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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선고 받고 쓰는 글
게시물ID : humorstory_4447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라밤바
추천 : 1
조회수 : 24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4/01 23: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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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아다. 아니, 고아였다. 외모도 인종도 다르지만 날 친자식처럼 사랑해주는 양어머니가 계셨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난 고아였다.
 
그리고 예전의 나는 한국에 있었을때 해서는 안되는 짓들을 많이 했다. 절도는 물론 성매매 알선부터 살인미수까지.
 
그리고 20여년이 지나서 지금의 난 부모님도 절친도 모르는 내 개인사를 이야기 하려한다. 내 개인사를 인터넷에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후면 난 죽으니까.
 
그리고 죽기 전에 내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많이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었으니까.
 
무엇보다 고아출신인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그리고 얼마나 멋진 사랑을 했는지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으니까.
 
무엇보다 이 세상에 없는 한 여자가 너무 그리워서.
 
인기얻으려고 쓰는글이 아니니, 내 글을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오히려 믿지 않았으면 한다. 예전에 나쁜짓을 너무 많이 해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냥 아주 어렸을때 일부터 써볼려고 한다. 회사도 때려쳐 남는게 시간이니.
 
대학도 못 나온 내가 내 이야기를 잘 쓸수 있을지, 또 내 이야기를 다 쓰기전에 내가 먼저 죽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 써보려 한다.
 
 
보통 친구들에게 가장 어릴 때 기억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5살 혹은 4살이라 말하던데 난 더 어리다. 난 3살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기분 좋은 기억은 아니다.
지금도 악몽을 겪을 만큼 아주 좇 같은 기억이다. 무슨 기억인지는 간단하다.
 
 며칠간 제대로 된 밥을 먹은적이 없어 아빠한테 배고프다고 울었는데 아빠가 날 발로 걷어찬 기억. 그 충격으로 난 기절했고 깨어나자마자 걷어차인 배가 너무나 아프고 배가 너무나 고팠지만, 또 맞기 싫어서 방바닥에 놓인 짝꿍(조그마한 새콤달콤 같은거)을 주어 먹은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신큼한 짝궁을 먹자마자 바로 토한기억까지.
 
난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냈다. 유치원과 구몬은 커녕 난 새벽에 한 번, 그리고 오후에 한 번 공병을 주으러 집밖을 나갔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80년대에 공병을 주어서 슈퍼가게에 갔다 주면 몇 십 원, 운이 좋으면 몇 백원을 주었는데 그 돈으로 난 간단한 요기거리를 사먹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난 무조건 아침에 공병을 주우러 나갔다. 공병을 주우러 나가지 않으면 그 날 하루종일 굶어야 했기에. 가끔 친아빠가 도박장에서 돈을 따면 짜장면 같은걸 시켜서 남긴걸 주곤 했지만, 대부분 돈을 잃고 오기에 난 대부분 친아빠가 술 먹으면서 남은 안주를 아침 겸 점심 요즘말로 브런치 삼아 먹었다.
 
난 그렇게 내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8살 때 즈음. 자주 병을 팔러 갔던 슈퍼마켓 아줌마가 왜 8살인데 학교 안 가냐 묻자 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 말했다가 아빠한테 맞았어요” 그렇게 대답했는데 아주머니는 심하게 놀라시더니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고 슈퍼에 경찰이 찾아왔고, 그렇게 내 지옥 같던 유년기는 끝났다.
 
난 경찰한테 진술 몇 번 하고, 난 천주교 산하 고아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야'라고만 불리던 난 이름과 생일을 받았다. 생일은 고아원 처음 온날, 이름은 김민형. 그리고나중에 고아원 원장수녀님에 의해 알게 된 사실인데 친아빠는 당시 5공시절말기 즈음답게 심한 실형을 받고 몇 년 후 감옥에서 죽었다고 한다.
 
고아원에 보내지고 얼마 안되 난 처음으로 국민학교라는걸 다니게 됬는데, 당시 구구단은 커녕 한글도 몰랐던 나라서 학교수업을 따라잡지도 못하고, 또래친구들을 처음 봤기 때문에 수줍음을 타 학교와 고아원에서 난 왕따였다. 그래도 그때 당시 너무 행복했다. 적어도 맞지는 않았으니까. 욕은 듣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도 제때 밥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점차 지나 공부는 못해도 공부를 하고 싶었던 열망이 컸던 나는 점차 공부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주말마다 찾아오시는 파란눈의 외국인 신부님 때문에 영어도 잘 할수 있게 되었다. 점차 또래친구들과 익숙해져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금새 또래들의 대장이 되었다. 그때 너무나 행복했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고아원에 새로운 여자아이가 전입을 왔다.
 
