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Lana Del Rey- Dark Paradise
많은 사람들은 마야문명의 전설을 들어보았을 것인데 대부분 사람들의 마야인의 대한 인상은 남미나 멕시코의 밀림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이다. 마야인을 얘기하게 되어 대다수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몸에는 깃털로 장식한 옷을 입은 한무리의 인디안일 것이다. 달빛 아래에 빙둘어 앉아 신비한 의식을 거행하고, 중간에는 법술이 높은 인디안 제사장이 있는 그런 장면 말이다. 정확히는 마야인의 거주지는 오늘의 중미의 깊은 삼림 중에, 유카탄 반도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알듯이 마야인은 먼 지구 반대편의 중국인이나 몽고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들은 거대한 석조유적과 아주 높은 예술작품을 남겨 놓았는데 오늘날 기술이 따라가고 싶어도 따라갈 수가 없다. 오늘 우리들이 원래의 관념과 시각을 내려놓고 다시 마야인들의 옛날 거주지로 깊이 들어가 그들이 도대체 어떠한 민족과 문명이었는가 한번 살펴보자. 스페인인이 16세기에 남미에 들어갈 때 그들은 침입자적 각도에서 신대륙을 점령하였다. 당시 중남미주의 주민은 원시적인 농경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의 배나 대포에 대해 털끝만큼도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곧 스페인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이 땅에 가지고 왔다. 그 때 두 사람의 전도사가 있었는데 당시 사람들의 무속신앙과 미신을 보고 천주교를 전파하는데 방해가 된다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오래된 책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누구도 이 책들이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사실 그들은 오랫동안 마야인에게 내려온 엄청난 지식보고를 불태워버린 것이었다. 이런 책들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사라진지 오래된 마야인이 남겨놓은 지식의 귀중한 책인데, 안에는 그들이 그때의 휘황찬란한 과학적 성과와 문화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을 줄 누가 알았으랴. 아마도 하늘의 뜻이 그러했을 것이다. 오늘 마야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단지 남은 단편적인 얕은 지식으로부터 그때의 성황을 끼워 맞춰 짐작할 수밖에 없다. 밀림 속의 거석 유적 마야의 피라미드는 거의 이집트의 유명한 그것과 견줄만하지만 그것들은 보기에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약간 누런 색인데 사각뿔 모양이고 수천년의 풍우를 겪어 이미 좀 부식되었다. 마야의 것은 비교적 좀 작으나, 회백색의 돌로 쌓아 전체 피라미드 역시 회백색이고 완전한 뿔의 형태가 아니며 꼭대기에는 제사용 신전이 있다. 마야 피라미드는 네 주변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각각 계단의 수는 91개이다. 사면의 계단수와 맨 꼭대기에 한 개를 합하면 365 계단이 된다. 마침 일년의 일수와 같다. 마야인은 천문학적인 수를 무척 중시한다. 그들의 건축 속에는 곳곳에 천체운행의 규율에 관한 이런 숫자가 적혀있다. 계단수의 항목 이외에도 피라미드의 각 사면에는 52개의 사각부조가 있는데 마야인의 천문대 역시 특색이 충만한 건물이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무슨 특이한 힘 때문인지, 외관상 그랬는지 모르지만 마야인의 천문대는 오늘날의 천문대와 매우 유사하다. 멕시코 동부 유카탄 반도 치츠니차(Chichen Itza)에 위치한 엘 카라콜(El Caracol) 천문관측탑의 예를 들면 거대하고 아름다운 평대 위에 건축되어 있고 작은 평대는 한계단씩 한계단씩 큰 평대와 통해 있다. 요즘의 천문대와 유사하게도 하나의 둥근 돔이 있고 상면에는 반구형의 덮개가 있다. 이 덮개는 현재 천문대 설계시 천문망원경을 놓는 곳이다. 돔의 네개의 문은 정확히 사개 방위를 가리킨다. 이곳의 창문과 현관은 6개의 연속된 선을 이루는데 그 중 적어도 세개는 천문과 상관이 있다 그 하나는 춘분 추분과 유관하고 나머지 두 개는 달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 엘 카라콜 천문대는 내부의 나선형의 계단 때문에 지어진 이름인데,원통형의 건물위에는 반구의 두껑이 있어 마치 현대의 천문대와 유사하다 이 하나의 엘 카라콜 천문관측탑은 유적중 최대로 큰 천문관측탑이며 다른 유적에도 유사한 건축이 있다. 그들은 위치상 태양과 달의 배열과 일치하도록 배열되어 있다. 근래 고고학자들은 옛날의 마야 천문대학자들은 한 개 지역에 일련의 천문관측망을 세웠다고 믿고 있다. 