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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금수저 원조이자 한민족을 구한 영웅
게시물ID : history_300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나이직각
추천 : 4
조회수 : 18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8/04 22:02:02
양녕대군 (세종대왕의 형)

 

조선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의 맏아들이자 세종의 큰 형. 엄밀히 따지면 태종과 원경왕후 부부의 넷째 아들이다. 태종은 양녕 위로 아들 3명을 더 두었지만, 이들은 모두 어린 시절[1]에 요절했기 때문.

아동용 역사만화, 교과서 등에선 최대한 건전하게, 본인이 능력이 모자라고 동생인 충녕대군의 능력이 더 뛰어남을 알게 되어, 일부러 큰 뜻으로 놀고 날뛰면서 폐세자가 된 뒤,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한 대인배 정도로 미화되어 기록되어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집안 배경과 자신의 권력으로 평생동안 온갖 유흥에 패륜을 일삼다가 동생 세종의 장손인 단종을 몰아낸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는데까지 앞장서던 소인배에 불과한 인간이다. 후술하겠지만, 세종이 비행을 끝까지 눈감아주고 무엇보다도 목숨과 권력까지 보장해줬던 것을 감안하면 이성계의 무인 기질의 유전자를 너무 많이 가지고 태어난 왕족...이라고 하는 수준이 미화의 한계다. 하지만 이것도 애써 미화한 것이고 딱 잘라 말해서 그냥 인간말종.[2] 사실 이러한 미화는 세자가 개망나니라 폐위되었다는 흑역사를 덮기 위해 조선 왕조 시절부터 벌인 역사 깊은 행동이었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자식 셋을 낳자마자 잃었던 이방원과 민씨 내외에게 왕자 이전에 너무나 특별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너무 오냐오냐해서 교육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주로 제기된다. 실제로 양녕대군의 도를 넘는 악행에 태종은 결국 그를 폐위할때 눈물을 흘렸다고한다.

양녕대군은 세종이 인내심 많고 성정이 어진 인물이라 예외로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케이스이다. 왕정국가의 후계자가 폐위되어 낙마하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숨죽여 살면서 권력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사도세자나 광해군의 폐세자 이지의 경우처럼 즉각 유배 혹은 제거되는 것이 보통이다. 대개는 반대파에 의해 옹립되어 반역의 빌미가 되는 등 후환이 되기 때문. 실제로 태종은 양녕대군이 후환이 될 것 같으면 죽여도 좋다는 유언을 남겼고 양녕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사고를 쳐서 신하들로부터 양녕을 벌주라는 죽이라는 상소가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참고로 세자 시절에는 양녕대군으로 불리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대군(大君)은 '세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의 적자들에게 내려지는 작위이므로. 양녕대군은 폐세자되면서 봉해진 봉호이다.


상또라이짓으로 세자에서 짤렸는데

적당한 병신이라 왕위에 올랐다면

세종대왕도 한글도 위대한 업적도 없었을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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