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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예계, 전대 미문의 협박 사건[BGM]
게시물ID : mystery_39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39
조회수 : 7610회
댓글수 : 38개
등록시간 : 2014/03/18 14:33:02
 
장화홍련 OST 이병우 - 돌이킬 수 없는 걸음
[BGM 출처]유튜브
http://youtu.be/N39JgpC67i8
 
 
 
[출처]*PopS WorlD*
글쓴이:깨야소두 님
 
[2차 출처]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http://cafe.daum.net/WorldcupLove/Knj/1211025
글쓴이:Marc Albrighton
 
 
1.jpg
 
KONDO MASAHIKO
콘도 마사히코 (1964년~)
 
 
 
 
쟈니스 사무소 소속의 콘도 마사히코(일명 맛치)는
 
열다섯의 나이에 일본의 전설적 드라마
 
「3학년 B반 킨파치 선생」으로 데뷔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 같은 드라마의 학생 역으로 출연했던
 
타하라 토시히코, 노무라 요시오와 더불어「타노킨 트리오」를 결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그룹으로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2.jpg
 
(타노킨 트리오 / 1979년 ~ 1981년)
 
 
 
 
타노킨 트리오의 선풍적인 인기몰이에 힘입어 
 
콘도 마사히코는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하기에 이르렀고,
 
1980년 발매된 그의 데뷔곡「스니커즈 블루스」는 발표와 동시에 오리콘 차트 1위.
 
발매 이틀만에 20만장을 넘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수립하였으며
 
남성 솔로 아티스트, 동시에 쟈니스 소속 아티스트로서 최초로
 
밀리언셀러의 대기록을 수립하는 등, 당시 일본 음악계의 역사를 고쳐쓰기에 이른다.
 
 
 
 
3.jpg
 
 
 
 
이러한 와중에도,
 
최정상의 아이돌로서의 길을 걷고있는 그의 성공을
 
조용히 지켜보는 어머니의 응원 방식은 남달랐다.
  
 
어느날, 그는 오사카 콘서트 도중 무대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왼쪽 팔 골절, 전치 한달에 해당하는 꽤 커다란 중상을 입게 된다.
 
이와 같은 긴박한 사실을 전하던 매니저의 전화에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하핳ㅎ 팔이요? 사내라면 그 정도는 부러져요. 콘서트 진행하세요.」
  
 
당황한 매니저는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어머님, 오사카 쪽에는 언제 오시렵니까?」
 
  
이에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
 
  
「갈리가 없잖아요! 왜 그정도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거에요.」
 
 
 
 
뚜뚜뚜...
 
 
 
 
이 전대미문의 전화통화 이후,
 
그의 매니저들은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역시 맛치의 어머니다..」라며..
 
 
 
 
(ㅋㅋㅋㅋㅋㅋㅋㅋ쿨하신 어머님과 이상한 매니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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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어머니 미에코의 엄하면서도 따뜻한 응원 속에서,
 
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데뷔 직후 일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발매한 싱글마다 연달아 큰 인기를 얻었으며,
 
네번째 싱글「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는 데뷔곡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1981년.
 
당시 홍백가합전과 더불어 가장 권위있던 시상식으로 칭송받던「레코드 대상」의
 
「최우수 신인상」이 그의 차지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순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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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회 레코드 대상 최우수 신인상 수상 장면)
 
 
 
「어때?」
 
「최고에요!!!!!!!!!!!!!!!!!!」
 
「이 기쁨을 가장 먼저 누구와 나누고 싶어요?」
 
「어머니입니다!!!!!!!!!!!!!!!」
 
 
 
수상 직후 터져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 뛰어다니며 무대를 헤집던 장난꾸러기 소년.
 