이 건축은 오늘날의 각도에서 보아도 신기할 정도로 되어있다. 마야 피라미드로 말할 것 같으면 거대한 돌을 어떻게 절단했는지 이 심산 속으로 어떻게 운반했는지 다시 십여톤 무게의 돌을 하나하나 어떻게 쌓아 올렸는지(높이는 70미터이다) 무슨 선진적 교통수단과 기중기 같은 설비 없이는 이 임무를 완성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 삼림 속에 사는 민족이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 세트의 천문망을 건립했는가? 역사를 보면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한 것은 17세기이고 한참 후에야 대형천문대가 나타났는데 그러나 천문대망이라는 개념은 거의 최근에야 출현한 것이다(그래봐야 기껏 전세계에 퍼져있는 여러 천문대 끼리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지 한 지역에 어떤 일련의 배치를 해놓은 것은 없다---역자) 이러한 개념은 상당히 선진적이라 할 수 있고 당시 마야인의 과학과 오늘 우리들의 과학에는---적어도 천문관측에 대해서는---털끝만큼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릴 때 배운 아라비아숫자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단지 1、2、3、4、5、6、7、8、9、0 이 열개의 숫자를 배열한 것이다. 아마 여러분은 혹시 모를지도 모르는데 이 0 이란 개념은 아라비아인이 인도로부터 유럽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당시 유럽인은 이런 간단한 숫자의 개념이 없었다. 피보나치 수열로 유명한 중세 수학자 피보나치(1170-1250)만 해도 인도의 숫자를 이야기 하면서 1부터 9까지 언급하면서 0 에 대해서는 따로 임의의 수를 써서 나타낼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0 의 역할과 중요성은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일이지만 옛날 서양인들은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아라비아숫자는 간편성도 있지만 0 이라는 개념이 있으므로 대단한 것이다. 그리스인은 숫자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반드시 자모을 이용하여 숫자를 나타낼 수 있었다. 로마인도 숫자를 사용했지만 그림 방식으로 된 네 개의 숫자로 대표한다. 그리스와 로마자에는 역시 0 이란 개념이 없다. 그러나 마야 숫자에는 0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 역시 독특하고 과학적이다. ▲ 마야 숫자에는 0 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 역시 독특하고 과학적이다. 고고학자들이 마야인의 숫자 계통을 연구할 때 그들의 숫자표현과 계산방법이 매우 교묘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세 개의 부호만 사용했는데 점, 막대기, 그리고 숫자 0 을 나타내는 조개모양의 부호로서 모든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원리는 오늘날 전자계산기에 응용되는 이진법과 유사하다. 이렇게 수를 나타내는 방법은 천문학적 숫자를 사용할 수 있다. 과테말라의 지리파소에서 발견된 석표라고 불리는 조각기둥에는 9천만년, 4억년등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 ▲ 현대 과학으로도 예측하기 힘든 태양계의 운행을 정확히 계산한 마야의 역법 마야의 역법 또한 매우 복잡하다. 1년을 260일로 계산하는 "탁금력(卓金曆)"이 있고, 6개월을 주기로 하는 태음력, 29일과 30일을 주기로 하는 태음월력 365일을 주기로 하는 태양력, (하나는 365일이고 또 하나는 태양주기로 260일을 계산한 달력 2개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순환시킨 장기력등 여러 다른 주기의 역법이 있다.) 우리가 관측하는 일년은 365.2422일인데 마야인은 이미 365.2429일을 계산해 놓았다. 마야인이 산출해 낸 금성공식이라는게 있는데 한번보면: -(달) 20×13=260 260×2×73=37,960 -(태양)8×13=104 104×5×73=37,960 -(금성)5×13=65 65×8×73=37,960 이 공식의 의미는 세 천체가 37960 일 후 한 직선상에 배열되는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마야인의 전설에는 그 때가서는 ‘신’은 모처에 가서 편히 휴식한다는 것이다. 마야인은 384년 동안 관찰한 후 584일이 금성역년이라는 것을 산출하였는데 이것은 지구, 금성, 태양이 일직선 상에 놓이는 주기가 된다. 그들은 또한 금성이 지구의 8년에 다섯 번 돌고 그 후 같은 일을 순환한다는 것을 알았다. (365X 8/5= 584) 그러나 요즘 계산이 583.92일이니 그 오차는 하루12초가 채 안되고 매월 6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정확하게 금성력을 계산했으니 불가사의에 가까운 일이다. 