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낙엽이 비친 가을이면 눈에 호수가 생긴 기분이다
고인 채 흐르지 않는 호수처럼 나의 눈은 사무치도록 하늘을 투영하고 시든 것들이 떠다녔다
마치 낙엽을 다 세보란 말 같이 터무니없이 많은 게 그리웠다
2.
집마다 불이 꺼지면 고양이 물어 죽이는 들개가 돌아다닌 동네였다
가을비에 어미라도 찾는 새끼 고양이의 울음은 젖은 낙엽만큼이나 납작할 뿐이었다
늦은 밤 잠결에 외풍보다 소름 끼치는 어디 먼 급정거 소리가 무언가 죽은 거처럼 들렸다
3.
미치광이 쑥대머리 푼 바람이 비를 휘어 곡소리 흩트리던 밤
방정맞게 피리 불 듯한 창틀의 외풍에 세간살이가 다 시시덕대니
정작 주인인 날 이방인 취급하는 험담 같아서 집에서도 잘 곳이 못 마땅했다
4.
바람이 죽은 자의 목소리란 걸 언제부터 느꼈을까
현세로 번역되지 않고 그저 웅웅거리는 아우성에 이토록 서러운 건
내가 죽은 자를 안다는 것 말고 짚이는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