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0년부터 1780년까지 오스트리아 통치자임과 동시에 1745년에서 1765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후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장녀로 태어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여성이 승계할 수 없었기에 황제는 못 되었다. 대신 남편 프란츠 슈테판을 명목상의 황제로 즉위시키고 오스트리아 및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하였다. “나의 마지막 치마까지도 팔겠다”라는 말을 하며 합스부르크가 결혼 정책을 극대화한 인물이라서 ‘유럽의 장모’로 불린다.
18세기 유럽 열강의 세력 각축전에서 오스트리아를 지켜낸 뛰어난 정치가이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1740-1786 재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1762~1796 재위)와 함께 계몽군주 3인이라고 한다. 특히 즉위 연도도 같이 1740년인 프리드리히 대왕과는 슐레지엔 쟁탈을 두고 7년을 싸우는 등 숙적의 라이벌이었다(50 프리드리히 대왕 참조)
<마리 앙투와네트> (2006년 영화)
루이 16세 편에서 상세히 소개한 영화이다. 유명한 여제이지만, 그녀가 등장하는 영화는 잘 없다. 그나마 이 영화에 실제로 많은 부분 인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니 보기에 유익하다. 7년 전쟁을 끝낸 후의 고단함과 또 필히 이어가야할 프랑스와의 동맹 관계 등 그녀의 나라 향한 근심과 향해, 아슬아슬한 동맹국으로 시집 보낸 딸을 향한 마음이 애절하다(47 루이 15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