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구려 뭐 까짓거 한민족이라고 같은 민족이라고 치자고. 뭐 어떻게 말해도 상관은 없지. 당시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이었던 것은 아니고.
이번에는 새로운 스모킹건을 하나 들고 나왔다. 애초에 고려조라는 것은 한민족 국가인 후백제나 신라를 침략한 국가라는 것도 그렇지만 고려조의 성립기반이 되는 곳조차도 애초에 매소성전투(오늘날 경기도 연천)가 벌어졌던 바로 그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삼국통일은 이 시기에 사실상 이루어졌다. 당나라가 옛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에 설치한 안동도호부를 나당전쟁 결과 요동으로 축출함으로써 당나라의 통치력을 한반도 밖으로 쫓아내는데, 사실 대동강 ~ 원산만 라인에서 한강 유역 이북은 신라 하대에 북상하기 전까지는 고구려계의 소영주, 호족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평가가 지배적이다.[4]즉, 신라가 직접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세력이 차지하지도 못하는 완충지역을 만든 것이다. 이 지역(패강)에 신라가 직접 통치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선덕왕 때 일로, 헌덕왕 때에 군현을 설치하고 성을 쌓았다. 그리고 패서 지역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후일 고려의 건국세력이 태동하게 된다.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인 강충이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패서를 기반으로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쌓고 세력을 키우기도 했다.그리고, 중국 역대 왕조 가운데서도 정상권의 강대국이었던 최전성기의 당나라와의 7년간에 걸친 총력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신라의 삼국통일이냐 아니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민족 역사의 다른 전쟁들과 비교할 때, 그 역사상의 중요도에 비해서 관심과 연구,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전성기에 이른 당나라의 대규모 군대에 맞서는 신라군은 수적으로 훨씬 열세에 있었지만, 문무왕과 신라군 수뇌부의 뛰어난 지략과 전략전술로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당나라군을 격퇴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현대의 인서울 구체제지배계급의 승계자를 자처하는 집단은 차마 그들이 짱개계열의 정복자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따구 개소리를 하는 것 같은데, 여느 다른 나라의 역사와 함께 비교론을 적용하자면 패서에서 고려의 건국세력이 태동한 것은 맞지만 그들이 고구려 유민이라는 것은 완전히 개소리라고 할 수 있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날 티벳이 어떤 꼬라지를 당하고 있는지나 보자고. 참고로 중국의 티벳정복은 아직 역사적으로는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하부구조까지 철저하게 공산당 위계구조가 인스톨되어 있으며, 원주민에 대해서는 거의 노골적인 인종말살을 하고 있다. 수용소에 100만명이 들어가 있다는 말도 있다고.
따라서, 대동강~원산만 라인에서 한강 유역 이북은 신라 하대에 북상하기 전까지는 고구려계의 소영주, 호족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평가라는 것 자체가 인서울 구체제 고려계 지배계급 새끼덜의 거짓말인 것이다.
짱개새.끼덜의 알려진 소수민족에 대한 무관용과 멸시적인 태도까지 고려했을 때에 고구려계의 소영주나 호족은 애초에 평양성이 함락되던 676년으로부터 거의 전적으로 1세대 이내에 전적으로 구축되었을 거라고 보는 것이 전세계에서 짱개의 유명한 악질적인 짓거리와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나는 오히려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하다면 되려 패서에는 짱개 커뮤니티가 실제로 인스톨되어 있었으며 신라가 당나라에 신속을 하는 것으로 나당전쟁이 끝났음을 고려하면 신라는 이들을 미처 몰아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남조 후진의 진패선이 후경이 끌고 온 돌궐계 놈들을 싸그리 잡아죽이고, 처자식은 노예로 삼았던 것과 같은 것을 신라가 차마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했기 때문에 신속을 다시 받아주는 것으로 나당전쟁이 끝이 났던 것이다.
단지 신라는 그들이 더 이상 남부로 치고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선에서 그들을 제어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러다가 신라말기에나 선덕왕때에 그들을 제어하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이 다시 내려와서 후백제와 신라의 연합을 붕괴시키고 한국인들을 복속시켰던 것이다.
즉 패서에 짱개가 살기 시작한 것은 신라말기의 일이 아니라 나당전쟁을 전후한 시기 그러니까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때부터 정복온 짱개가 그대로 눌러앉았던 것이다.
이 것 역시도 티벳으로 파견된 군대놈들이 그대로 티벳에서 눌러앉는 현대의 일로도 증명될 수 있다. 짱개가 침략을 할 때에는 애초에 몰아내고 지가 정착하려고 가는 것이라는 제네릭한 루틴으로까지도 간주할 수 있다. 그러니 고려조 건국세력놈들은 짱개임이 거의 확실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고구려를 참칭하는 것은 짱개새.끼덜의 전형적인 종특으로써 본디의 그들은 선비족이지만 한화정책이라는 것을 통해서 한족임을 자처하기도 했던 아주 유구한 전통인 것임.
