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꽃 피는 3 월, 웬만한 학교들이 개강을 하고 캠퍼스도 갓 입학한 새내기들로 풋풋한 기운이 넘치지만
알콜에 절여진 헌내기들에게는 그런 기운이 있을 리 만무하다.
아니 이게 아니라, 아직 경칩이 오지 않은 탓인지 바람이 매섭다.
지난 겨울도 상당히 추운 편이었다.
나도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혹독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겨우내 많은 지방에너지를 비축해두었다.
그런 동물들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끼니 때마다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는 점?
그래서 살이 빠지지 않고 있다는 점...
어쨌든, 임신한 것도 아닌데 점점 차오르는 복부를 보며 꼭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결심만 세웠다.
그러니 곧 개강이라고 친구들과 술판을 벌였겠지....
지금의 이야기는 그 술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개강을 앞두고 고향에서 다시 학교 근처로 근거지를 옮긴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오랜만에 본 사람들과 근황 얘기, 시사 얘기, 최근의 본 영화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자리에서나 한 번 쯤 훑고 넘어가는 주제인 다이어트 이야기가 나왔다.
안 그래고 겨울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불 속에서 먹고 자기에 바쁜 나날을 보낸 것 같다.
그렇게 서로가 나름대로의 푸짐하고 공 들인, 듣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각자의 체중 증가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한 녀석이 마침 자기가 운동을 시작했다며 이 참에 다 같이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 친구가 한다는 운동은 수영이었다.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나오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면 녀석은 모두를 꼬시고 있었다.
수영, 참 좋은 운동이다.
물의 저항력 때문에 에너지 소비도 많다고 하니 다이어트에도 분명 좋을 것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나에겐 수영복이 없었다.
지난 여름에 디자인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래쉬가드를 하나 사긴 했지만, 정말로 그것만 샀었다.
당연하게도 여름 내내 물가에 갈 일도 없었다.
뭐 사실 수영복이야 사면 된다지만, 일단 귀찮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미 책을 산다고 10 만 원이나 넘게 질러버려 통장은 기아 상태였다.
빠지라는 살은 안 빠지고 지갑 부피만 빠졌으니 참담한 현실이기도 했다.
여하간, 수영복도 없이 수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술도 들어간 김에 장난치면서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헐? 어떻게 이 사람 저 사람 막 몸 담구는 물에 들어갈 수가 있어? 더러워!!"
친구는 갑자기 내 손에서 물컵을 빼앗았다.
"내 물컵 손대지 마라."
녀석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수영은 핑계고 실은 내 몸 보려고 그러는 거지?! 이 짐승! 변태! 치한! 색골!"
"지난 번에 밤 샐 때 네가 무슨 말을 했더라?"
"죄송합니다. 다시는 까불지 않겠습니다. 미천한 소인을 용서해주세요."
이건 이길 수 없었다. 여기에 쓴다면 비공 폭탄에 차단각까지 잴 정도일 테니 당장 꼬리를 내림이 옳다.
해서 그냥 사실대로 수영복이 없어 그랬음을 실토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가 나섰다.
"언니, 그런 제 수영복 빌려드릴게요!"
"응? 네 거?? 안 맞지 않을까??"
"언니랑 저랑 체격 비슷하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발 사이즈도 같잖아요, 우리!"
"아니, 발 사이즈랑은 상관 없는 문제 같은데..."
"한 번 봐 보세요. 예쁘죠?"
후배가 건넨 폰 화면에는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비키니가 있었다.
확실히 예쁘긴 예뻤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야, 나 남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