마야는 날을 세는 단위가 이상하게도 매우 많고 또 크다. 고고학자들이 알고 있는 수치는 ⊙ 20 칵툰은 박툰(Baktun )=14만4천일 ⊙ 20 박툰은 픽툰(pictun)= 288만일 ⊙ 20 픽툰은 칼라툰(calatun) =5760만일 ⊙ 20 칼라툰은 킨칠툰(kinchiltun)= 11억 5천2백만일 ⊙ 20 킨칠툰은 아라툰(alatun)=230억 4천만일이다. 마야 달력의 또 다른 미스터리는 어떻게 이런 천문학적인 숫자를 필요로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단위의 숫자는 현대인은 전혀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요즘의 과학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런 숫자들은 일종의 과학--천문학 같은--을 연구하는데 쓰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천문학이 아니면 그런 큰 숫자가 왜 필요한가? 마야역법 중 ‘탁금력’에는 일년을 260일로 계산하는데 이상한 것은 태양계 내에 이런 역법이 적용되는 행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역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성이 있다면 금성과 지구 사이에 있을 수 있다. 탁금력 중에는 마야인이 은하계 중심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태극음양도와 매우 유사하다. 호세 아구레스(Jose Arguelles)박사는 그의 저서 ‘마야인의 원동력, 기술 저편의 길’에서 이 탁금력에는 ‘은하계절”의 운행규율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 지구는 소위 ‘제5 태양기’에 속해있으며 이것이 최후의 태양기이다. 은하시기의 이 한단락 시간 중 우리 태양계는 5,125년의 대주기를 지나가고 있다. 시간은 기원전 3,113년부터 서기 2,012년까지이다. 이 대주기 동안에 지구는 태양계와 더불어 은하의 중심에서 나오는 은하빔을 가로질러 이동한다고 한다. 즉 이 은하빔의 길이가 지구년 5,125년라는 것이다. 그들은 대주기를 13단계로 나누었고 각 단계를 다시 20개 연화시기로 세분하였으며, 매 단계의 연화에 대해 모두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각 시기는 약 20년 간이다. 이러한 역법순환은 중국의 ‘천간’ ‘지지’ 등과 매우 유사하여 역법은 순환이 그치지 않으며 서양의 역법처럼 일직선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세상이 창조된 이래 지구는 이미 4개의 태양기를 경과했다고 했다. 이 태양계의 모든 별이 은하빔을 지나가는 대주기 이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는데 마야인은 이것을 ‘은하계의 동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예언을 하였는데 이 마야 예언에서 말하는 대주기는 오늘날 이미 마지막에 다가 왔으며 바로 1,992년에서 2,012년까지이며 20년간 지구는 이미 대주기의 최후시기에 들어와 있다고 하였다. 마야인은 이 기간을 ‘은하계에 동화’ 직전의 아주 중요한 기간으로 믿었으며 이 기간을 지구 재생기간이라고 명명했다. 이 기간 중, 지구는 완전한 자기정화를 달성할 것이며 지구 재생기간 이후에 지구는 은하광선 경계를 넘어서 ‘은하계에 동화’라는 새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마야인의 역법이 이렇게 정확하다면 그들의 예언도 응당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마야인의 예언이 도대체 무엇을 깨우쳐주려고 하는가. 혹시 환경오염이 엄중하고 천재인화가 끊이지 않는 요즈음 사람들에게 모종의 경고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래 몇가지 각도에서 마야인과 중국인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 문자: 마야인은 상형문자를 사용했는데 문자의 발달수준은 중국의 상형문자와 매우 유사하다. 단 부호의 조합이 한자에 비해 복잡하여 아직까지 사람들이 완전히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 예술: 대족(袋足)채색도자기의 예를 보면 대족항아리의 꼭지 부분에 채색이 선명한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붉은색과 검은색 기하적 도안이 매우 눈에 띈다. 