 줄 수 있겠지.'하는 약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서도 담희는 관종새끼를 어렵게 어렵게 집까지 끌고 갔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관종새끼의 태도가 바뀌었다. 지금 데리고 들어온 오형이에게 하는 짓을 자신에게 똑같이 저질렀던 것이다.
의식을 잃은 오형이가 무릎을 꿇고 쓰러지자 녹색 청테이프로 관종새끼가 온몸을 휘감았고, 마지막으로(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막았다. 신발을 벗기고 그대로 뒤에서 안아올린 관종새끼가 오형이를 이쪽으로 데려오는 모습이 담희의 눈에 보였다. 늘어진 발등이 바닥을 쓰는 소리가 났다. 책장이 있는 왼쪽 끝에 오형이를 돌려앉히자 이제 다섯 명의 인질이 무릎꿇고 앉아 한 줄로 관종새끼를 마주보는 형태가 되었다.
그날...자신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에 대해 곰곰 헤아려 보며 담희는 관종새끼가 자신에게 쓴 편지에서 눈을 들고 빈소를 돌아보았다. 친척들로 보였던 조문객 한 테이블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고, 관종새끼 누나가 테이블을 치우러 걸어가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관종새끼에게 납치를 당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청테이프에 온몸을 칭칭 묶인 채 나란히 무릎꿇고 앉아 그들이 견뎌야 했던 것은 지루함이었다. 새디스트로 변해버린 마지막 순간 관종새끼가 납치해 온 다섯 친구들 앞에서 벌인 퍼포먼스는 끔찍하도록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잘 나가던 왕년의 호시절을 복기해 보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그것은 철이 지날 대로 지났고, 그나마도 어리숙해 도저히 눈뜨고는 못봐줄 공연이었다. '우리는 삶의 프로가 되었어.'같은 썩은 유머를 날리며 룰라의 '프로와 아마츄어'를 부르지 않나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제훈처럼 되지도 않는 서태지춤을 추지를 않나 그 시절 유행하던 엠티괴담이나 택시괴담같은 철지난 무서운 이야기를 나름 분위기를 잡는답시고 불을 끄고 다섯 친구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묶인 상태에서도 다섯 친구는 점점 지루해져 갔던 것이다. 한때 노래를 잘 부르기로 관종새끼가 유명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유머러스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담희 자신도 관종새끼의 그런 점에 끌려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었으니까... 그리고 머릿속으로 '우리는 이제 삶의 프로가 되었다'라는 관종새끼가 내뱉은 말을 곰곰 곱씹으면서 그때 그 시절과는 달리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이나 낭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된 지금 자신의 상황을 반성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생경한 공포와 분노속에서 바라본 관종새끼의 '혼자놀기'는 그야말로 처연할 정도로 지루했다. 지루한 옛날 노래와 옛날 유머와 엣날 넋두리가 끝이 나고 마침내 어디서 구했는지 마바지와 기지바지, 알라딘 구두따위를 꺼내보이고 입어 보이고 신어 보이던 관종새끼가 잠이 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다섯 친구는 그 지루한 시간동안 몰래몰래 움직인 덕택에 이제 제법 테이프로부터 몸이 헐렁해져 있었다. 다섯 친구는 영화에서처럼 서로 힘을 모아 마침내 청테이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 두 시가 채 안 된 시간에 자신들이 잡혀 온 그 좁은 방에서 나오면서 다섯 친구는 이 사건에 대해 경찰에 신고를 해야 될 지 말아야 될 지를 의논했고, 우선은 피곤하니 다음에 얘기하자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방을 나오면서 오형이가 잠이 든 관종새끼를 때리려고 하는 것을 계철이가 막는 일도 있었지만 결국 신고에 대해서는 귀찮기도 하고 연민도 생겨 그냥 내버려 두게 되었고, 그렇게 어물거리고 있을 그 때 관종새끼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그렇게 이제 다섯 친구는 어이없게 다시 이 자리에 모여 있게 된 것이다.
'...사는 게 참... 힘이 드네... 그런 식으로 마지막 삶의 한순간에 너희들을 끌어들여서 정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담희는 관종새끼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편지의 문구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마지막까지 정말 관종새끼답다고 담희는 생각했다. 그 마지막 퍼포먼스는 죽음에 있어서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관종새끼의 그 허영심이 그대로 투영된 짓거리였던 것이다. 그래도 역시 관종새끼를 떠올리며 담희는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쓴 편지의 거의 모든 문장들은 옛날, 옛날로 시작되고 있었다. 관종새끼에겐 아마도 그 옛날이 자신에겐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었을 것이다. 담희는 다시 한 번 빈소를 돌아봤다. 쓸쓸한 빈소에는 이제 자신들과 누군가가 먹고 버린 빈그릇들뿐이었다.
"갈까?"
오형이가 말했다.
"그래."
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눈밑을 손등으로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