그런 그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대 위로 한 사람이 등장한다.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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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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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3회 레코드 대상 수상식에 서프라이즈로 무대에 오른 그의 어머니)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발을 동동동 구르며 수상식 무대를 뛰어다니던 그가
 
갑작스런 어머니의 등장에 순식간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영락없는 열일곱의 소년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처음으로 대중앞에 눈물을 흘리며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장면은 여러 일본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이후 29년이 흐른 후, 당시를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혀 몰랐어요. 그런 곳에 올 타입이 아니었던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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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히 충격적이라 칭해도 좋을 기념비적인 데뷔와 레코드 최우수 신인상 수상.
 
그의 연예 경력의 스타트는 화려했으며 이후로도 영광의 스타 가도는 계속되었다.
 
1981년과 1984년, 당시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던 브로마이드 판매량에서 1위 차지,
 
발매하는 싱글마다 잇달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돋보적인 아이돌로서 그의 인기의 행보는 식을 줄을 몰랐다.
 
 
  
이와 같이 나날이 치솟아가는 인기와 더불어 그를 따라다니던 살인적인 스케줄.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일정을 소화해내야했던 그는
 
자신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어버린 어머니가 무료해하는 것을 보고,
 
자그마한 찻집을 얻어주기로 결심한다.
 
아들의 가상한 마음 씀씀이에 어머니는 찻집을 운영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1987년 11월 23년. 
 
 
 
 
당시 그는 22살.
 
전년도에는 18번째의 싱글로「일본 가요 대상」을 수상하는 등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최정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그였다.
 
그리고 그날은 마침, 자신의 데뷔작품인3학년 B반 긴파치 선생」의 스페셜 출연의 촬영날이었다.
 
자신을 연예계로 이끌어준 원점이기도 한 작품의 촬영을 앞두고,
 
그는 대기실에서 그리운 데뷔 시절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비극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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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뉴스 영상)
 
 
 
 
「이곳은 요코하마 시 이즈미 구 카미이라 초입니다.
 
23일 오전 0시 50분 경 인기가수인 콘도 마사히코 씨의 어머니, 미에코 씨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골목길의 커브를 다 돌지 못하고 가벽에 충돌하여 중상을 입고 구급차로 실려갔습니다.」
 
(뉴스 보도 내용 中)
 
 
 
 
그녀는 찻집에서 집으로 귀가하던 와중, 
 
자그마한 운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만나고 만다.
 
처참한 사고현장 속에서 곧이어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이윽고 의식불명의 중태로 빠진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그의 아버지는 남동생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네 형에게는 말하지 말아라. 일로 바쁜 그 아이를 동요시켜선 안돼.」
 
 
 
쉴틈없이 짜여져 있는 맛치의 일정에 피해가 미치는 것을 우려한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남동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상황도 알지 못했던 맛치는 그 시각.
 
「3학년 B반 긴파치 선생」의 촬영에 열심히 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촬영에 지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그는,
 
돌연 울려퍼진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뜬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비통에 찬 그의 남동생이었다.
 
 
 
「 형.. 아버지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젯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
 
 
 
그제서야 끔찍한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에, 서둘러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다.
 
 
 
 
「상태는 어떤거야?」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괜찮다.
 
무슨 일 있다면 전화할테니 너는 걱정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거라.」
 
 
 
 
별 다른 동요 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조용히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곧이어 벤에 올라 다음 스케쥴 장소로 향했다.
 
분단위로 짜여져있던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 틈을 내 병원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허락된 것은 단지 어머니가 건강하다고 믿는 것 뿐.
 
 
 
매니저의 손에 이끌려 당도한 현장은 녹음실이었다.
 
연이어 발매될 싱글 「愚か者 (어리석은 자)」의 레코딩 현장.
 
이미 일이 밀려있었기 때문에 미루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레코딩을 담당했던 디렉터 쿠로다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 날만큼은 그의 노래가 달랐습니다.
 