이러한 대족항아리는 중국 선사 도자기중 가장 특색있는 도자기 모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특징은 미주지역의 많은 인디안 민족의 도자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 옥그릇: 마야문명중 매우 많은 것이 옥그릇인데 세계에 단지 중국인을 포함한 일부 동양인과 미주 인디안 두 민족들만 옥을 좋아했고 정교한 옥그릇 조각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더 교묘하게 일치하는 것은 두 민족은 옥은 생명의 번영과 연계되어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마야인 옥그릇은 강남지역의 선사문화---양저문화의 옥장식과와 놀랄만큼 유사하다. - 신앙: 마야문화 중의 날개 달린 뱀의 형상을 가진 우사신상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르는 용과 유사하다. 마야 벽화의 이러한 신의 두상이나 마야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쌍두곤봉 위의 뱀머리 조각상은 용의 모습과 매우 가깝다. 이 외에도 마야인이 우사신에 대한 것이나 중국인의 용에 대한 제사는 모두 기우제와 연관이 있다. - 인종: 인종학상으로 볼 때 마야인과 중국인은 명백히 몽고인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또한 손금조차도 매우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태극도: 마야 폐허에서 중국의 태극 음양도와 비슷한 것이 발견된다. - 달의 전설: 마야인과 중국인은 옥토끼 전설이 같다. 한국의 중앙일보 2004 년7월 28일자 신문에 보면 북미인디언이 ‘중국 은왕조의 후예일수도’ 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북미 대륙의 인디언이 3000여년 전 지금의 중국 땅에 살았던 은(殷)왕조 사람들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고 중국의 베이징과기보가 26일 보도했다. 가장 큰 근거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3000년 전의 돌닻이다. 항해용으로 사용됐을 이 닻은 인디언의 유물이다. 그러나 돌 재질이 미국 땅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이어서 그동안 큰 의문을 불러일으켰었다. 최근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이 돌은 대만해협 인근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은왕조의 사람들이 항해를 거쳐 미국으로 갔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또 다른 근거는 문자 기록이다. 1953년 멕시코 올멕 유적지의 인디언 제단에서 6개의 옥으로 만든 홀(笏: 왕조시대 조례 때 신료들이 손에 쥐던 막대 모양의 물건)이 나왔다. 홀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은대에 사용됐던 갑골문이란 것이다. 문자를 해독한 결과 글자는 대부분 '치우(蚩尤)'와 '소호(少昊)' 등 은나라를 구성했던 동이족(東夷族) 제왕들의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이 기사를 보면 마야인이든 다른 미주 인디언이든 동양인이 과거 고대 어느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고고학자가 여러해 동안 수수께끼와 같은 마야유적을 여기저기서 찾아다닌 결과 많은 마야문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가장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의외로 당시의 기술이 요즘의 첨단과학기술에 매우 접근했었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1948년부터 1952년사이 멕시코 고고학자 루일러(Alberto Ruz Lhuiller)교수는 멕시코 고원에 위치한 마야의 고성 팔렝케(Palenque )에 있는 ‘비문의 사원’(The Temple of The Inions)에서 현실(玄室)을 발견했다. 사원은 계단식 피라미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높은 고대(高臺)에 있는 사원 전실로부터 습기로 인해 미끄러운 경사진 층계가 약 25미터 깊숙이 즉 지표면에서 2미터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신전바닥을 조사하다가 안 바닥이 커다란 돌로 되어 있음을 알고는 그것을 들어올릴 궁리를 하였다. 돌의 양끝에 구멍이 있음을 발견하여 들어 올리니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왔다. 그 계단은 흙과 모래로 메워져 있었는데, 4년에 걸쳐 그 흙과 모래를 제거, 드디어 1952년 6월 5일, 석실을 발견하였다. 벽에는 화려하게 단장한 9 명의 신관이 새겨져 있었고 무게가 5톤이나 되는 거대한 석관의 덮개에서 여러가지 무늬와 함께 기이하게 머리를 장식한 한 청년 부조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자세한 관찰을 해보니 이 부조는 현재의 우주인과 너무나 닮은 것이었다! 부조 중의 그림에는 한 청년의 모습이 하나의 기기를 조작하고 있었는데 이 기기의 전면은 유선형이었고 매우 복잡하고 정밀한 기기였고 무슨 온도계 비슷한 것도 있었다. 