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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부제:화장실에서)
게시물ID : humorstory_444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13
조회수 : 150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6/04/09 03: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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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는 다른 분야에서만큼은 남들과는 다른 명석한 무뇌를 뽐내지만
유독 영어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 토끼 같은 존재가 된다.
하지만 저돌적이고 섹시한 성격 탓에 영어 벙어리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혼자만의 해외 배낭여행을 감행하곤 한다.
 
작년 여름에는 잠시 일을 쉴 동안 유럽행 비행기를 탔었다.
불알(없는)친구가 체코에 살기도 했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 무언가 충전재가 필요했기에
무리를 해서 급히 다녀왔었다.
해외로 막상 나가보면 우려하던 것과는 다르게 내가 영어를 좀 하나? 하는 자아도취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능숙하게 메뉴를 고르고 돈을 지불하고 버스 번호를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미국 시민권 심사대기 중이거나 필리핀 이주 노동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간 해외여행이었지만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낯선 환경이 두렵긴 했으나 몇 시간 거리를 활보하다보면 어느새 타국도 한국과 다를 것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정취나 문화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같으며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이 세끼 식사를 위해 돈을 벌어가며 산다는 것.
또한 여자 화장실은 언제나 붐빈다는 것이다.
이런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삶의 순환 구조를 새삼 다시 느끼며 나의 유럽 여행은 무사히 마무리 됐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체코에서 네덜란드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중간에 환승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2시간정도의 경유시간이 있었기에
혼자 배낭하나 짊어지고 네덜란드 면세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체코 공항에서 꾸역꾸역 밀어 넣은 햄버거가 동구녕 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네덜란드 면세점을 구경시켜 달라며 아우성 쳤다.
나는 생각했다.
체코에서 묵은 응가를 네덜란드 땅에 내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지를.
 
망설일 틈 없이 공항 화장실로 향했다.
꽤 넓은 구역이었지만, 혹시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내가 가야하는 게이트 근처 화장실을 찾았다.
때마침 그 게이트 일대는 이륙 비행기들로 넘쳤고, 비행기에 타기 전 화장실을 찾은 행렬은 화장실 문 밖까지 이어졌다.
 
내 앞의 까만 언니도 내 뒤의 파란 눈 꼬맹이의 눈동자도 불안한 듯 떨려왔고
나의 동공 또한 화장실 문을 응시하며 한여름 장마철 파도처럼 심하게 일렁였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때.
앞 다투어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화장실문을 빠져나왔고
내 앞 줄은 금세 줄어 어느덧 내 차례까지 다가왔다.
 
난 어기적거리며 가장 끝 쪽 화장실로 향했고
내가 바로 여기 짱 먹으러 온 대한민국 핵주먹이다! 라고 외치듯
패기 있게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그 칸은 이미 하얀 언니가 차지하고 있었고
무척이나 급했는지 문도 채 잠그지 못하고 동구녕 가리개를 무릎까지 내렸을 때였다.
하얀 언니는 소리쳤다.
꺄아아아아악!”
 
놀랄 만도 했다.
누군가 문을 열어서가 아니었을 거다.
여행 내내 시커멓게 탄 얼굴과 화장도 하지 않은 죄스러운 민낯
게다가 토마스 물병에 콜라를 담아 목에 걸고 있었으며
등에는 내 가슴 뽕처럼 빵빵한 가방을 둘러매고
한 손에는 폴프랭크 캐릭터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키 작고 까만 나잇값 못하는 안 생긴 타국여자애를 보고 놀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과를 하며 얼른 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중학교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면 안됐었다.
그게 아니라면 고등학교 때라도 영어공부를 했어야했다
그게 아니라면 대학교 때라도 영어 학원을 다녔어야했다
그게 아리라면 외화 더빙버전대신 원화를 즐겨 봤어야했다.
 
내가 본의 아니게 하얀 언니의 투명한 속살을 보며 내뱉은 말은
sorry가 아니었다.
순간 전생에 맞아죽은 변태라도 빙의된 듯 내 입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땡스
 
공옥진 여사님에게 병신춤을 배우고 싶은 순간이었다.
 
황급히 비어있는 옆칸으로 들어간 뒤 나는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체코에서 함께 온 응가도 그런 날 보며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았는지 다시 마음의 문을 닫은 후였다.
 
숨죽여 엉덩이로 슬피 울기를 십여분..
여전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게이트로 향했다.
겨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 후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이불을 뻥뻥 차곤 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 하얀 언니는 고맙다는 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고 있을까.
다시 한 번 화장실에서 그 언니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땐 나도 기꺼이 나의 속살을 보여줄 것이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언니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나의 치부인 응가 한 덩이까지 내비칠 용의가 있다.
난 의리 있는 여자니까.
 
거부하면 두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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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올렸던 글이긴 하나
똥게에서 묵은 똥처럼 묻혀버려 다시 이곳에 옮겨봅니다.
 
 
그날부터였을까...김치냉장고안에 갇히 재작년 김장김치마냥 내 안의 응가도 묵기 시작했다.
벚꽃 흩날리는 4월. 나는 이리도 서글프다.
이별하기 싫어하는 내 안의 그들과 나는 오늘도 오랜시간 사투를 벌였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날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 어디 너희뿐이랴.
그 마음 안다만 이제그만 구차하게 굴었으면 좋겠다
나는 깔끔한 이별을 원한다
내일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당장 약국에 달려갈 것이다
지하철역 앞 야구르트 아주머니께 요구르트도 열개 살 것이야
하얗고 아리따운 변기가 아닌, 전봇대 옆 길바닥에 버려지고 싶지 않다면 내일 내로 떠나라
서로 험한꼴 보지말고 기분좋게 헤어지자
그럼 이만. 아디오스
 
 
 
 
출처 www.lilir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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