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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
‘프랑크’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프랑크 소시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들어진 소시지란 말이다. 그때의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족들이 물을 건너갔던 자리’란 뜻으로 프랑크 왕국과 관계되는 말이다.
북유럽에 있던 게르만족이 375년경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인 훈족의 공격으로 게르만족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서게르만에 속하는 프랑크족이 왕국을 세웠는데, 그것이 프랑크 왕국이다.
프랑크 왕국은 옛 로마지역에 침입하며 유럽 지역을 장악한다. 그런 가운데 로마 교회가 힘이 세진 프랑크 왕국과 함께 한다. 이때부터를 중세로 친다. 프랑크는 나중에 국명 프랑스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프랑크의 메로빙거 왕조>
프랑크 최초의 왕조이다. 왕조 이름은 프랑크족의 부족장의 이름 메로비스에서 유래한다. 이후 족장들을 거친 후, 클로비스가 프랑크 왕국을 건립한다.
1) 초대 왕 클로비스(481~511 재위):
2) 궁재 피핀 2세(645년-714년 봉직):
나중에 또 나오게 되는 피핀 2세와 구별하기 위해 헬리스탈의 피핀, 중피핀, 뚱보 피핀, 젊은 피핀 등으로 불린다. 외할아버지는가 대피핀, 또는 란덴의 피핀으로 불린다(피핀 2세=페펭 드 에리스탈/페펭 데리스탈/피핀 드 헤르스탈/피피누스 2세/헤르스탈의 페펭 2세).
클로비스 사후 귀족세력이 강대해지면서 정치상의 실권은 귀족들 중 가장 세력이 강한 각 분국 궁재(宮宰)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궁재는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에서의 왕과 수상 중 수상으로 생각하면 쉽겠다. 귀족 가문 중 ‘피핀 가문’이 궁재를 이어간다.
3) 궁재 카를 마르텔(717-741 봉직)
피핀 2세의 서자이다. 714년 피핀 2세가 죽자 그를 계승한 궁재이며, 확실한 전사 이미지가 강해서 망치라는 뜻의 별명 ‘마르텔’이 붙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진출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침으로써 남부 프랑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 강력한 프랑크 왕국의 기반을 만들었다(카롤링거=카를=샤를=카롤루스=찰스, 마르텔=마르텔루스).
<프랑크의 카롤링거 왕조>
카를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을 폐위시키고 직접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카롤링거 왕조의 명칭은 카를 마르텔과 피핀 3세의 아들인 카롤루스 마그누스(샤를 대제)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1) 피핀 3세(751-768년 재위)
카를 마르텔의 아들이다. 궁재를 거쳐 751년 메로빙거 왕조 국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별명 단신왕, 소피핀.
2)카롤루스 마그누스(768년 ~ 814년 재위)
카를 대제. 별명 유럽의 아버지. 피핀 3세의 아들이다. 이탈리아까지 진출하며, 교황에 땅을 헌납하는 등의 공을 세워 800년에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황제 대관을 받았다. 이로써 카롤루스는 대제가 되고 프랑크 왕국도 제국이 된다.
이는 유럽을 형성하는 3대 문화 요소인 고전 문화, 그리스도교, 게르만 민족 정신을 완전히 통합한 역사였다. 이렇게 넓힌 영역이 나중에 프랑크는 동프랑크인 독일, 서프랑크인 프랑스, 중프랑크인 이탈리아로 나뉘게 되는데, 그리하여 그의 별명이 ‘유럽의 아버지’이다.
(카롤루스 대제=카를 대제=샤를 대제=샤를 마뉴/카롤루스 마그누스/카를로 대제/찰스 대제)
<레드 베드>(2018년영화)
프랑크 왕국이 나오는 영화이다. 프랑크 왕국은 나중에 3국으로 분리되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된다. 유럽의 시작이랄 수 있는 이러한 프랑크 왕족에 대한 영화가 거의 없던 차에 나온 영화이니 참 고마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게 잘된 작품은 아닌, 그저 순박한 영화라고 할까. 다만, 고마울 뿐이다. 프랑크 왕국 초기의 모습을 담은 이 귀한 영화. 네덜란드가 만든 영화이며, 영화 중에 피핀 2세와 카를 마르텔이 확실하고 크게 등장한다. 이들 모두 프랑크 왕으로 나오는데, 실은 궁재임을 알아두자.
영화 처음에 해설 자막이 등장한다.
“8세기, 북유럽에는 프리지아인들이 살았는데, 프랑크족은 로마도 정복 못한 그곳 북유럽을 정복하고자 했다.”
프리지아는 지금 네덜란드 북부 지방으로 북해와 닿아 있는 프리슬란트의 영어 이름이다. 그 프리지아 지역에 흉년이 들었다. 신의 계시를 받아 처녀를 바치는 제사를 올리면 되는데, 그 희생에 페세라는 처녀도 끼이게 된다.
페세는 프리지아 왕국 왕자인 레드배드의 연인이다. 고민에 빠진 레드배드는 아버지의 영을 거역하고 페세를 구하려한다. 이때 프랑크 군대가 침입해와 제사는 엉망이 되고 프리지아의 왕도 전사하며, 레드배드는 추방당한다. 침입해온 군대의 수장이 바로 카를 마르텔이다. 침입자들은 당장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를 강요한다.
카를 마르텔은 내친 김에 북유럽 전체를 장악하려하나 아버지 피핀 2세의 반대에 부딪힌다. 급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자였던 카를 마르텔은 이에 앙심을 품고 피핀 2세를 살해한 후, 프리지아를 더욱 조여오는데, 이 가운데 추방당한 레드배드가 다시 등장하여 카를 마르텔 군을 쳐부수고 왕국을 되찾는다. 기독교만이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해설 자막.
“이후 레드베드가 죽을 때까지 백성들은 자유를 누렸다. 레드배드가 죽고 머지않아 야만인들에게 보니파시우스가 살해당했는데, 그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프랑크족은 그 복수로 프리지아를 다시 정복했다. 윌리브로드와 보니파시우스는 지금도 성인으로 추앙받지만 기독교 역사가들은 레드배드를 기록하지 않았다. 레드배드는 여전히 전설로서 살아있다.”
윌리브로드는 프랑크 왕국의 주교이고 보니파시우스는 그의 후계자이다. 영화에서도 세례를 강요하는 큰 역으로 나온다. 프랑크가 기독교를 신념으로 제국을 이루며 로마의 인정을 받기 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 영화 당시 전쟁 때마다 십자가를 앞세운 상황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하는 피핀 2세의 별명은 원래 ‘뚱보 피핀’인데 영화에서는 홀쭉한 사람이 맡은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