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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들어온 부르봉 왕가>
카를로스 2세(1665-1700 재위)의 초상화를 본 적 있을 것이다. 비정상적인 긴 얼굴로 유명한데 우둔하기도 했단다. 이는 합스부르크가 고유의 결혼 정책에 의한 거듭된 근친상간의 대표적인 후유증이라고 한다.
그러한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스페인에서 드디어 합스부르크가가 가문이 끝난다. 그런데 뒤를 잇는 것이 프랑스 부르봉 왕가이다. 어떻게 된 걸까?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정략적으로 스페인 왕 펠리페 4세(합스부르크가)의 딸인 마리 테레즈(마리아 테레사)와 결혼한 바 있다. 시간이 흘러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한다. 그렇다고 왕위를 평민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인즉, 왕족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스페인 공주 출신으로 프랑스 왕비를 한 마리 테레즈가 나타난다.
스페인 귀족들은 모계 피를 받기로 하고 마리아 테레즈의 자손을 왕으로 모셔오려 한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일찍 죽어 남은 건 손자와 증손자들 뿐이며, 게다가 첫째 손자도 요절한 상태다. 결국 둘째 손자인 펠리페 5세를 스페인 마드리드로 들여 왕으로 모시게 된다.
그렇다면, 나중에 프랑스 왕위는 누가 잇나? 할 수 없이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증손자인 루이 15세(1715-1774)가 맡게 되는 것이다(39 루이 14세 참조).
<펠리페 5세>
펠리페 5세의 즉위로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3국동맹이 프랑스에 반발하여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일으키며, 이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며 국력이 약해진다(44 앤 여왕 참조)
펠리페 5세 자신도 역시 합스부르크가의 피를 받은지라 심약하였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 종결되는 1714년에 첫 아내의 사망 후, 이탈리아의 이사벨(엘리자베타)과 재혼하였는데, 이때부터 그녀의 강력한 성격을 업고 궁정 내에 이탈리아 세력이 득세한다.
다음 왕인 페르난도 6세는 첫째 부인의 아들이고, 그 다음 카를로스 3세는 둘째 이사벨 왕비의 장남으로 페르난도 6세가 후사 없이 사망해서 왕이 됐다.
<스페인 왕조 정리>
이쯤에서 스페인 왕조를 전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카스티야-레온-아라곤 왕국) 알폰소 6세>각 왕국 각축>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스페인 통일의 기틀)
(합스부르크왕조) 펠리페 1세(합스부르크가의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로, 이사벨 1세의 딸 후아나와 결혼하며 이사벨 1세에 이어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국의 왕이 됨. 미남왕 필립으로 불림)>카를로스 1세(펠리페 1세의 아들이며 스페인 공식 1대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황제로는 카를로스 5세라 불림)>펠리페 2세(카를로스 1세의 아들)>펠리페 3세(필리페 2세의 아들)>펠리페 4세(펠리페 3세의 아들)>카를로스 2세(후사 없음)
(부르봉 왕조) 펠리페 5세>페르난도 6세(펠리페 5세의 아들, 후사 없음)>카를로스 3세(펠리페 5세의 아들)>카를로스 4세(카를로스 3세의 아들, 고야, 나폴레옹 침입)>페르난도 7세(카를로스 4세의 아들)
(보나파르트 왕가) 호세 1세
(부르봉 왕조) 페르난도 7세>이사벨 2세
(사보이 왕조) 아마데오 1세
(제1공화국)
(부르봉 왕조) 알폰소 12세>알폰소 13세
(제2공화국) 프랑코의 독재
(부르봉 왕조) 후안 카를로스 1세>(현재)펠리페 6세
<파리넬리>(1994년 영화)
헨델 편에서 소개한 영화인데, 이번에는 영화의 후반부터 읽어보자. 파리넬리(1705-1782)가 영국 극장에서 ‘울게 하소서’로 헨델을 기절시킨다(43 헨델 참조). 이후 이제는 왕 앞에서만 노래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원래 파리넬리는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랑스 루이 15세(1715-1774 재위) 등 대부분 왕 앞에서만 노래해왔다고 한다.
스페인 왕궁에서 일식을 보는 행사가 벌어진다. 그곳에 왕과 왕비 그리고 파리넬리도 참석 중이다. 해가 사라지자 뭔가에 시달리는 듯한 왕이 파리넬리에게 해를 다시 불러달라고 한다. 파리넬리가 노래를 부르자 해가 다시 나타난다.
잠깐 나오는 이 왕이 바로 펠리페 5세이고 그 왕비가 두 번째 부인인 이사벨(엘리자베타) 왕비이다. 이 당시 펠리페 5세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왕비인 이사벨이 파리넬리를 왕궁에 두게 되었다고.
파리넬리는 특히 다음 왕인 페르난도 6세 때까지 사랑을 받아 계속 왕궁에 머물다가, 카를로스 3세 때 사이가 안 좋아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이래저래, 파리넬리는 스페인 왕 세 분, 즉 펠리페 5세, 펠리페 6세, 카를로스 3세를 연이어 거친 사람으로 스페인 왕조 가이드에 요긴한 인물이기도 한 셈이다. 한편 마드리드는 가톨릭 수호를 외친 펠리페 2세에 의해 수도가 된 곳임을 이미 말씀드렸다. 이전 수도는 톨레도.(28 펠리페 2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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