 고아원은 폐쇄된 공간이다보니 언제나 새로운 친구들이 오면 소문이 퍼지기 마련인데 그 여자아이가 왔을 땐 평소와는 다르게 소문이 빠르게 그리고 크게 퍼졌다. 소문의 내용은 ‘엄청 예쁜 여자애가 전입왔다’.
 
왠만하게 예뻐서는 소문이 아예 나지 않거나, 소문이 크게 나지 않는데.엄청 예쁘다는 소식에 당시 나와 또래 남자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했었고 당시 또래 남자애들의 대장이였던 나는 대표로 얼굴을 보러가기로 했다.
 
작전은 간단했다. 원장수녀님 방에 가서 약을 얻어온다는 핑계로 찾아가 그 애의 얼굴을 보는 것. 나는 작전대로 원장수녀님방에 찾아가서 약을 달라고 말했고 그 아이를 찾았다. 그 여자아이는 소파에 앉아 원장수녀님과 상담을 하고있었는데 아쉽게도 소파는 방 깊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의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약을 찾으러 원장수녀님은 사무실로 갔고 나는 또래대장 체면이 있는데 그대로 성과없이 돌아갈수 없어 일부러 동전을 그 아이 쪽에게 던졌다. 100원 짜리 동전은 정확히 그 아이 옆에 굴러 떨어졌고, 나는 일부러 “아 100원 짜리가 떨어졌네”라고 크게 말하고 주으러 그 아이쪽으로 걸었다.
 
동전앞에 거의 다 왔을 때 쯤 그 여자아이가 내 동전을 주워 동전위에 붙은 먼지를 불으며 털더니 날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그 여자아이는 입술은 살짝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소문만큼 아니, 소문보다 예뻤다. 얼만큼 예뻤나면 그때의 내가 당시 책받침 스타였던 소피 마르소보다 예쁘다고 생각했으니.
 
난 소문보다 더 예쁜 그녀의 모습에 충격을 먹어서인지 아니면 그녀가 울고있는 모습이 예전의 날 보는것 같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자리에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그 소녀와 눈을 마주쳤고, 약을 가지러 간 원장수녀님이 방에 들어오셔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애들에게 엄청 예쁘다고 전하고 그네 위에 앉아 그 아이를 다시 곱씹어봤다.
 
당시 인기 스타였던 채시라, 고현정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쁜 얼굴, 무엇보다 어린 나이의 소녀에게 볼 수 없는 그 슬픈 눈. 마치 예전에 매일 학대 받던 내 모습이 보여서였는지 그때 난 그녀 생각이 내 머리 속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밤 저녁시간에 그 소녀가 시설 내에 들어오자 순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정적에 빠졌다. 나처럼 소문보다 예쁜 얼굴에 놀랐을 것이다. 그녀는 방 구석에 앉았고,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고있었다. 눈치를 보다가 국민학교 여자그룹의 짱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다시 주변은 조용해 졌었다. “안녕?” 그녀는 여자 짱의 인사를 고개를 끄덕거리기만하고 다시 땅바닥을 내려보았다.
 
여자짱이 당황해 하는 모습이 보여서 우리는 숨을 죽였었다. 당시 우리 고아원은 여자 비율이 남자보다 훨신 많아서 실질적 짱은 여자짱이였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짱은 우리 고아원의 엄석대 였기 때문에. 여자짱은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 여자아이는 여자짱의 질문에 고개를 흔들거나 단답형으로 말하고 그 대화는 끝났다.(그렇게 기억한다.) 다행히 여자짱은 그리 화난것 같진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우리 시설 특성상 어린나이에 특히 여자아이가 시설에 오면 친절하게 대해줘도 다들 겁먹으니까. 여자짱도 그렇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생활에 적응하고 우리들은 친해질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몇달이 되도 그 여자아이는 벙어리라는 소문이 돌만큼 말을 전혀 하지 않았고, 점점 평판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때처럼 또래들이 8살이 아니라 11살 이였기때문에 이미 그들 스스로 그룹이 있었고,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왕따를 당하는 그녀의 모습이 몇년전의 날 보는걸 같아 난 너무나 안쓰러웠었고, 그 소녀를 도와주고 싶어 어느날 마음을 먹고 주말 미사가 끝나고 다같이 축구를 할때 난 아프다는 핑계로 빠져나가 그 여자아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혼자서 축구하는걸 슬픈 눈으로 보고있었다.
 
꼴에 난 남자라고 혜은이를 옆에서 보니 너무나 예뻐서 영화 라붐의 한장면 처럼 헤드폰을 끼워줘야 될것 같았다. 하지만 난 여자아이에 쑥맥이였고,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짓고있는 그녀에게 말걸기 힘들어, 계속 혼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그녀는 날 잠시 쳐다보고 고개를 깔짝 끄덕이더니 다시 창문쪽으로 바라봤었다.
 
