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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산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웃집 사는 미하옐이 호숫가에 낚시 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쩐지 불길하더라니……. 그래도 그렇지 겁도 없는 곰이 사람들 다니는 골목에 떡하니 서있다니… 이건 아무래도 반칙이다.
지금 뒤돌아서 도망치면 살 수 있을까? 그래 난 선수로 발탁 되지는 못했지만, 나름 장래 유망한 복싱선수였잖아.저 녀석이 그저 날 바라보고 있는 지금이라면 도망칠 기회가 충분히 있다……. 그래 도망치자.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 살아남는 거야.
“비참하게 도망칠 생각인가?”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도망치라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분명, 눈앞의 곰 역시 그 소리를 들었을 터……. 가엾은 녀석 같으니. 그냥 가만히 숨어있었다면 나 하나로 끝났을 지도 모를 일을…….
나는 쓸 대 없이 참견장이를 걱정했다. 그리고 걱정을 뒤로하고, 도망치기 위해 다시 호흡을 준비했다.
“자네 앞에 나 같은 장애물이 있었던 적이 있었지. 그 때마다 자네는 줄곧 도망쳐왔어. 바로 이 산으로 말이야.”
저…저 곰이 하는 말이 들리는 것이었나? 분명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 나는 뒷걸음질 치며 침을 삼켰다.
만약 진짜 저 곰이 하는 말이 라면, 정정해줘야 한다. 난……,
“난…! 도망치지 않았어!”
곰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천천히 다가왔다. 육중한 몸집……, 나를 해칠 것 같아보이진 않았지만, 탱크를 마주하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어린 곰이었을 때 마주한 당신은 언제나 당당했지. 난 그런 당신을 몰래 지켜보며 자랐어. 흠… 그냥 편하게 자네가 모르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고 해두지. 그게 이해하기 편할 태니까.”
곰은 내 옆에 걸터앉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 옆에 있는 큰 소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등을 긁어댔다.
“근데 말이야. 참 우습지. 난 네가 하는 주먹질을 보면서 쉴 새 없이 익히고, 그 힘으로 이 숲의 우두머리가 됐는데, 정작 그걸 가르친 당신은 숲은커녕 인간들 사는 마을에서도 별 볼 품 없는 사람이 되지 않는가?”
나는 ‘곰이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없다.’ 에 대한 생각을 그만 두었다. 이 녀석은 분명히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녀석임에 틀림없었고, 녀석의 말마따나 나는 늘 재능에 기대었으면서, 그것으로 아무것도 이룬 바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쪽이었다.
“운이 나빴어. 늘 상대는 나보다 한 가지씩 더 가진 녀석이었거든. 너희 곰들은 그냥 발톱과 이빨로 싸워서 이기면 되지만, 인간들은 그렇지 않아. 내가 중요한 경기마다 마주한 복싱이란, 둘이 주먹으로 결판을 내는 싸움이 아니었어. 때로는 돈, 때로는 인맥……. 그런 것들이 자질보다 더 중요했다고. 난 그런 게 없이 태어났지. 그리고 그 죄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비빌 언덕이라곤 너 같이 커다란 곰이 사람 다니는 길에 튀어나오는 뒷산 밖에 없지.”
나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궜다. 살다 살다 곰에게 까지 잔소리를 듣는 구나.
곰은 어느새 등 긁기를 마치고 얌전히 옆에 앉았다. 그리곤 바닥을 툭툭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곰의 권유대로 옆에 앉았다. 녀석의 따듯한 옆구리가 내 등에 닿았다.
“내 경우는 체격이었어.”
곰은 천천히 나를 바라봤다.
“…….”
나는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서커스단이 망하면서 이 산에 풀어졌지. 서커스에 쓰이는 곰들은 작은 곰들이라는 거 알고 있나?뭐… 용도마다 다르겠지만 말이야.”
녀석은 발톱으로 턱밑을 긁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부모님이 작다보니 나도 작은 곰이었어. 그렇지만 원망하지 않아.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나는 야망이 있었지. 나는 작지만, 이 큰 산을 내 영역으로 삼겠다는 야망 말이야. 아니. 꿈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곰은 내 얼굴만한 앞발을 핥더니, 다시 턱을 긁었다.
“인간들의 싸움은 ‘다음기회’라는 완벽한 보상이 있는데 어째서 넌 도망친 거지?”
“도망친 게 아니라니까! 그만 둔거야!”
나는 멍청한 곰에게 소리쳤다. 내 외침에 그는 민망한지 턱 긁는 것을 멈췄다.
“애정이 없어졌다고! 생각해봐! 네가 긁던 소나무에 사실 진드기가 잔뜩 숨어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넌 다시 소나무에 등을 긁어 댈 수 있을까!?”
“진드기를 없애면?”
“그 수많은 진드기들을 어떻게 다 없애?”
“난 늘 이 소나무에 등을 긁어댔다면, 그 소나무가 진드기에게 더럽혀졌다 할지라도 포기 하지 않았을 거야.흠……. 질문을 바꿔보지. 그렇다면 다른 길을 찾은 건가? 내가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곰은 내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코를 킁킁 거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내 몸을 내려 보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아직도 선수시절 입었던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네 말이 맞아. 난……. 포기하지 못했을 지도……”
곰은 내 어깨에 그의 육중한 손을 얹었다. 그러자 무게감과 따듯함이 같이 느껴졌다.
“……너 왜 나한테 이렇게 까지 용기를 주는 거야?”
“말했잖아. 난 네가 산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따라하고 연마해서 이 숲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그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네.”
나는 몸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꿋꿋이 폈다. 그리고 곰에게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있잖아. 너 이 산의 우두머리라고 했지? 그럼 매일 운동하러 와도 될까? 기술 자체는 어릴 때 보다 더 좋아졌다고. 너도 배울 게 있을 거 같은데?”
곰 역시 나를 따라하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술이라……. 좋아 네가 다시 재기하겠다고 약속하면 옆에서 널 지켜봐 주겠어.”
나는 주먹을 쥐고 그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곰 역시 손을 뻗어 내 주먹에 마주 댔다.
“당장 오늘부터 다시 주먹을 쥐겠어. 더는 지체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마을까지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지. 호수를 가로지르면 단번에 갈 수 있다네.”
그를 따라 한참을 걷자. 호수가 나왔다. 호수는 추위에 단단히 얼어붙어 트럭도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호수 너머로 마을이 보였다.
“어. 마침 마을이 보인다. 고마워. 여기서 부터는 내 힘으로 갈 수 있어.”
“호수까지는 내 영역이라네. 그곳 까지는 바래다주고 싶군.”
“고마워… 친구.”
한편 미하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혹시 생수통에 보드카를 넣어온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복싱 유망주였던 세르게이가 곰을 길들이다니……. 그는 같이 온 여자친구에게 핸드폰을 건네고, 쳐다보기 두려워서 고개를 돌렸다.
“아 시ㅂ… 이 거지같은 나라를 뜨던가 해야지…….”
출처 | 첫번째 짤방 마지막 출처는 루리웹 이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잘 안나요 ㅠㅠ 두번째 짤방 출처는 사진에 적혀있듯 9gag입니다 '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