전날까지 몇번이고 수록했지만 좀처럼 진행되지 않던 녹음이
 
그 날만큼은 돌연 달라져 있어 첫번째 테이크로 OK지령이 나버렸어요.」
 
 
 
이어 콘도 마사히코 자신은 이렇게 회상했다.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아
 
반드시 그 노래를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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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콘도 마사히코의 22번째 싱글이 될「愚か者 어리석은 자」)
 
 
 
 
 
레코딩 수록을 끝마친 그는
 
잠시 비어버린 일정의 틈 속에서 이렇게 간절히 바랬다.
  
 
「전화야, 걸려오지 말아라.」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전화벨이 울려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일부러 샤워기의 물을 크게 틀어놓고 방을 지켰다.
 
 
 
그러나 그날 새벽.
 
 
 
선잠에 빠져있던 그의 귓가에 다시 한번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울려펴진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버린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맛치? 내일 촬영 말인데..」
 
 
 
매니저로부터의 전화였다.
 
그는 마음 속부터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
 
이후, 그는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이렇게 회고했다.
 
 
 
「무서워서.. 그 전화벨 소리가 너무나도 무서워서..
 
저는 아직도 전화벨 소리에 공포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때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까지.
 
저는 모든 전화를 진동으로 해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전화벨 소리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병.. 그래요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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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그는 짜여진 일정대로「3학년 B반 긴파치 선생」의 추가 촬영 현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자 돌연 내리기 시작한 거센 비.
 
 
 
이동 벤 안에서 당황한 매니저는 이렇게 말한다.
 
「어라? 이상하다.. 예보는 맑다고 했는데.」 
 
일기예보와는 달리 갑작스레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점 거세져갔고,
 
촬영 현장에 도착한 그들은「폭우로 인한 촬영취소」라는 전언을 전해듣는다.
 
 
 
순간, 그는 비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는 매니져에게 이렇게 외쳤다.「어머니를 보러 병원에 가자!」
 
 
 
그렇게 어머니가 있는 카나가와 현의 병원으로 서둘러 향하던 와중.
 
돌연, 또 한번의 전화벨 소리가 그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아버지였다.
 
 
 
「 마사히코 서둘러라! 」
 
 
「 에? 」
 
 
 
평소와는 달리 절박한 아버지의 목소리.
 
어머니의 용태가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 어디인거냐! 」
 
 
「 지금 향하고 있어 」
 
 
「 빨리 와 줘라.. 」
 
 
「 뭐야 그게?」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그는 되물었다.
 
그러자 이어진 아버지의 한마디.
 
 
 
 
「 어서 와야 한다.. 늦어버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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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마사히코와 그의 어머니, 콘도 미에코)
 
 
 
 
 
이윽고 도착한 병원.
 
그는 정신없이 빗속을 달려 순식간에 병실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의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오열하며 곁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전기충격을 받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뒤이어 남동생이 병실로 급히 뛰어들어왔다.
 
정작 그 자신의 발걸음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심장 박동은 일직선을 그리며 사그라들었다.
 
의사들도 조용히 손을 내려놓았다. 
 
 
 
 
23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아..
 
 
 
참 오랜만에 네 명이 모였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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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1월 26일 자택에서 이루어진 고별식)
 
 
 
 
콘도 미에코 방년 42살. 너무나도 이른 이별이었다.
 
자택에서 이루어진 고별식에는 생전 그녀를 따르던 지인들이 참석하여 마지막 이별을 전했으며
 
비통에 찬 장례식 이후, 그녀의 시신은 평소의 유언대로 화장장으로 언도되었다.
 
화장 절차를 끝마친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유골을 모아 수습했다.
 
모든 장례의 절차가 끝이 났다.
 
 
 
 
 가만히 수습된 유골함을 바라보고 있던 그에게 매니저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자.. 이제 일하러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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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화장 직후, 레코드 대상의 노미네이트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는 콘도 마사히코)
 
 
 
 
이런 날 조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촬영이었다.
 
일본 청년관에서 행해진 레코드 대상 사전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
 
이런 날조차 웃으며 관중들 앞에 서야하는 공인의 비극적인 운명.
 
