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을 발견하고부터 불은 우리의 생활에 뗄래야 뗄수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또한 이놈은 잘쓰면 우리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지만 잘못쓰면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요. 그만큼 양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놈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매년 겨울마다 우리에게 슬픈소식을 들려주곤 하는 것도 불이란 놈이지요.
하 지만 잘쓰면 또 이보다도 고마워지는 녀석이 없을 정도니...정말 물, 불, 바람, 칼 등은 그 쓰임새에 따라 그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네요...특히나 저같은 요리사에게는 물이나 불은 정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이지요.
제가 처음 칼을 잡았을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때가 아마...지금으로부터 약 15년전 쯤이라고 기억되어지네요...정확히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방학과제로 곤충수집을 하러 에베레스트를 올라갔을 때였으니까요.
저는 산에서 필요한 각종 물건들...즉, 레펠, 안전띠, 텐트, 침낭, 코펠, 버너 등을 베낭에 넣어 등에 지고, 한손에는 곤충 수집통을, 한손에는 잠자리채를 들고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대충 기억하기로 1500미터 부근이었다고 생각되어지네요. 저희가 산을 오른지 약 52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으니 대충 계산해보면 그정도의 계산이 나와지네요.
뭐... 물론 1500미터야 하루만에 올라갈 수 있지만, 곤충을 채집이 목적이었기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던 것입니다. 뭐...약간 힘이들기도 했었지만 방학과제이니만큼 또 우등생이었던 제가 선생님을 실망시키는 짓은 꿈에도 하기싫었던 터라 정말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또한 이미 간단한 요리는 할 수 있었던 터라, 밑반찬만 약간 싸들고 올라가면 밥을 해먹으며 약 일주일가량은 견디던 젊을때라 크게 무리가 가지는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런것이 아닌지 어머니께서는 밑반찬을 싸주시며 끊임없이 걱정을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산길을 조심하라며 엑스칼리버와 m16소총을 주시더군요. 이미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해오던 곤충채집인데 뭔 걱정들이 그렇게 많으신지...하지만 전 우등생에 효자였기 때문에 그런 부모님들을 안심시키고 집을 나섰지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해발 1500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제 수집통에는 약 80센티 정도 나가는 장수풍뎅이와 1미터 22센티의 사마귀, 50센티 가량의 말벌들이 잡혀있었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 저는 대략 보기에도 90센티 이상으로 보이는 메뚜기를 쫓고있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녀석의 설명을 약간 곁들이자면 녀석의 이름은 '주무랑마 메뚜기'라고 하는데 보통의 메뚜기와는 다르게 추위를 좋아하고 육식을 하는 무시무시한 녀석입니다. 얼마전에 뉴스에서 이녀석이 멸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어 더이상 서식하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워낙 홀로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어디 숨어서 살지도 모르는 녀석이지요.
여튼 이녀석은 제 어릴때에도 꽤나 품귀한 녀석이었기에 이녀석만 잡으면 이번 곤충채집 1등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뒤를 쫓았지요. 한번 뛸때마다 10미터씩 날아가는데 어찌나 잡기가 힘들던지 하마터면 총을 쏠 뻔 했었지요. 총을 쏘면 녀석의 피부가 망가져 상품가치가 떨어지기에 1등을 하고픈 마음에 간신히 참았습니다.
여 튼 그렇게 그녀석과 씨름을 한지 10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잠자리채로 녀석의 머리를 잡을수 있었고, 또 그렇게 2시간을 실랑이한 후에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녀석을 잡았다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소주를 한병 뜯었지요.
그 렇게 소주를 한잔 마시니 속이 확...풀리며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5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이녀석만을 쫓아다녔으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저는 바로 물을 끓이고 밥을 하려고 베낭을 열었는데...아뿔싸!!어제 야영했던 곳에 쌀을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절망하며 다른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밑반찬으로 싸왔던 김치와 무말랭이가 남은 음식의 전부더군요...
저는 어떻게 해야하나...너무 배가고파서 실신직전인데....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어디선가 '메뚜기를 튀겨먹으면 맛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기억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곤충채집 1등이 아깝기는 하였지만, 그것도 제가 살아있을때나 좋은것이지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생각에 아버지께서 주신 엑스칼리버를 꺼내 녀석의 목을 따고 날개와 다리를 자른후 배를 갈랐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데기도 뜨거운 내장을 모두 끄집어 낸후 녀석을 통나무에 꽂은 후, 모닥불을 피우고 녀석을 간장에 잘 버무려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여튼 그렇게 잘 익은 녀석은 제 초등학교 3학년의 방학과제 1등을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제 배고픔을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3일 뒤, 에베레스트에서 내려온 저는 비록 곤충채집에서 '시가르마타 외눈잠자리'에 밀려 1등을 하지 못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잊지않고 요리사가 되어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저에게는 참으로 잊지못할 기억입니다. 또한 비록 뛰어나게 맛있는 요리는 아니지만 제 요리를 사랑해주시고 찾아주시는 분들에게도 제 저러한 경험이 소중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