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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 사이의 아들이다. 1765년부터 사망하는 1790년까지 아버지 프란츠 1세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했다. 그런데 마리아 테레지아가 1745년부터 1780년 사망 때까지 오스트리아 대공위직에 있었기에, 그 겹치는 1765년부터 1780년까지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위세 아래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고 할 수 있다.
대신 요제프 2세는 그러한 환경에서 많은 여행을 함으로써,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많은 여행을 하면서 근대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오스트리아 근대화의 근간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악기 연주에 작곡도 하는 군주로 음악 황제라고도 불린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1762~1796 재위)등과 함께 대표적인 계몽군주이다.(50 프리드리히 2세 참조)
<<마리 앙투아네트>>(2006년 영화)
루이 16세의 아내로 프랑스 왕비가 된 여동생 마리 앙투와테트가 임신을 못하자 직접 프랑스로 가서 매제인 루이 16세에게 임신에 관해 코치 하기도 한다. 당시 미국 독립전쟁(1775년-1783년)이 터진 얼마 후이니, 요제프 2세는 아직도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권위 아래에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다. 그래서인가, 행동 또한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하여튼 코치가 주효했는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이를 낳는다. 미국 독립전쟁 지원 등으로 프랑스 국내 사정이 점점 나빠지며,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며 영화가 끝난다.(47 루이 15세 <마리 앙투아네트>>(2006년 영화) 참조)
역사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때 모처에 유폐되었는데, 그 이듬해 1790년에 요제프 2세가 49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과로사 하고 말았다. 그리고 1793년 동생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사형당한다.
요제프 2세는 또한 음악을 사랑하는 왕으로서 <아마데우스>>(1984)에도 나와 모차르트와 음악을 얘기한다(56 모차르트 <아마데우스>>(1984년 영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