뭐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까 모르겠는데, 티벳인들 죄다 죽이고 나서 짱개가 가서 거기서 눌러살던 놈들이 100년 정도 지나면 이제는 지덜이 티벳인이 되는 그러한 패러다임인 것임.
고구려 역시도 중국군대의 침략을 받아서 멸망당했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라는 것이 갸들의 논거 아니겠냐고? 구체제 서울사가들이 고구려를 참칭하는 것은 실제로 갸들이 한민족이라서가 아니라 되려 한민족을 정복했던 작자들로부터 참칭되었다는 것이 후삼국의 고려정복이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한 5천년 정통 한인에 더 가까운 남부인 중심의 역사라고 봐야 한다고.
그러므로 왕건의 집단은 역시나 당나라의 선비족 집단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해상세력은 오늘날 서해5도 지역과 동해의 어장에 빈번하게 출몰하는 짱개세력이며, 그들의 육상세력 역시도 미처 몰아내지 못했던 당나라 잔존세력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고려라는 이름은 단지 참칭된 것이니 굳이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성과 결부짓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는 그냥 짱개의 거짓말이고. 고려의 신라와 백제 정복은 단지 5대 10국의 혼란기내에서 건너온 짱개들을 재규합해서 일어난 단지 노골적인 정복전쟁이었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집단들 중부지역의 출계집단들이 고려조와 조선조의 무려 천년동안 주인으로 군림하는 동안에 정작 신라계나 백제계의 지배집단들은 천민으로 격하되거나 끽해야 관에 종속된 아전이나 이방따위의 실질적 관노지만 조금 관리직 타이틀같은 그런 직을 부여받았다는 점은 결코 그 것이 동일 출계집단 내에서의 통일운동이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비교되는 역사로써는 스파르타 새끼덜도 메세니아와 라코니아를 정복하고서는 그들 피정복 집단을 광범위한 노예의 하류집단에 편제하고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도록 강제하기도 했는데, 불과 100년전만 하더라도 실제로 조선에서는 피지배집단에게 패랭이라고 하는 아주 천박해보이게 만드는 모자를 쓰도록 강제했던 것은 매우 유사한 지점이라고 하겠다.
스파르타를 고려로 바꾸고, 메세니아와 라코니아를 각각 백제와 신라로 대치시키면 거의 완벽한 접목점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고려계 앙시앵레짐 집단을 오늘날에 어떻게 비정할 것이냐는 것인데, 슬라브족들의 역사적 관점을 빌리자면 몽골계 지배집단은 모두 그들에게 흡수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실질적으로는 한민족에 동화되었다고 봐야 하지만 그들의 특권사회만이 여전히 서울정권내에서 잔존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 외에도 평산 신씨나 파평 윤씨나 여흥 민씨나 남양 홍씨 같은 출계집단들은 그들의 좆보라는 것으로 그들이 고려 지배집단의 블루블러드임을 자처한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이조의 서인이라는 것들도 바로 그들의 무리였던 것이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한국의 적폐들인 것이다.
스파르타라는 나라가 극심한 경쟁적인 엘리트체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수의 스파르타계 지배계급이 다수의 메세니아와 라코니아계 피지배계급 위에 군림하기 위한 도구로써 엘리트체제를 유지한다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그간 한국의 인서울 적폐집단은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행정부의 구성을 위한 배타적인 기구로써 경쟁체체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 것이 한국의 교육이 파행이면서 단지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이유인 것이다.
특히 서울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곳은 결코 처음부터 고려계 지배집단들의 도시는 아니었던 곳이다. 한성이 백제의 도시였다는 사실은 한국인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상 한성내에서도 양반 행사머리를 하는 집단은 도성 인구의 5분의 1도 되지 않고, 다수집단은 그들을 위해서 종사하는 가노나 용역을 담당하는 외거노비들이 태반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실제로는 백제계의 출계집단이라고 봐야 하지만 고려에게 후백제가 패했다는 이유로 모두 노예취급이나 받게되었던 종자들로 봐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일제가 한성부를 확대편성하기 전의 한성은 4대문과 4소문 안의 지역만으로 규정하는 매우 협소한 구역이었고, 그러한 한성을 벗어난 양주와 광주의 지역들은 모조리 여전히 조선시대말기에도 한성백제계 피지배민들이 사는 지역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오늘날 한성의 권력은 그들이 지방몰락을 야기해서 초래한 전라계들의 대거 북상으로 인하여 현대의 서울내에서 감히 고려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의 주류집단은 어디까지나 상경한 백제계 혹은 신라계로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현대 서울에서 전라어는 informal language로 통용되는 편이다.