그는 모든 슬픔을 뒤로한 채 스테이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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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식 날, 제 27회 레코드 대상 금상 수상식 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콘도 마사히코)
 
 
 
 
그리고 해는 바뀌어 1987년 1월 1일.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 녹음했던 그의 22번째 싱글「愚か者 (어리석은 자)」가 발매.
 
발매와 동시에 이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온갖 음악 차트의 1위를 석권한다.
 
그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고, 엄청난 기세의 판매량과 더불어
 
1987년 한해를 대표하는 손꼽히는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이 심상치 않은 인기몰이에 그의 주변 사람들은,
 
지금껏 수많은 상을 휩쓸었던 맛치가 지금껏 유일하게 손에 넣지 못한 단 하나의 상.
 
당시 시청률 50%를 웃돌며 홍백가합전과 더불어 가요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 레코드 대상 」의 유력한 수상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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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발점이 된 제 29회 레코드 대상)
 
 
 
 
이 해의 노미네이트 작은
 
유난히도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한 곡들이 많이 랭크인 되있었기 때문에
 
과연 누가 대상의 영광을 거머쥘 것인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지는 판매량을 기록한「愚か者 (어리석은 자)」의 인기행보에,
 
그가 소속되어 있던 쟈니스 사무소(소속사)와 CBS SONY(레이블 회사) 모두
 
그의 유력한 대상 수상 가능성을 점치며 커다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CBS SONY는 대대적인 세일즈 홍보를 앞세워 그의 대상 수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또한, 레코드 대상은 맛치 자신에게 뿐 아니라 쟈니스 사무소로서도 최초의 수상이 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기에
 
쟈니스 사무소 또한 대대적인 푸쉬를 감행하며 나날이 커져가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1987년 11월. 찾아온 어머니의 1주기.
 
미에코 씨가 잠든 무덤가에는 맛치의 모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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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의 1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콘도 마사히코)
 
 
 
어느덧 눈깜짝할 사이 흘러가버린 일 년.
 
늘 매스컴의 뜨거운 관심속에서 나날을 살아왔던 슈퍼스타인 그에게 있어
 
어머니의 묘만이「맛치(예명/별명)」에서「콘도 마사히코」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는 스케줄이 빌때마다 어머니의 묘를 찾아 참배를 올렸고 1주년의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만큼은 수많은 보도진이 몰려들어 그의 참배 모습을 촬영했으며,
 
 또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 올해는 커다란 상이 하나 남아있지요? 」
 
 
 
「 그렇습니다. 이번만큼은 꼭 수상해서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어머니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굳게 다짐한 그의 결의는
 
당시 매스컴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전국적인 화제를 낳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품에 상을 안겨드리고 싶다는 그의 눈물어린 맹세에
 
많은 국민들은 가슴 깊은 곳으로 부터 응원의 매세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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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문 기사「맛치,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맹세하다. 레코드 대상을 타겠습니다」)
 
 
 
 
그러던 와중.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던 레코드 대상을 목전에 앞둔 1987년 12월 26일.
 
 
 
 CBS SONY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사무소 직원은 평소처럼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온 것은 묘하게 변조된 남자의 목소리였다.
 
 
 
 
 
「 맛치는 레코드 대상을 사퇴하라
 
사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 무덤의 밑을 잘 살펴봐라 」
 
 
 
 
 
뚝.
 
짧은 용건을 끝으로 전화는 끊겨버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CBS SONY의 직원은 떨떠름한 기분에 주위에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직원 모두가 입가에 쓴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짖궂은 장난이겠지 」
 
이에 멋쩍어진 직원도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 그렇겠지 」
 
 
 
 
그렇게 누구나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전화 한통.
 
그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틀 후, 12월 28일.
 
CBS SONY와 쟈니스 사무소에 동일한 속달 한통이 도착한다.
20.jpg
 
내용은 이러했다.
 
