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알기 위해서는 이반 4세를 꼭 거쳐야 한다. ‘차르(황제)’라는 것 때문이다(차르의 어원에 관해서는 <4 카이사르 편 참조>). 이반 4세는 1547년에 자신을 ‘차르’라 칭한 후, 통일 러시아를 건설한 분이다. 이반 4세 이전의 러시아는 그저 하나의 ‘모스크바 공국’이었으며, 그리하여 지배자는 그저 ‘모스크바 공국의 대공’이라 불렸다. (‘공국’에 관해서는 <12 윌리엄 1세 편> 참조)
<러시아 역사와 이반 4세>
4세기에 슬라브인이 출현, 9세기에 키예프 지역(지금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키예프 러시아가 일어났다가 여러 공국으로 분열하며 그 중 모스크바 공국이 전면에 대두했다. 분열 과정에서 동슬라브인은 모스크바 중심의 대러시아인, 키예프 중심의 우크라이나인, 서쪽의 벨로루시인 등 셋으로 분리됐다.
당시 모스크바 공국은 조공국으로서 몽고의 지배 하에 있었는데, 1483년 이반 3세가 몽고 제국인 킵차크 칸국과 맺은 조공계약을 파기하고 주변 공국들을 규합하여 몽골군과 전쟁하여 우선 현재의 러시아 기틀을 만든다.
이후 그는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딸과 결혼하며 자신을 차르로 부른다. 그러나 이는 서류상의 기술이었고, 칼을 든 실질적인 권위와 정복자로서의 차르는 그의 손자인 이반 4세이 최초이다.
이반 4세는 걸맞게 1552년 카잔 칸국을 정복하고 1556년 아스트라한 칸국을 점령하였다. 참고로 두 칸국 모두 볼가강 인근에 위치한 칸국이다. 칸국은 한문으로 汗國인데, 한자 그대로 ‘한국’으로 읽는 때도 있었다. 칸(汗)은 황제를 뜻하며, 칸국은 몽고의 칭기즈칸이 아들들에게 나누어준 제국을 이르는 말이다.
두 칸국을 제압함으로서 모스크바 공국은 볼가강 전역과 카스피해까지 영토를 넓혔고 이는 이후 시베리아 진출로 이어지며 대국의 기반이 되었다.
이반 4세는 동시대의 독신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은근히 구혼했다는 일화도 있으니, 여러 영화에 짧게 소개되기도 한다.
이렇게 강력했던 그도 어릴 적 살해된 어머니 트라우마와 요절한 아내로 인해 말년엔 분열적인 폭군이 되었다. 1581년에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이반을 몽둥이로 죽인 일도 있는데, 임신한 며느리의 복장이 탐탁지 않아 그녀를 꾸짖자, 아들을 쇠몽둥이로 내리쳤다는 것이다. 러시아 화가 레핀의 그림에 그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비극적 인생으로 인해 러시아 예술의 주요한 테마가 되기도 했다.
<이반 대제>(1944년 영화)
영화 제목이 <폭군 이반>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3부작 기획이었지만, 스탈린 모욕 등의 혐의 때문에 2부작 완성으로 그쳤다.
이반 4세는 차르로서 강력한 정복과 함께 강력한 통치를 이어갔지만, 그에 따라 귀족들의 반발 또한 거셌다. 몽고의 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그가 병에 걸린 틈을 타 귀족들이 반란을 꾀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몽타주 이론 창시자인 러시아의 대표적 감독 에이젠슈타인이 감독했다. 에이젠슈타인은 영화계의 고전 즉 작곡가 바흐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전체 영화를 구하기 힘드니 그저 유튜브에 있는 영화 일부만 봐도 에아젠슈타인과 이반 4세의 모습을 보기에 충분한데, 영화의 미장센이 대단히 강렬하고 괴기스럽다. 광기의 분장과 거대한 얼굴 등이 그 예이다. 미장센은 프랑스어로 연극 영화에서의 시각적 요소와 그 구성을 말하는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