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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따뜻한 겨울에 내리는 따뜻한 눈
게시물ID : readers_46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러면맞아요
추천 : 0
조회수 : 1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3:34:21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겨울의 시리도록 추운 날씨에 내리는 포근한 눈을 맞으며.

새해가 가기 전에 같이 눈을 맞고 싶다던 그녀는 첫눈이 내리는 날 약간은 먼 나의 집까지 찾아와 집 앞에 서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눈 쌓이는 거 보고 있었더니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

눈과 함께 내리는 그녀의 하얀 미소가 내 눈을 어지럽혔다. 내가 그녀에게 반해버린 그 순수한 미소가 오늘도 내 마음으로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오래 기다렸느냐고 묻는 말에 얼버무리는 그녀의 외투 모자엔 내린 눈이 이미 소복히 쌓여있었다.

근처에 공원으로 가자.”

눈을 맞으며 나와 걷고싶다는 그녀의 말을 떠올린 나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이 내리는 눈에도 모자와 우산은 쓰지도 않은 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장갑도 없이 맞잡은 그녀와 나의 손 위로 새하얀 눈이 내리고, 그녀와 나의 체온에 녹기를 반복한다.

꺄하하하!”

집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공원에는 어린 아이들이 벌써 뛰어놀고 있었다. 하얀 설원의 도화지 위는 이미 알록달록한 패딩을 입은 아이들이 점령한 그림이나 마찬가지.

지붕이 얹힌 조그만 정자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 옅게 염색한 갈색의 머리카락에 조그만 물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우리가 먼저 점령한 정자로 또 다른 커플이 가쁜 숨을 내쉬며 걸터앉았다. 그네들은 눈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그네들을 관찰하는 사이에 이번에는 그녀가 내 머리 위에 쌓인 눈을 털고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내 귀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깜짝이야.”

후훗. 귀여워서 그래.”

남녀의 대사가 바뀐 것 같긴 하지만 그녀가 나보다 연상임을 감안하면 귀여워 보인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기 마르면 바로 나가자.”

어지간히 눈이 맞고 싶었는지 그녀는 상기된 볼을 내게 비비며 나에게 말했다.

몇 년 전만해도 군대에서 욕지거리와 함께 삽머리를 날던 눈이 이렇게 좋아질 줄은 몰랐다.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던 1230일 그 해의 마지막 날이 되기 하루 전날의 눈 내리는 오후였으니까.

옆의 커플이 장갑과 모자로 얼굴만을 볼 수 있게 무장하고 일어선 것과 달리 그녀와 나는 아까처럼 얼굴과 손을 내리는 눈에 내놓았다.

말없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이 다시 눈이 내려앉기 시작했지만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신경 쓰이는 건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녀의 체온과 나보다 키가 작은 그녀와의 걸음을 맞추는 것뿐이었다.

그럴싸하게 눈옷을 뒤집어 입은 나무 옆을 지나자 장난기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한쪽 발을 들어 나무를 걷어차 그녀와 나의 몸이 눈 속에 파묻히도록 만들었다.

앗 차가!”

외투의 모자를 뒤로 걷어놓은 탓일까. 그녀와 나 둘 다 목 사이로 차가운 눈이 들어가 버렸다. 눈을 치우려고 외투를 벗는 나를 그녀가 휙하니 떠밀었다.

!

눈이 꽤나 쌓인 바닥이지만 내 몸은 그 정도는 가벼이 무시하고 바닥에 닿았다. 그런 내 위로 그녀가 눈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이건 복수.”

피식 웃는 내 입술로 그녀의 뜨거운 입술이 와 닿았다.

그럼 이건?”

이건 내 장난.”

아하하하!”

눈밭에서 그녀와 겹쳐진 채로 웃는 동안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며 버럭 소리 질렀다.

이것들아! 신방은 집에 가서 차려! 추워 뒈질 일 있어?”

우리는 눈과는 어울리지 않게 얼굴이 발개진 채로 일어났다. 분명 눈이 차갑기 때문은 아니었다.

완전히 젖어버린 옷 위에 패딩을 입을 수는 없어서 어깨에 대충 둘러메었다.

또 어디 갈까?”

옷이나 갈아입어야지. 그러다 감기 걸려.”

괜찮아. 별로 안 추우니까.”

눈이 오는 날은 덜 춥다는 것이 사실일까. 온 몸이 젖어있는데도 춥지는 않았다. 아니. 춥다는 이유로 그녀와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인다는 것이 싫은 것이다.

오늘은 들어가. 눈은 또 올 테니까. 그때는 네가 우리 집 앞으로 와줘.”

이제 겨우 12. 눈은 몇 차례고 더 올 것이다.

물론이지.”

눈이 오는 날이면 우리의 집 앞에는 서로가 번갈아 가며 서 있을 것이다.

쓰지 않은 외투의 모자에는 우리가 서로를 기다린 만큼이나 눈이 쌓여 있을 테고. 뻔히 거짓말을 할 게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모자를 보며 웃고 속아 줄 테지.

장갑도 끼지 않은 손을 맞잡고 그 손 위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는 것도 모르고 서로의 체온만을 붙잡고 있다가 서로에게 쌓인 눈을 또 털어주며 행복에 겨워 콩닥거리는 가슴을 숨기려 안간힘을 쓸 테지.

차가운 겨울에 따뜻한 눈이 내리는 날. 그냥 손을 맞잡고 걸어도 행복한 그 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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