 
 
 
「 콘도의 어머니의 유골을 맡아두었다
 
상의 레이스를 사퇴해라
 
그러지 않는다면 유골은 처분하겠다 」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여진 믿을 수 없는 종이 한장.
 
이 경악스러운 내용에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무소 관계자들은
 
 황급히 경찰에 연락하여 협박장의 당도 사실을 전했다.
 
협박의 악질성을 고려한 경찰은 당장 진위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
 
사무소 관계자와 함께 묘지를 찾아 그녀의 무덤을 드러내기에 이르렀으나
 
이미, 그 안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무덤은 텅 비어있었다.
 
 
 
 
21.jpg
21.jpg
 
(콘도 미에코 씨의 유골이 도난당한 사실을 확인하는 당시의 재연 장면)
 
 
 
 
이 모든 것은 레코드 대상 3일 전에 벌어진 일.
 
당시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레코드 회사의 간부, 쟈니스 사무소 그리고 경찰 뿐이었다.
 
레코드 대상이라는 커다란 시상식의 중압감과 동시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맛치에게
 
이 경악스러운 사건의 진상을 적나라하게 전하는 것은 지나친 충격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 사실은 철저한 기밀로 부치기로 합의하였다.
 
 
 
 
22.jpg
 
(1988년 1월 4일「레코드 대상」 이후 행해진 유골 협박 사건 기자회견)
 
 
 
 
위 자료는 레코드 대상 시상식이 끝난 이후, 1988년 1월 4일에 행해진 사건의 기자회견.
 
기자회견에서 사무소 관계자와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발표했다.
 
 
「 레코드 대상 전까지 본인에게 알리지 않도록 하는것이
 
저희들로서 최선이라 판단했습니다. 」
 
 
당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여러 측면에서의 배려 하에
 
맛치 본인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레코드 대상의 직후였다고 전해졌다.
 
이 경악스러운 사건에 놀람을 금치 못한 일본의 국민들은, 기자회견의 내용대로
 
레코드 대상을 마치고 나서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맛치의 기구한 운명을 동정했다.
 
 
 
 
그러나 22년이 흐른 후에서야,
 
콘도 마사히코 본인이 직접 밝힌 당시의 진상은 달랐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하다.
 
 
 
 
당시 경찰의 도움으로 유골의 도난 여부를 확인한 직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사무소 간부들은 긴급 회의를 개최한다.
 
 
 
「 레코드 대상에 출전할지의 여부는 본인에게 맡깁시다 」
 
 
「 그건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습니까 」
 
 
「 어머니의 유골이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
 
 
「 맛치는 이제 어른입니다. 본인에게 결정하게 합시다 」
 
 
 
 
간부들의 치열한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은, 선택의 여부는 본인에게 맡기기로 하는 것.
 
결국 사무소의 간부들은 맛치를 회의장으로 불러내어 다음과 같이 전했다.
 
 
 
 
「 맛치, 진정하고 들어주길 바란다.
 
모친의 유골이 도난당했다.
 
지금 경찰이 조사 중이지만 상대는 레코드 대상을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출전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우리로서는 결정할 수 없으니..
 
너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회고하던 콘도 마사히코는, 이렇게 전했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져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과 친척들의 얼굴 그리고 남동생의 얼굴이 잔뜩 떠올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로서의 동료들..
 
쟈니스 사무소로서는 수상해본 적 없는 레코드 대상이 눈 앞에..
 
소니 레코드로서도 레코드 대상이 바로 손 닿는 곳에 있던 것입니다.. 」
 
 
 
 
어머니의 유골인가, 레코드 대상인가.
 
상 따윈 언제든지 받을 수 있었다. 그의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을 위해 방대한 노력과 시간을 쏟아 함께 노력해온 모든 스탭..
 
1년 여간 그의 수상을 확정짓기 위해 무수한 심혈을 기울여온 사무소..
 
그의 영광스러운 수상을 마음속으로부터 기대하고 있는 수많은 팬들..
 
