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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곡물법 폐지 – 1846년
게시물ID : history_30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옐로우황
추천 : 0
조회수 : 15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2/18 21:35:53

1846년 5월 15일 영국 하원에서는 국내 농산물 보호를 위해 수입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곡물법(corn laws)을 철폐하는 법안을 327대 229로 통과시켰다.


곡물법 폐지는 자유무역체제를 낳았다. 농업관세를 철폐한 영국은 모든 부문에서 무역을 자유화하고 다른 나라들에게 영국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대외무역에서 영국의 지위는 더욱 강해지고 세계시장은 대영제국 중심으로 재편됐다. 곡물법 폐지는 영국이 주도하는 19세기판 세계화였던 셈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곡물법 폐지는 토지 귀족에 대해 산업자본이 거둔 승리의 마침표이다.”


장하준 교수는 영국의 곡물법 폐지 등 일련의 조치를 “농업 상품 및 원자재 시장을 확장함으로써 유럽 대륙의 산업화를 저지”하려는 ‘자유 무역 제국주의’적 행위라고 평가한다.


※ 옐로우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1846


1830년대와 1840년대에 자유시장을 위한 자유주의 십자군 운동은 일련의 법안 입법으로 귀결되었다. 핵심조치는 1834년의 신(新)구빈법으로, 이는 국내의 노동 공급을 시장의 가격 결정 기제에 종속시켰다. 1844년의 필 은행법은 국내 경제의 화폐 유통을 앞서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금 본위제의 자기조정 기제에 종속시켰다. 그리고 1846년의 곡물법 폐지는 영국시장을 전세계의 곡물 공급에 개방하였다. 이 세 가지 조치가 영국에 중심을 둔 자기조정적 세계시장체계의 핵심을 형성하였다. 이것들은 하나의 일관성 있는 전체를 형성하였다.


19세기의 시장 체제의 확장이란 곧 자유무역, 경쟁적 노동 시장, 금본위제가 서로 발맞추어 확장되어 나간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리카도(폐지)와 맬서스(존속)가 경제학자로서 이름을 날린 것도 곡물법 논쟁을 통해서다.




출처 http://yellow.kr/blog/?p=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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