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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별곡
게시물ID : warcraft_32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몽연
추천 : 2
조회수 : 8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4/21 00:06:35

정철이 25세 되던 해, 그의 처 외재당숙인 김성원(金成遠)이 서하당과 식영정을 지었을 때, 사계절에 따른 그 곳의 풍물과 김성원에 대한 흠모의 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정철은 을축사화로 말미암아 귀양다니던 아버지를 따라 16세 때 낙향하여, 등과한 27세까지 전남 함평 지곡리에서 지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서하당의 주인인 김성원의 멋과 풍류를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철 자신의 풍류를 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자어의 사용이 빈번하고 일개인의 칭송에 치우친 감이 있으나, 체험에서 우러난 전원 생활의 흥취와 지은이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하겠다.

'성산별곡'은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 작품으로서 창작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25세 때 지은 작품으로 보기도 하고, 동부승지로 진출했다가 다시 물러나 고향에서 생활할 때인 42세 때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송강 정철은 조선조 최대의 가사 작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그가 지은 '전후미인곡'과 '관동별곡' 등은 조선조 최고의 시가 작품으로 평가받았고,

특히 '사미인곡'은 동방의 이소(離騷)라고 격찬 받을 만큼 충신연군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서사, 봄, 여름, 가을, 겨울, 결사의 형태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작자의 솔직한 생활 정서나 인생관 등이 잘 표현된 가사라고 할 수 있다. 후기의 가사에 비해서 표현력이 많이 부족하고 한문투의 어휘가 지나치게 등장하는 등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조 가사 등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에 소재해 있는 식영정은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무등산의 모습과 우리의 전통 정원을 잘 보여주는 소쇄원 등이 있어서 유적답사로 찾아가 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 답사를 해 보면 이 작품에 묘사된 경관에 대한 묘사가 허사가 아님을 쉽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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