또 돌아보면「소년대」「시부가키대」「히카루 겐지」(쟈니스 소속 그룹명)
 
그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수없이 많은 후배들도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러나 그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은 거대했다.
 
22살의 그에게 있어서 지나치게 가혹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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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미문의 유골 협박 사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질적인 협박 사건에
 
카나가와 현과 경시청이 공동수사를 진행하며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인근의 대대적인 수색 작업과 더불어 주변 인물들의 탐문 수사를 계속해 나갔으나
 
단 하나의 목격정보조차 없었으며 단서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범인으로부터 도달한 속달의 발신인은 도쿄 훗사시.
 
그러나 그 이상의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범인은 대체 누구인가.
 
 
 
과거 찰리 채플린,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유골 또한 도난 당한 적이 있으나
 
그 목적은 친선적인 요구나 열광적인 신도의 왜곡된 감정들이 불러일으킨 것으로
 
레코드 대상의 사퇴라는 악질적인 의도를 갖고 도난을 감행한 이번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또한 도난의 대상은 스타 본인의 유골이 아닌 모친의 유골.
 
 
 
일본 범죄 사상 최초의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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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당한 콘도 미에코 씨의 묘지)
 
 
 
 
아무런 수사의 진척이 보이지 않는 와중, 맞이하게 된 1987년 12월 30일.
 
레코드 대상 시상식을 불과 하루 앞둔 시점이 되어서도
 
콘도 마사히코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단 한 사람.
 
 
 
어머니의 유골을 잃은 슬픔에 비통해하고 있을 아버지에게
 
모두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에 전화조차 할 수 없었던 그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건다.
 
 
 
「 마사히코냐 」
 
 
「 소식은 들었지.. 」
 
 
「...」
 
 
 
아무런 답이 없는 아버지.
 
 
 
「 나.. 상 따윈 갖고 싶지도 않아. 」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그의 앞에서 아버지가 내뱉은 말은 단 한마디였다.
 
 
 
 
「 분명 네 엄마는 '가서 받아와!' 라고 할거다. 」
 
 
 
 
23년이 흐른 지금, 그는 당시의 통화를 이렇게 회고했다.
 
 
 
「 그 순간
 
아버지가 용서해셨다고 할까..
 
그런 기분에 휩싸여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그는 사무소를 찾아간다.
 
 
 
 
「 출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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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회 레코드 대상 시상식)
 
 
 
 
그렇게 맞이하게 된 1987년 12월 31일.
 
제 29회 레코드 대상 시상식.
 
 
 
그는 순백의 정장차림으로 시상식에 참가했다.
 
그가 껴안고 있는 참혹한 진상을
 
회장 내의 사람들, 그리고 시상식을 지켜보는 일본의 국민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레코드 대상이 비통한 사건의 무대가 되고 있다고는 그 누구도 생각치 못한 채
 
다만 모두가「돌아가신 어머니께 대상을 바치겠습니다」 라고 굳게 결의한 맛치가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기를 진심어린 마음에서 기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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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회 레코드 대상 시상식에 참가한 콘도 마사히코)
 
 
 
 
그러나
 
마사히코만은 달랐다.
 
그의 마음 속에 가득한 생각은 단 하나였다.
 
 
 
「 나를 선택하지마.. 제발 나를 선택하지마.. 」
 
 
 
 
그리고
 
이윽고 맞이하게 된 대상의 시상 순간.
 
 
 
 
영광의 대상 수상자는 다름아닌,
 
콘도 마사히코. 그 자신이었다.
 
 
 
 
 
 
(제 29회 레코드 대상 수상 당시의 영상 자료)
 
 
 
 
「그러면 발표하겠습니다. 제 29회 일본 레코드 대상은..
 
콘도 마사히코가 부른「愚か者 (어리석은 자)」로 결정되었습니다」
 
 
 
「 맛치, 지금의 기분을 표현해주세요」
 
 
 
「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얼 말할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일로서 면목 없지만..
 
