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물은 진지하게, 누가 뭐래도 '시리즈물' 이외다.
고로, 전 편의 내용이 숙지되지 않으신 독자분들은
아래 링크부터 훑고 오심이 이롭다 아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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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안내 문구에 흩날리듯, 마치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듯
무심한 듯 시크하게 적혀있던
빚을 갚으러 왔다는 초기의 숭고한 목적의식을 잊지 않기로 한다.
보란듯 들숨을 야망 있게 들이쉰 대망의 첫날,
우리가 파악한 업무의 골자는 대략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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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_1
팔리다 팔리다 안 팔린 재고 의류들이 가득 산적해 있는
컨테이너>박스>도요새>직박구리 -속의 무언지 모를 것들을 모조리 다시 꺼내
이렇게!
Step_2
잔뜩 들어있는 것들이 당최 어떤 놈인지
브랜드와 품목, 수량, 컬러, 소재 등등을 파악해 관련 페이퍼를 작성 후
이렇게!
Step_3
다시 새로운 박스에 넣어 테이프 칠갑을 하고(전문용어로 '박싱'이라 한다.)
그 박스가 뭔 박스인지 본인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작성한 페이퍼를 전면에 부착!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풀었다가 다시 싸라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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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거 원 손에 든 박스테이프도 이보다 투명할까.
내가 항상 바라왔던 바로 그 일이야.
목장갑, 마스크, 박스테이프, 커터 칼로 구성된 '4종 업무 세트'를 장착하기만 하면
업에 관한 고찰, 업무에 대한 고민, 직무에 따른 그런 어떤 그런 것이
8월의 전기장판만큼 필요 없는 산뜻한 일을 하게 되었다.
풀었다가,
다시 싸는 일 말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던
보람찬 오전 근무를 마치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인근 함바집에서 구수한 새참이 배달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이지 '새참'이라는 용어가 어울리는 한 상이었다.
주위에 널려있는 박스를 방석 삼아 앉아 내 몫의 공깃밥과 반찬들을 클리어하고서
워홀계에서는 '노익장' 소리를 듣는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가뿐히 최연소 막내로 등극(?) 하며
어르신 동료(?) 분들께 재롱을 피웠다.
허허,
좋구먼?
전광석화같이 흘러버린 점심시간이 지나고
프로페셔널하게 오후 근무를 시작하려는 찰나,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우며 기쁘기도 하면서 뭥미인가 싶은
그런 어떤 소식이 접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