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중학교 미술시간의 추억이 떠오른다.......
'오늘은 주제는 자유화다... 무엇이든 그리고 싶은것을 그려...'
인어공주의 문어마녀같이 생긴 미술선생이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했고
이말을 듣는 순간 난 '오호라~ 두시간 벌었네... 놀아야징~'하고 생각했다...
책상위에 스케치북만 떡 하니 펴놓은채 옆,뒷자리 아이들과 잡담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날따라 얘기가 어찌나 신나던지 같이 얘기하던 친구들은 각자 그림도 열심히 그려 가며
놀았으나 난 선생님이 내자리를 지나갈때만 뭐 그릴까 고민하는척 했고 뒤돌아 얘기하는라 실제론 전혀 그리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대수롭지않게 지나가던 선생님도 점차 아무것도 그려있지 않은 내 스케치북을 보고 있는것 같았고..
나도 약간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교실을 천천히 돌던 선생님이 내자리를 지나치지 않고 한동안 계속 서있기까지 했다...
그럴땐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으며 마치 고뇌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다...
결국 2교시짜리 미술시간의 1교시 수업이 끝날때쯤 선생은 내자리에 멈춰선채 나즈막히 말했다...
"너는 왜 아무것도 그리지 않니?"
난 선생의 눈을 또렷히 보며 대답했다..
"전... 아무것도 그리고 싶지 않은데요..."
회심의 미소를 숨긴채 속으로 난 생각했다.
'자유화라매? 자유화~ 어쩔래? 어쩔래? ㅋㅋㅋㅋㅋㅋ'
웃는것도 같고 벙찐것도 같은 묘한 표정의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여전히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하지 말고 빨리 그려라~ 하다못해 머리카락이라도 그려!"
난 억울했지만 그냥 "아~뇌이에~"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그리는 척 스케치북만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하지만 이제와서 소신을 굽힐순 없는 일이였다...
쉬는시간이 지나 2교시가 시작됐고 여전히 난 연필만 쥔채 종이위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왠일인지 선생님도 내자리를 지날때 더 이상 아무말도 없으셨다...
이제는 옆,뒷자리의 애들과 잡담도 하지 않고 오직 나와 선생님 간의 자존심 대결만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 마치 명상하듯 지긋이 두눈을 감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윽고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난 두눈을 떳다...
교탁에서 나를 주시하며 다가오는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어쩔수 없다.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난 쥐고있던 연필로 도화지에 일격필살의 한 획을 재빨리 그었다...
문어마녀선생이 다가와 내 스케치북을 노려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이거 머리카락 그린거냐?...."
"네"
난 담담히 대답했고... 한 5초정도 정적이 흘렀던것 같다....
"손올려"
"네"
난 억울했지만 손바닥을 필수밖에 없었다..
"돌려"
"네?"
"손등이 위로 보이게 하라구~"
그렇다 그날 난 세로로 세운 30센치 자로 손등(정확히는 손가락등)을 20대 정도 맞았다...
자기손을 자기가 한번 이렇게 한대만 때려보라... 진짜 눈물이 맺힌다...
지금도 그순간을 생각하니 손가락이 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