청년은 머리에 투구 같은 것을 쓰고 있는데 투구에는 두 개의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허리와 무릎은 굽히고 있었으며 양손은 하나의 조종간을 조종하고 위쪽의 손은 핸들 같은 것을 조절하고 낮은 손의 네 손가락은 오토바이의 핸들 같은 것을 조종하고 양눈은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왼쪽발은 몇가닥의 홈이 있는 발판에 놓여있고 조종자의 후면에는 내연기관설비와 유사한 것이 있었다. 내연기관 상자의 후방에는 화염이 분출되고 있었다. ▲ 팔랑케신전의 석관 부조, 청년이 우주선과 유사한 기계를 조종하고 있다. 루일러 교수는 팔랑케 신전에서 발견한 이 부조는 마야의 비문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해독한 비문중 한 문단은 : 백색태양의 아들이 우뢰의 신을 모방하여 양손으로부터 불을 내 뿜고…… 라고 되어 있다. 회의적인 사람은 이것은 아마도 고대 마야인의 태양숭배사상이 상상해 낸 정경일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루일러 교수가 발견한 부조에 근거하면 이 기록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오래된 고대유물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비행체 구상과 그의 섬세한 지식은 너무나도 특이해서 최근에야 이해할 수 있었으며 많은 학자들도 이로 인하여 크게 놀라고 있다. 요즘의 비행기술만 보아도 지난 500년 간 인류가 이룩한 과학문명의 집결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비행기 제작기술은 그 시대의 과학수준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대에 그런 비행기를 실제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 비행기 제작을 구상하였다거나 모형비행기 정도라도 시험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대과학의 높은 기술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부조는 인간이 달에 갈 때 이용했던 달 착륙선과 유사한 점이 있다. 만약 이 그림이 정말로 당시 마야인이 만든 기기를 보고 그린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우주 탐험 능력을 지녔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아마도 그 정밀한 역법은 마야인이 유유히 우주를 날아다닐 때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이것과 나즈카의 거대한 그림과 연관시켜보아도 의미가 있다) 1927년 멕시코 Belize에서 헤지스(Mitchell-Hedges)와 그의 딸에 의해 처음 마야 유적 중 발견된 수정 두개골은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수정 두개골은 완전히 큰 수정석을 가공연마하여 완성한 것인데 형태가 인류의 두개골과 거의 같고 높이는 12.7 센티, 무게는 5.2 킬로그램이며 턱뼈는 움직일 수 있도록 조각된 것이었다. 그 앞 뒤로도 이와 유사한 것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 마야유적에서 발견된 수정 두개골, 마야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발견된다(사진; 정견망) 이 수정두개골은 외관상 진짜에 매우 가까울 뿐만 아니라 내부구조도 사람의 두개골 구조와 일치한다. 그 공예수준은 매우 높아 그 바닥에 숨어있는 마름모형 거울과 안구 언저리에 전용 수공으로 갈고 닦은 투경이 잘 조합되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우리가 알기로는 현대 광학기술은 17세기나 나타났으며 인류가 자신의 두개골 구조를 정확하게 인식하게된 것은 18세기 해부학이 발전된 이후이다. 이 수정 두개골은 오히려 인체 두개골의 골격과 구조를 광학원리에 기초하여 조각한 것이다. 마야인은 어떻게 이러한 고도의 해부학적 지식과 광학적 지식 및 기술을 구비했을까? 또한 수정은 석영결정체이어서 매우 단단한 돌이다. 다이아몬드 다음인데 구리, 철, 돌 등의 공구로는 가공할 방법이 없다. 현대인이 이런 수정을 깎으려면 다이아몬드 칼 등의 현대적 도구가 있어야 한다. 실증연구를 통해본 결과 이 수정 두개골은 모종의 충돌하는 힘으로 조각한 것이라고 밝혀내었다. 그러나 현재과학기술은 아직 그러한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이한 수정두개골로 볼 때 마야인이 파악한 공예기술은 상당히 높아 현대인이 자랑하는 공예기술은 이 수정두개골에 비하면 정말로 빛을 잃는다. 현대과학의 이론과 기술발전속도로 보아 우리는 적어도 50년 내지 백년도 넘어야 마야인의 과학기술 수준에 도달할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네이버블로그 - 신세계[新世界] - by don0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