반면에 윤석열이나 나경원 같은 작자들은 구체제적인 고려의 후예를 자처하는 집단의 서로 밀어주는 프로세스내에서 등극한 출계집단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홍준표는 뭐 남양 홍씨는 뭐낙에 씨를 많이 뿌려서 지방의 개좃이나 되었던 2, 3대 전만해도 별로 행사하지도 못해던 놈인데, 정작 고시합격한 이후에는 제 놈이 아주 유서깊은 홍씨인마냥 행사하려는 작자에 불과하고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스파트티아타이라고 하는 계급은 스타르타인의 다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서도 제법 가닥이나 하는 성공한 작자들만 일컫는 것이다. 그러지 않은 경우에는 페리오이코이로 분류되었다.
즉, 같은 아비의 자식이라도 고시에나 합격하면 스파르티아타이이고, 별 볼일 없는 놈은 그냥 페리오이코이인 것이다.
즉, 악명높은 스파르타의 병영이라는 것도 애초에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고 보면 된다. 가장 전성기에조차 스파르타인이라는 것 중에서 병역생활을 하는 자들은 한 시기에 8천명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스파르타계 출생이라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스파르타의 병역이라는 것은 출생성분까지 매우 가려서 뽑는 UDT나 707부대 이런 수준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김대중과 민주당이 등극한 이래로 차별이 사라졌지만 소싯적에는 그러한 특수부대에 행여나 노조활동이나 빨치산이 8촌 안에라도 있으면, 혹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여되었거나 부마항쟁에 관여된 인간들은 싸그리 배제되었던 바로 그 곳들인 것이다.
그나마 소싯적의 안기부도 그렇고 경상도 새끼덜은 아주 순종적이라서 부려먹기 쉽다고 캐서 경상도출신의 말단들을 종종 뽑아쓰고는 했는데, 그게 겨우 대구 것들의 부심인 것이다.
안기부에서 특히 경상도쪽 지잡대 나온 것들 미리 봐놨다가 학창시절때부터 프락치로 좀 부려먹다가 특채로 넣어주고 하던 것은 그 시대에는 널리 받아들여졌던 야그지.
마르티나 도이힐러가 말했듯이 그간 백제계와 신라계는 한민족의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뽑아쓰는 하수인 외에는 상식 이하의 처우를 받아왔으며 특히 그들의 지도자들은 끽해야 관공서의 서리밖에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한 짓을 자행한 소수의 고려계 앙시앵레짐새끼덜로부터 권력을 다시 백제계나 신라계들이 찾아오는 과정이 지방정권의 독자성이 복권되는 민주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자행된 서울중심 전제주의는 실상은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예의에서 나오는 소수의 출계집단이 독점하는 정치구조였던 것이다.
그러한 정치가 1948년 체제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이며, 그러한 악폐습은 이제 천년의 악질을 끝내고 소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짓거리의 심볼릭한 존재로 윤석열이같은 어리섞은 작자가 카운터파트가 되려고 한다면 그는 끝내는 나자빠질 것이고, 나는 그 인간 따위를 진정한 큰 대의에 대적할 깜냥도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할 뿐이다. 백제의 나라를 백제인이 되찾는 것은 순리이며, 경상인들은 1천년 서울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치를 얻으면 족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 수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이 어떠한 출계집단이다 그러한 인종차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스톨된 짱개덜이 주도하는 사회가 대놓고 현지인을 차별할 뿐 아니라 스파르타와 마찬가지로 지덜끼리도 학대가 보편적인 악의적인 사회를 만들었음이 한국사회의 적폐의 가장 근본적인 메타라고 보는 사관 그 자체이고 바로 그 것이 본인이 비정하는 한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한국사내에서 스파르티아타이로 행사하는 것이 겨우 그들의 머리에 든 자들을 뽑아서는 한국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적폐라는 것들의 의의이며 그간 한국이 민주주의 헌법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엘리트들로부터 뻔한 좌절을 맛보아왔지만 또한 반대로 여기까지 왔던 것입니다.
뭐 참고로 본인의 핏줄에는 고려계 내에서 몽골계 우세집단으로 잠시 기능하였던 그쪽의 피도 조금은 있다고 해줍니다만 스파르타 사회내에서 어차피 인정 못 받으면 스파르타인도 아니게 되고 페리오이코이 취급이나 받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스파르티아타이라는 것은 애초에 출세한 작자들만 일컫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강남에 살아도 내일 그 지위를 유지할 깜냥이 안 되면 공대나 나와서 지방에서나 근무하는 격이면 그 축이 아니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공계도 천시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인서울 강남의 스파르티아타이들 내에서 천시되는 것이죠. 지방의 헤일로타이 출신이야 뭐 카이스트, 포항공대 가면 신분상승인 셈인데, 천시할 것은 없죠. 모두 특정지역의 정서다 이 말입니다.
그러한 것들로부터 참 통찰을 얻기를 바랄 뿐이며, 이와 같은 사관이 없는 쿨게이 같은 사가들의 기술은 감히 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서 obsolete될 것이라고 나는 감히 주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