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았던 8년동안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며
2011년 5월 우리 둘에겐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던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텍사스 휴스턴에 정착했다. 모든 게 낯설었고, 힘들었고 몸에 맞지 않는듯한 옷을 입고 있는듯한 느낌이었지만, 미국에서 행복하자는 목표를 갖고 도전하고 즐겼다. 학교에서의 힘든 공부, 아내의 출산 육아 등으로 우린 의지할 곳 없이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힘들게 30대를 보냈지만, 그 반면에 첫째, 둘째와의 같이 보냈던 행복했던 시간, 많은 곳을 여행하며 보냈던 추억도 남아있다.
지금도 나름 안정적인 삶으로 만족은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미국 텍사스, 뉴욕, 독일, 한국 등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의 앞길만 바라보고 달려왔지, 가족들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는 생각 못했던 것이 마음이 아프다. 제일 미안한 부분이 첫째의 독일, 미국, 한국 세 곳에서 교육을 경험하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을 해보니 이젠 우리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모국어를 사용하고 사고방식이 그들과 같은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정서적 안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지금이라도 내가 지금 느끼고 있고 갖고 있는 따듯한 나의 집, 나의 방을 한국에서 갖게 해주려고 한다.
둘째가 한국으로 복귀의 가장 큰 이유다. 유진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다. 유진이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세상 누구보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있고, 말은 느리고, 못하지만 무엇보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우리의 아이다. 지금이라도 유진이에게 친구가 무엇인지 가족 친척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싶다. 미국에서 집에서 친구 없이 쓸쓸히 지냈을 유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글을 쓰는 중에도 눈물이 글썽인다.
우리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것인지 몰랐을 우리들에게 인생의 30대를 모두 희생하며, 두 아이를 키웠고 지금도 보살피고 사랑해주는 아이들의 엄마는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여린 엄마이기 전에 여자다. 아이들을 양육하며, 얻게 된 병으로 아파도 내색하지 못하며, 불편한 의료 시스템으로 인하여 제대로 케어조차 받지 못하는 아내를 보며, 작년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이제는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기 전에 본인 먼저 생각하기를 원하고, 목소리도 자유롭게 내고, 불편한 점 없이 친구도 만나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한국에서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미국생활을 하는 동안 느낀 점이 많았다. 가장 먼저 생각하는 부분은 양가 부모님께 죄송스럽다. 내가 이 짧은 기간 아이들과 헤어져 있는 동안 느끼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부모님 역시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얼마나 우리가 보고 싶을지, 우리를 그리워 하시는지 아이들과 처음 떨어져 지내보는 나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이제는 불효를 그만하고 싶다. 한국 가서도 자주는 못 뵙겠지만, 종종 얼굴 보여드리는 게 효도라는 것을 이젠 깨달은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수명이라는 정해진 운명 앞에 부모님들의 길게 남지 않은 남은 여생 나 역시 같이 보내고 싶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하다. 지금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우리 가족들이 힘들고 불편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 행복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을 쓰고, 생활하는 것이 행복이란 것을 몰랐다. 가족과 친구와 같이 있을 땐 그것이 행복이란 것을 몰랐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힘든 것도 생길 것이고, 불평 불만이 생길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상황에 감사해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낱 짧은 인생인데, 내가 20,30대에 느끼고 추구했던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 우리가족의 행복이라는 것, 다시 한번 찾고 느끼기 위해 또 한번 변화를 시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