너무나 차가운 반응에 당황해 그냥 축구하러 갈까 생각했지만 난 그녀옆에 앉아 말을 걸었다. "난 김민형이야. 이혜은 맞지?" 그녀는 이젠 날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기가 생긴 난 계속 말을 걸었다. 여전히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고개를 깔짝대긴 했지만 그래도 난 계속 말을 걸었다. 어떻게든 그너를 도와주고 싶어서.
 
아마 그 날 부터일 거다. 계속 시간만 나면 그녀에게 말을 건게. 그럴수록 수녀님과 외국인 신부님은 날 칭찬했지만, 친구들과 형,누나들은 날 안 좋은 시선으로 봤다. 여자짱이 마음에 안들어 하는 앤데 계속 친한척 군다고. 그리고 수녀님한테 점수 따려한다고. 
 
마침내 어느날 여자짱 누나가 날 불러서 말했다.왜 내가 이혜은 마음에 안들어하는거 알면서 자꾸 친한척 구냐고. 언젠가 이런일이 일어날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여자짱에게 준비했던 말들을 했다. "누나가 그 애를 마음에 안들어 하는걸 알지만,그 애가 적응 못 하는게  너무 안쓰러워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누나. 제가 누나 대신 그 애 도와주면 안될까요?"
 
누나는 내 마지막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 애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내 의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누나는 그 애를 도와주는걸 허락했고 난 그 애를 하루종일 따라다녔다. 그때의 난 그녀를 따라다닌게 정말로 혜은이가 안쓰러워서 였는지 아니면 예쁜얼굴에 반해서였는지 그때의 의도가 지금의 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난 내 의지로 그 애를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도와주었다.
 
아니 도와주었다기 보다 말을 걸었다. 학교에서도, 원내에서도. 그리고 내가 하루종일 따라다닌지 거의 반년만에 그녀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고, 1년이 지나서야 나에게 웃기 시작했고, 1년 반이 지나서야 나말고 다른 친구들을 만들었다.
 
혜은이는 얼굴도 예쁘고 무엇보다 착했기 때문에 혜은이를 싫어했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다는듯, 모두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여자짱 누나와 또래 몇명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진 않았지만, 대부분이 혜은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짱 누나는 그녀를 눈에 띄게 괴롭히진 않았다. 혜은이는 활발해지고 친구도 많이 생겼지만 나와 혜은이는 습관처럼 여전히 붙여 다녔다.
 
학교에서든, 시설에서든. 가끔 때론 그게 귀찮긴 했지만, 나에게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행복이 어울리지 않는지 그 행복이 오래가진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고 얼마 안되 이상한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였다.
 
 소문의 내용은 "헤은의 아빠는 범죄자고, 엄마는 창녀"라는 소문. 너무나 말이 안되는 소문이라 금방 묻일줄 알았는데 그 소문은 일주일이 넘게 퍼졌고 어느날 예쁜 혜은이를 못마땅했던 같은 반 아이가 쉬는 시간에 "너네 아빠 진짜 범죄자고 엄마 창녀야?" 라고 물었는데 혜은가 아무 대답을 못하자 소문은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혜은를 향한 왕따가 시작됬다. 처음엔 혜은이를 싫어했던 같은 반여자그룹으로 시작했지만 2학기되서는 같은 반의 절반 가량, 그리고 원생들의 절반까지 퍼져갔다. 괴롭힘은 혜은이가 인기가 많았던 만큼 왕따는 더욱 심하게 이루어졌다. 혜은이가 조그마한것만 잘못해도 '역시 범죄자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같은 반 남자아이와 얘기만 해도 '역시 창녀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나는 최대한 그녀를 향한 괴롭힘을 막으려고 했으나 혜은이와 반'이 달랐기 때문에 쉬는시간에 그녀의 반에 찾아가 괴롭힘을 막는게 한계였고, 원내에서도 형누나들이 그녀를 괴롭히면 "형, 누나 왜 그러세요. 형 누님들이 참으세요" 라고 웃으면서 장난치듯이 괴롭힘을 막는게 한계였다.
 
