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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1. 아델과 버스커버스커
게시물ID : humorstory_4452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afters
추천 : 4
조회수 : 63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5/01 21: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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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내가 버스커버스커(이하 버스커) 음악을 접한 것은 털리에 있는 아는 누나 S의 렌트하우스에서 1(2012 3 29)이 출시한 그날이었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앨범 출시 다음날이 생일이어서 호주에서 맛보기 힘들뿐만 아니라 생전처음 생일상으로 고추장찌개를 해준다 해서 놀러 간 날이었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 시즌1,2를 다 챙겨봤지만 시즌3는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 준비하느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소한 밴드이름이었다.

 

 타이틀곡이었던 벚꽃엔딩을 듣고 젊은남자가 웬 트로트를 부를까? 하는 느낌이 강렬했다. S에게서 아델과 함께 버스커 음악을 소개받았는데 당시에 아델의 음색과 음량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버스커 노래는 왜 한국에서 이 밴드에 열광할까 하는 의문점만 들었다. 당시에는 그랬다.

 

 대학교 4학년 10월 인턴으로 일하다가 문득 이렇게 취업이 된다면 나는 일만 하는 직장인이 되지 않을까 싶어 죽마고우인 친구와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했다. 부모님 승락만 있으면 당장 떠날 수 있는 젊은 나이였기에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호주에서 세 번재로 인구가 많은 도시라 부산과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돈을 벌 것인가 공부를 할 것인가를 두고 하루정도 고민하고 케인즈로 떠났다. 케언즈는 정말 특별한 도시였다. 라군은 환상적이고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많았다. 일주일정도 머물다가 우리는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털리라는 바나나농장이 있는 시골로 갔다.

 

 농장 일은 만만치 않았다. 새벽4시정도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6시에 농장에 도착해서 3시까지 일을 했다. 솔직히 육체적으로 군대만큼 힘들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시급은 시간당 $20이었고 오후 4시부터는 완벽한 자유였다. 축구를 하든 음악을 듣던 모든 것이 자유였다.

 

 털리에 있던 렌트하우스는 3개의 방에 공동구역인 부엌이 일자로 있는 구조였다. 우리 하우스에는 한국인만 5명이 지냈다. 5명은 현 하우스 오기 전 임시거처(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농장은 달라도 같이 놀았기 때문에 가까웠다. 그리고 유일하게 공동으로 돈을 걷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지냈다.

 

 이건 큰 차이가 있었다. 렌트하우스 내 국적이 다른 경우도 많았고 한국인끼리 있다 하더라도 전부 개인적으로 밥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자 2명에 남자 3명이 모두 똑같은 돈을 나눠서 걷어서 저녁을 같이 만들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완벽한 분담제였는데 이런 시스템은 당시에 찾아보기 힘들었고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를 부러워했다.

 

 우리는 호주에서 가족이상이었다. 오후 4시부터 취침전까지 여가시간을 함께 했고 매끼를 함께 하고 매순간을 같이 즐겼다. 농장 일은 불규칙적이라 일주일에 6일 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하루 또는 삼일 정도만 일할 때도 있었다. 바나나가 익지 않는 주는 하루 일하고 놀러 다니고 운동을 하고 주로 맥주를 마셨다. 냉장고에는 늘 맥주로 가득찼다.

 

 호주에서는 마트(당시에 털리 IGA)에서 술을 판매할 수 없고 술만 판매하는 리퀴드샵에서만 술을 구할 수 있었다. 맥주는 병보다 박스가 가격이 저렴해서 우리는 박스단위로 구매했다. 금요일은 짐빔과 잭다니엘을 같이 구매해서 짐콕(짐빔과 콜라 믹스)과 잭콕(잭다니엘과 콜라 믹스)를 마시곤 했다. 비율은 8:2 7:3정도가 완벽했다. 나중에 잭콕이 캔으로 나온걸 구매해서 마시곤 했다. 맥주는 투이스나 VB마시기도 했지만 퓨어 블론드를 즐겨마셨던거 같다.

 

 당시 술은 언제나 냉장고에 가득했으며 나는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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