작년 어머니를 잃게되어..
 
올해는 어두워져선 안된다고.. 밝은 곳에서 힘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렇게 열심히 분발해왔습니다.
 
 
 
오늘도 이 무도회관의 어딘가에서
 
어머니도 저와 같이 울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상 당시 영상의 내용 中)
 
 
 
결국 그는 최초의 레코드 대상 수상에 빛나는 영광을 품에 안았다.
 
6년 전 어머니와 함께 올랐던 레코드 대상의 무대.
 
그 같은 무대에서 이번에는 홀로 남겨지게 된 그였다.
 
 
 
 
그치지 않는 눈물 속에서 어머니를 향해 열창하는 그의 모습에
 
당시 방송 시간의 지체로 노래 중도에 방송을 끊어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에 서린 슬픔은 당시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스태프들의 마음마저 움직였다.
 
 
 
 
「디렉터, 지금 방송을 끊지 않으면 안됩니다.」
 
 
「 깔끔하게 방송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야. 이대로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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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영광을 안은 이후 열창하는 콘도 마사히코)
 
 
 
이별의 열창..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던 그의 끝없는 눈물의 의미는
 
곧 어머니와의 두번째 이별이었다.
 
 
 
결국 최후의 한 프레이즈는 방송되지 못했지만,
 
「愚か者 (어리석은 자)」의 눈물의 무대는 
 
일본 레코드 대상의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한 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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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레코드 대상의 무대에 6년전 올랐던 생전의 콘도 미에코 씨의 모습)
 
 
 
「당신의 일을 끝까지 해내세요..」
 
 
 
늘 입버릇처럼 어머니가 당부하던 말.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바랬던 아들의 모습이었을지도 몰랐다.
 
 
 
 
해는 밝아 1988년.
 
 
 
기자 회견이 열려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최초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유골이 협박의 대상으로 이용된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사건에 일본 열도는 경악했다.
 
이와 같은 악질적인 범행을 단행한 범인은 대체 누구인가.
 
 
 
그의 대상 수상을 시기한 업계 내부의 소행.
 
혹은 당시 콘도 마사히코와 공식 연애를 인정하고 있던 
 
또 한명의 선풍적인 아이돌, 나카모리 아키나의 열성 팬의 소행.
 
경쟁 레이블 회사의 방해 공작 등등.. 무수한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했다.
 
 
 
이후 공식선상의 방향으로 수사의 폭을 넓힌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본부를 설치, 적극적인 언론의 홍보를 통해 대대적인 수사를 계속해 나갔으나
 
그 이상의 단서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못한채 모친의 유골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 지금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묘에 가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모두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모두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안에서 구별은 지어놨지만 말이죠..
 
 
 
두번의 이별이 있었던 겁니다.
 
제가 이런 업계에 있지 있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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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이미 시효를 맞이하여
 
2010년이 된 지금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다.
 
(※ 위 방송 당시 2010년, 2012년의 지금까지도 미해결)
 
 
 
 
모친 미에코 씨의 유골 또한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콘도 마사히코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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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유골은 훔쳐가도
 
제 마음 속의 어머니를 뺏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에 당도하셨길 바랍니다. ※
 
 
 
 
 
 
 
 
 
 
 
 
3시간에 걸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펑펑 운 한 사람으로서 포스팅을 계획하게 됬습니다.
 
워낙 내용이 방대해서 포스팅 과정이 너무 힘들었네요, 또 길어졌구요..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수상 직후,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에 가장 가슴이 아팠답니다.
 
이제 영영 어머니의 유골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통감하게되는 그 순간.
 
그는 어떤 심정으로 노래를 불렀을까.. 상상도 가지 않네요.. ㅜ.ㅜ
 
세상에.. 저런 끔찍하고 비열하고 반인륜적인 행보를 저지르는 사람은 분명.. 
 
분명 벌받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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