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日, 1939년 하이난섬 점령 뒤 군사기지화 식민통치 저항한 수형자 등 2000명 동원 혹독한 노역 못 이겨 해방까지 절반 사망 살아남은 조선인도 학대·굶주림에 시달려 항복한 日, 무기 뺏기자 칼·곡괭이로 학살 1995년에야 알려져… 中부지 보전 불투명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1차 세계대전(1914~1918)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 일본이 그간 협력하던 자세를 버리고 각자도생에 나섰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보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았던 일본은 경제 위기를 탈출하고자 1931년 중국 만주와 1932년 상하이를 차례로 침공했다. 이 지역 이권을 선점한 미국과 영국이 철군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한 뒤 되레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을 감행해 전선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난징 대학살(1937)과 하이난섬 대학살(1939~1945) 등 민간인 학살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이때 벌어진 하이난섬 대학살은 우리에게도 ‘천인갱’(天人坑·1000명이 묻힌 구덩이) 사건의 아픔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