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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10...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
게시물ID : humorstory_4480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길찾음별
추천 : 0
조회수 : 88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2/15 13: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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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2312.png


01410... 띠~~~~익~~ 취지직...


아마 이 때부터 네트워크 세상에서 살았던 듯 싶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가 커지기 전에 곳곳에 사설 BBS가 있었다.
난 10명 남짓 접속하는 게임 관련 동호회에서 활동했었다.


시삽형~~ 하면서 시작했던 활동 덕분에 한달 전화비가 17만원 나와 어머니께 엄청나게 혼나기도 했다.


나중에 시삽은 사설BBS를 접고 나우누리에 작은 게임동을 만들었고 우리도 따라서 거기로 옮겼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술은 더욱 발달하고 모뎀에서 랜으로 광랜 기가랜하며 속도나 서비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화려해졌다.


그런데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은 늘 외롭다는 거다.

지켜보면 늘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하고, 댓글이 달리기를 바라고,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속에서도, 심지어는 가족에게서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고... 전화선 저 뒤에 있는 누군에게 마음을 열어놓았다.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 외롭구나...



또 하나 깨닫게 된것은... 그 외로운 세상 어디에나 병.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겨우 나우누리로 옮긴 뒤 그래도 숫자가 늘어 20명 남짓 활동하는 동호회에 여대생 누나 하나가 들어왔다. 그 때부터 우리는 병.쉰이 되기 시작했다.

채팅방이나 게시글에 간혹 멍청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고, 누나 한 사람을 두고 형들이 잘 이해 안가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중에 그런걸 '껄떡거린다'고 표현해야함을 알았다.


시삽과 다른 대학생 형이 여대생 누나를 중간에 두고 라이벌이 되었고 우리 나머지 쩌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겜동 시삽도 권력이라면 권력이었는지 대학생 형은 어느날 부터 접속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후로 시삽의 멍청한 농담은 가열차게 계속되었다.

"오늘 따라 00의 곁에 있고 싶네~ 오빠가 @)----- 장미를 한송이..."
"몸 상하니 식사는 잘하고 다녀. @))))))) 깁밤싸왔어..."


뭐 대충 저런거...


지금 보면 죽여버리고 싶은 저딴 이모티콘들이 그때는 꽤나 신선했고. 그걸 모아놓은 txt파일은 무슨 중요한 비급이라도 되는양 진짜 친한 사람에게 보내주고 뭐 그랬다.


시삽도 그런 파일들을 꽤 가지고 있었고, 종종 꺼내서 사용했다.

난 또 그딴게 멋있어 보여서 내 나름 연습장에 쓰고, 따로 파일 모음 만들고 그 지.럴을 했고(생각하니까 참 지질했구나)


그리고... 어느 날 시삽은 용기를 내기로 했던 모양이다.
대학생 누나를 만나러 가기로 한 것.


시삽은 당시 전남대다니다 휴학하고 있었다했었고, 대학생 누나는 조선대라고 했었던듯하다...


그게 고2 겨울이었지 싶다.

그 둘 사이에 무엇인가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꽤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동은 없어졌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시삽과 여대생 누나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알 수 없었고 말이다.


여하튼 그 뒤로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다 시들해졌고...

고3이 되어 대학 들어간다 정신 없었다.
집 사정이 썩 좋지 않아서 대학 1년 다니고 2년 휴학하고 일하다
군대가고 다시 제대해서 1년 다니고 2년 휴학하고 알바 뛰고
1년 다니고 2년 휴학하고 알바뛰고...


그 사이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혹시 개가 대나무타고 웃고 있는 사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개죽이'라고...
그거 마스코트 삼는 싸이트가 당시 국내 최대의 커뮤니티였다.
그 폐인들이 신 인류니 뭐니 하던 그정도 시기였던 것 같다.


낮에는 편의점에서 시간당 1600원 받고 일했고 밤에는 PC방에서 1800원 받고 일했다.
늘 잠이 부족해서 정신은 멍하고 흐릿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생겼다.


흔한 폐인들 아는척 베틀이 벌어졌고 atdt가 어쩌고 모뎀이 저쩌고,
1200bps니 2400bps니 터져 나오고 달구벌 어쩌고 하고...
하등 쓰잘데기 없는 것에 핏줄 세우는 댓글들이 달리고
본 이야기랑 전혀 상관없이 아햏햏 거리고 햏자님들 싸우지 말시오며
광년이 튀어나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사람이 이상한 글 하나를 던졌다.
다른 사람들이야 뭔지 몰랐겠으나… 나만은.. 오직 나만은 그거 알아먹었다.


글 내용은 자신이 초기 사설 BBS회원이었고 나우누리 소규모 겜동에서 활동했었단다.
그리고 어느날 시삽이 자기 집 앞으로 찾아와서 엄청 당황했었단다.


그것은 마치 지직거리던 라디오 주파수가 갑자기 잡음 하나 없이 깨끗하게 들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비닐가죽으로 된 싸구려 PC방 의자에 기대 앉아서 마우스질 하던 내 몸은 모니터 앞으로 바로 서게 되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수수께끼의 한 조각을 드디어 맞출 수 있었다.


그렇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대생 누나를 만나러 간 시삽은 그 날 조대공전 기계과 다니는 시꺼먼 ‘여대생’을 만났던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에서든 병신은 있다.


한놈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고 여대생 짓을 했으며 한놈은 병.쉰력을 감추고 쿨한 대학생 노릇을 했던거다. 두개의 병.쉰력이 부딪쳐 우리의 작은 세계는 깨져버렸던 거고 말이다.


놈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리며 여대생인척 했던 자신의 경험과 시삽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과 당시 겜동의 병신들에 대해 주욱 써놨었고…
게시물 아래는 병신들을 화형에 처하는 축제가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햏자 닉네임은 '여대생'이었다. 여전히... 변함 없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 나 역시 다시한 번 기꺼이 병.쉰이 되어 내가 아닌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렸고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에든 병신은 있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사람들은 다 외롭다.

그리고 이제 외로운 사람들이 이 소설을 들여다보고있다.
지금 시간 새벽 2시 30분.. 잠도 안자고 말이다.
진짜다 이거 다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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