그렇게 괴롭힘이 길어지자, 그녀는 다시 시설에 처음 온때처럼 점점 말을 잃어갔다. 나는 혜은이를 다시 웃게하려고 유머1번지에 유행하는 개그를 따라하기도 했지만 혜은이는 날 향해 쓴 웃음을 지을뿐 웃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이러다 나까지 왕따당한다고 그냥 혜은이와 같이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난 그럴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부터 이미 혜은이를 많이 좋아했으니까. 물론 혜은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예쁜얼굴이였지만 그건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혜은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자신보다 남들을 챙기는 그 착한 성격, 그리고 가끔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혜은이를 보면서 나처럼 슬픈과거가 있다는 동질감을 느껴서 였을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가지 않고 나까지 왕따 표적이 되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혜은이는 나에게 말을 걸기는 커녕 오히려 나에게 자기 곁에 오지마라며 소리치면서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우리는 힘든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지옥같던 삶이 계속되던 어느날 밤. 아마 그 날 혜은이가 시설에서 처음 여자짱한테 맞았던 날이 었을거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둠속에 무언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가끔 짬밥을 먹으려고 밤에 도둑고양이들이 시설에 찾아오긴 했지만 분명히 고양이는 아니였다. 그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새벽에 순찰을 도시는 아저씨도, 수녀님도 아니였다. 그들은 순찰 도실때 손전등을 들고 나가시니까.
 
아마 평소같았으면 분명 무시하고 다시 잠에 들었을것이다. 도둑이라고 해봤자 가난한 시설내에 훔칠건 초코파이와 쌀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설명할수 없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예전에 고등학생형들한테 들은 방식으로 화장실 배관을 타 시설을 빠져나갔다. 시설을 빠져나가  밖을 뛰쳐나가는데 불빛하나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과가 없어 그냥 돌아 가려는데 어디선가 무언가를 끄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작은 소리의 사람 발자국 마저.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나는 방향으로 가보는데 누군가 담에 잡다한 것을 모아 발판을 쌓는 모습이 달빛에 비춰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도둑인지 알아서 얼어붙어있었는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혜은이였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었고 그 모습을 본 혜은이도 날보고 웃었다. 그 혜은이의 웃음이 거의 1년만에 본 혜은이의 웃음이였을거다.  그전에는 가까이만 다가가도 나까지 괴롭힘 당한다고 날 자신 가까이 있게하지 못하게 했으니까. 웃기는 커녕 매일같이 혼자 울기만 했던 혜은이였으니까.
 
나는 한참을 웃다가 웃음을 멈추고 혜은이한테 말했다. "어디가려고 혜은아?" 혜은이는 '날 아무도 모르는 곳' 이라고 말했고 눈물을 흘렀다. 그리고 혜은이의 눈물을 본 나도 따라 눈물을 흘렀다. 그때의 난 너무나 어렸지만, 세상이 너무 미웠다. 나와 혜은이는 도대체 전생에 어떤 잘못을 했길래 범죄자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또 왜 시설에서까지 괴롭힘을 당해야 되는지.
 
혜은이는 한참을 울고 내 볼에 키스를 하고 주머니에서 편지 2통을 꺼내 나에게 건내며 말했었다. "원래 이거 여기에 두고 가려고 했는데 지금 주는게 좋을것 같아. 초록색 편지는 너꺼고 다른건 원장수녀님한테 전해줘." 그리고 혜은이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라고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발판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가지마 혜은아. 혼자서 어떻게 살려고?" 라고 말했지만 혜은이는 아무 대꾸도 없이 계속 발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혜은이를 막을 수 없었다. 혜은이를 힘으로 막을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혜은이는 다시 지옥같은 시설생활을 견뎌내게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밖에서 혼자 사는게 훨씬 혜은이 입장에서 더 행복할수 있으니까.
 
나는 짧은 시간에 많은 시간을 하고 혜은이와 같이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발을 움직이려는데 내 발이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어렸을때 밖에서 받은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발이 움직이지 않았을거다. 그래서 내가 할 수있는건 '가지마 혜은아'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말하는것 뿐.
 
혜은이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아무 망설임 없이 발판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고, 불안불안한 발판을 타고 담장을 넘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믿기지 않겠지만(사실 나도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내 미래가 주마등처럼 보였다.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나와 혜은이의 웃고 우는 모습, 갓 성인이 된 우리가 외국에서 웃고 우는 모습, 그리고 혜은이의 장례식에서 내가 미친듯이 우는 모습, 그리고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내가 병원에서 혜은이의 사진을 안고 죽는 모습까지.
 
그리고 그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내 발이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떨림도 멈췄다. 난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내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혜은이를 사랑하지만 사회에 이제 국민학교 졸업하는 우리가 얼마나 고생할지 아니까. 범죄를 일으키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걸 아니까.
 
난 그냥 혜은이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혜은이는 발판을 넘고 담을 넘기 직전이였다. 그리고 혜은이는 날 쳐다보았다. 달빛에 비친 혜은이의 얼굴은 울고있었다. 그리고 혜은이는 담너머로 내려갔다. 
 
난 혜은이가 만든 발판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망설임 없이 담을 넘었다.
 
혜은이는 담을 넘어온 날 보며 다시 울기 시작했고 나도 울었다. 그리고  말했다. 같이 가자 혜은아.
 
혜은이는 눈물섞인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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