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동차부품공장 하도급 업체에서 2교대 근무를 하고있다. 하도급업체라 함은 최저시급의 대명사 아니겠나. 하루 12시간이상의 노동에 낮밤이 뒤바뀌는 고생속에서 오래 버틸이가 몇이나 될까. 뭐, 예상대로 얼마 안된다. 들어왔다해도 금새 도망치기 일쑤고. 그래서 언제나 만년 인력부족을 이겨내며 일해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악조건에서 벌써 3개월째 버티며 일을 하는 고3아이가 하나 있다. 편의상 가명으로 현수라고 하자.
어지간한 고3의 아이들은 일주일이라도 버티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도망치는 일이 많았다. 여긴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불구하고 택시비조차 안나올 만큼의 시간을 버티고 택시를 타고 도망가 버리는거다. 뭐... 고 3이면 일을 해봐야 얼마나 했겠나.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중간에 구멍난 인력만큼 조장인 내가 고생량이 많아지다보니 그렇게 도망가는 아이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건 어쩔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3개월씩이나 군소리없이 싹싹하게 버틴 현수를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놈 참한걸.
서론이 길었다만 방금 퇴근하며 현수와 있었던 대화다. 어제 출근길엔 비가 왔었다. 그랬기에 퇴근하는 이들의 손엔 우산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어? 형은 우산 어디있어요?" "가방안에 콤팩트하게 넣어놨지. 이래서 난 비오는 날이 싫어. 우산은 콤팩트한데 내 덩치는 크잖아. 그래서 무릎밑으로는 다 젖어버린다고. 이거봐 신발도 아직 덜말랐잖아."
참고로 내 키는 187이다.
"아... 그래도 저는 키가 부러운걸 왜일까요?" "네 키가 몇이지?" "173이요." "대한민국 남자 평균키는 되네!"
기운을 복돋아주고 싶었지만 딱히 만족은 하지 못한 눈치였다. 별 수 없이 내가 평소 주장하는 긍정론을 내세우기로했다.
"평균키면 네가 대한민국 절반보다 크단 얘기야." "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괜찮은데요?"
순진한 녀석. 역시 젊은이는 리액션이 좋았다.
"그래. 컵에 물이 반이 있으면 '아직 반이나 남았잖아' 하는 마인드! 인생은 이렇게 포지티브하게 사는거야!" "긍정적인 마인드 진짜 괜찮은데요!" "그래 키같은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거지!"
어느새 통근버스를 타는곳에 도착했다.
"알았지? 긍정적인마인드!" "네! 형!"
"그래! 잘가라 난쟁아!" "!! 헐!"
당황해하는 현수의 등을 토닥이며 우린 각자의 퇴근버스에 올라탔다. 알겠지 현수야. 키는 크고 봐야한단다. ㅋㅋㅋㅋㄱ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ㄱㅋㄱㅋㅋ
--------- 다 적고 보니 안웃기네요. 글 맛깔나게 쓰는 사람들 되게 부럽네요. 아깐 되게 웃겼는데 왜 쓰고 나니까 나만 쓰레기인거 같지.....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