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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으로 신앙을 되찾아 준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55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30
조회수 : 2785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6/05/25 11: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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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작은 형은 소도둑놈처럼 생긴 외모와 다르게 겁이 많은 편이다. 
어린 시절 TV로 엑소시스트를 본 뒤 혹시 훗날 만날지도 모르는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도 했지만 
여전히 겁이 많다.
강하면서 유연한 남자가 되기 위해 태권도, 유도, 요가까지 했지만 여전히 겁이 많다.

작은 형은 밤에 배가 아프면 있는 힘껏 식은땀까지 흘리며 참다가 결정적 순간이 왔을 때 화장실(당시 화장실은 집 밖 외양간 옆에 있었다.) 
에 갈 때 항상 나를 데리고 간 뒤 문밖에 있는 내게 노래를 시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새벽에 화장실을 간 형을 위해 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부르고 있는데, 방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어떤 여인이 비틀거리며 빛나는 구슬을 안고 나오는 것을 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 지르며 
주저앉았고 구슬을 든 묘령의 여인도 나를 보며 소리 지르다 구슬을 떨어뜨렸다. 잠시 후 구슬을 들고 있던 묘령의 여인은 어머니였다는 것과 그 
정체불명의 구슬은 달빛에 반사된 도자기 요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친환경 푸세식 화장실에 빠져 똥과 함께 허우적대는 작은 형의 
"살려주세요!!" 라는 외침이 늦은 새벽 마을에 울렸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겁이 많은 작은형을 꾸준히 놀렸다. 둘이 고추밭(우리 고추밭 옆에는 동네 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에서 일할 때 
심심해서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며 

"형.. 형.. 저기 산에 아까부터 소복 입은 할머니가 우리 계속 바라보고 있어. 아니 노려보고 있어." 
(물론 할머니는 무슨... 고라니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작은 형은 못 들은 척 일만 하고 있었다. 분명히 내 말을 들었는데 무서워서 산 쪽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형도 보여? 나만 그런가.. 으악.. 할머니.... 저 할머니 우리 쪽으로 온다!!" 

내가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척을 했을 때 산 쪽은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던 작은형이 나보다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밭에서 나와 주기도문을 외치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형 물로 들어가!! 귀신은 물에 들어오지 못한데!!" 라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을 때 혼자 개울에 빠져 "귀신아 물렀거라!" 
라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내 입가에서 "븅신.. 후후후훗.." 이란 말이 입가에서 아주 작게 나왔다. 

얼마 전 개봉한 <곡성>을 보고 "그래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작은형에게 전화했다.

"형, 곡성 봤는가?"

"아니 안 봤는데.. 재밌냐? 나 시빌워도 못 봤다.."

"와.. 시빌워 따위를 곡성에 비교하면 안 되지.. 곡성에 비하면 시빌워는 애들 전대물일 뿐이야.. 형 곡성 꼭 봐.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 이렇게 
감동 있는 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 형도 꼭 봤으면 좋겠어.."

내 머릿속에는 그동안 형을 영화로는 골탕 먹인 적도 없고, 컴퓨터로는 와우만 할 줄 아는 컴맹인 작은형이 검색이라는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형은 미끼를 물었다.

"성성아.. 그런데 영화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가야겠다. 어머니한테 눈물 쏟게 하는 영화라고 같이 보러 가자고 했는데 안 가신다고 하네.." 
(사실 어머니도 내가 절대 작은형과 곡성이라는 영화를 보지 말라고 손을 미리 써놨다.)

"곡성은 형 혼자 가서 봐야 해. 형은 감수성 예민해서 해운대 보다가도 펑펑 울었잖아.. 곡성 보면 분명히 형 대성통곡할 건데..
그리고 낮에 보면 사람들 많아서 울고 그러면 부끄럽잖아. 웬만하면 밤늦게 하는 거 봐. 사람도 없고 편하게 울다 와."

"그.. 그렇지.. 슬픈 영화는 혼자 봐야지..."

작은형은 밤 10시에 상영하는 곡성을 보기 위해 시골집에서 극장이 있는 시내까지 1시간 20분 동안 운전했다. 
그리고 거의 3시간 후 전화가 왔다. 

"효진아!" 를 부르며 절규하는 곽도원에게 빙의 되었는지 작은 형은 절규하며 외쳤다.

"야이 시벌놈아!!! 감동적이라며!! 이 자식아 극장 안이 눈물 바다 라면서!!"

"내가 그동안 살면서 한 두 번 그랬소? 나는 그냥 미끼를 던졌는데 형이 그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고..."

"미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 집에 혼자 어떻게 가!! 너 당장 내려와 이 자식아!!"

"안 가! 아니 못 가"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거야! 이 자식아!!"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 

"뭔 개소리야!! 너 다음에 보면 진짜 내 손에 죽었어.."

"내가 형 손에 죽을 거 같아?"

"또 무슨 소리야.."

"와따시와 아꾸마다..." 

그날 스무 살 이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던 작은형은 25년 만에 찬송가를 외치며 운전했다고 한다. 
그렇게 난 형에게 잃었던 믿음을 찾아줬다.
출처 "와따시와.. 아꾸마다.."
적어도 작은형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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