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이다. 그 마을은 모두의 이상향 이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 그런 이상한 곳이었다.
1.
"갑자기 날씨가 왜 이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차 한대 길동무 삼아 무작정 전국을 여행하던 나는, 산중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짜증이 치밀었다.
날씨가 좋아 목적지를 좀 멀리 잡은 터였는데, 한조각 한조각 먹구름이 모여들더니 결국은 벼락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뜻 보니 지나가는 소나기 같지는 않았고, 매섭게 몰아치는 빗줄기에 차 안은 공연장이라도 된 양 드럼소리가 울려퍼졌다.
"하- 어쩐지 조용하더니"
좋지 않은 예감에 슬쩍 훑어본 네비게이션은 고장난 나침반 처럼 내 위치를 바다 이곳 저곳으로 표류 시키고 있었고, 혹시나 싶어 탁. 탁. 소리가 나도록 네비게이션을 때려봤지만, 여전히 나는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3시를 넘어간 상황. 내가 달리는 이 좁은 산길은 한두시간이 지나면 어두워질 터였다.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후- 하는 작은 한숨을 내뱉고 맨눈으로 길을 찾기 시작했다.
30분? 아니, 한시간 정도 쯤 되었을까?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산중에서 해매다 보니 비는 갈수록 거세져 왔고, 거칠게 포장된 아스팔트에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게 느껴졌다. 이대로면 뉴스의 한 귀퉁이에 내 실종 소식이 올라올 판이었다.
'이쯤에서 큰길이 나와야 할텐데.... 그냥 비가 멈출때까지 기다릴까? 그래도 이 차가 1톤은 될텐데... 1톤 짜리면 쉽게 안쓸려 내려가지 않을까?'
조급해진 만큼 갖가지 생각이 한방울 한방울 머리속에서 부딪혀 왔다.
머릿속은 멈출지 계속 갈지 계속해서 갈등했지만, 결국은 계속 가는쪽으로 결정하고, 나는 계속해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점차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야단 났다 싶을 즈음.
먼발치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니 아스팔트에 차오른 물은 이미 타이어의 1/3은 찬듯 했고. 멀리 보이는 마을의 지대는 높아 보였다.
그거면 됐지 더 따져서 무얼 할까? 나는 서둘러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눈앞에 마을이 보이자, 비어있는 마을은 아닐지, 사람은 있을지 하는 그런 잡스러운 생각들이 하나 둘 떠올랐지만, 그래도 그덕 인지 어느새 마을은 조금씩 가까워왔고 작은 다리 하나만 남겨두고 있었다.
다리 양 옆으로 펼쳐진 하천은 거친 물결을 일으키며 범람하기 직전이었기에, 나는 속력을 높여 단숨에 다리쪽으로 향했다.
[모두가 편안한 이곳]
[이상 마을]
모두가 편안하다는 특이한 소개 문구를 본 나는 살짝 웃음이 났다. 감이 맛있다던지. 물이 좋다던지하는 마을의 특산픔과 특징을 적어놓는게 일반적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팻말이 있다는건 사람은 있다는 것일테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게 느껴졌다.
나는 조금더 속도를 높여 다리를 지나 마을로 들어섰다.
2.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때의 느낌은 스산함 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것은 낡은 가옥들이었는데, 그 가옥들은 낡았지만 깨끗했다.
으레 시골에 가면 있을법한 파이고 깨진자국 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의도적으로 옛날 가옥을 관광지로 개발 해놓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점은,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마을의 규모가 적지 않은듯 계속해서 가옥들이 줄지어 서있었다는 것인데.
이 정도 규모라고 하면 과장 좀 보태서 지방의 작은 도시 정도는 될듯 보였으나, 이상하게도 큰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집은 모두 1층 주택이었다.
나는 간단한 요기거리도 찾고, 혹시나 있을 마음씨 착한 주민에게 방 하나 빌릴 요량으로 마을을 살피며 슈퍼마켓, 음식점을 찾았지만, 이 마을은 그런건 필요하지 않은건지 그 흔한 마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트나 음식점은 시골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노인정도, 주민센터나 여타 다른 관공서 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들의 크기는 일부러 규모를 맞춘건지 비슷했고, 담장도 모두 맞춘듯 딱 사람 키만큼만 쳐져있었으며, 대문은 모두 나무문으로 된, 그런 한옥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별다른 소득없이 마을을 한바퀴 돌고, 나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원래 같았으면 차에서 노숙을 했겠지만, 차에서 몇시간이나 굶은 덕에 나는 차를 한켠에 세워두고 가까운 집 나무 대문을 두드렸다.
'톡톡'
똑똑 하는 소리도 아닌 보잘것 없는 작은 소리가 울렸다.
나는 노크할 요량으로 문의 한쪽을 살짝 두드렸지만, 이놈의 나무문은 침입자를 막을 생각이 없는건지 작은 힘에도 문이 부드럽게 열려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주인은 나와서 용건을 묻는, 일반 적인 그런 상황을 나는 생각했으니까.
그렇다고 문을 닫고 그냥 돌아가자니
누가 보면 이미 한탕하고 문단속까지 하는, 비맞은 도둑놈 행색으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문이 열리는 바람에 노크 소리도 크게 울리지 않았고, 어차피 이미 열려버린 문을 어떡하랴,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집 구조가 한눈에 보였는데, 집 안은 한옥으로 되어 있었고 마루와 그 안쪽 3면에 위치한 방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에는 창호지가 발라져 있었는데. 누구나 한번쯤 봤을법한, 옛 선조들의 생가나 문화재에 가면 볼 수 있을법한 그런 구조와 디자인 이었다.
대충 빠르게 눈으로 구조를 훑어본 나는, 마당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계십니까~?"
비가 무섭게 떨어졌지만 내 목소리 만큼은 묻히지 않고 집 안을 울렸다.
대답이 없자 나는 다시 한번 몇걸음 안쪽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계세요~?"
대답을 기다렸다가, 한두차례 더 불러봤지만 집안은 고요했고다.
그리고 이 상황이 불편해진 나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경악스런 상황에 깜짝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내가 들어온 문 앞에 무언가 서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사람이면 사람이지 왜 형상이냐고 말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때 당시에 내가 표현 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선택이었다.
그 것의 형상.... 아니, 그 사람의 피부색은 회색빛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