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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허한 위장 1
게시물ID : pony_282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불가필
추천 : 8
조회수 : 26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1/26 00:13:57

  그는 죄인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도 죄인이었다.
  그의 아비는 진작 죽었다. 머리가 센 할비와 등 굽은 할미가 말짱한데도 죽었으므로 아비의 죄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였다. 그가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죄였다.
  아비의 냄새는 흘러와 고였다. 그의 겨드랑이며 팔오금에서도 퀴퀴한 냄새가 났다. 냄새는 화마(火魔)가 포탄을 살라먹고 연기가 자욱할 때에 더욱 심해졌다. 많은 비명과 냄새 사이에서, 그는 아비와 만났다. 그의 아비는 아들에게 기꺼이 죄를 물려주었다.
  판사들은 그의 죄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했다. 의사봉이 백 번이나 두드려졌으므로 그의 죄는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죄였다. 받지 못함으로 처벌할 수도 없었다. 그들 중 가장 명석한 이들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죄에 부과할 적당할 형벌을 찾지 못했다.
  우리의 형벌은 악인을 교화시키기 위함이고…… 이 죄지은 이는 인간이 아니므로…… 늙은 재판장은 고작 몇 마디를 하는 것조차도 힘들어했다. 늙은이의 구취는 고약하지 않고 맑았다. 죄자의 신병은 기침하는 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 사이로 양도되었다.
  그는 재판받지 않았다. 갈기를 말끔하게 빗은 이퀘스트리아의 대사(大使)는 그를 흘깃 보더니 삼 년의 징역형을 내렸다. 의외의 결과였다. 포니들의 세상에선 그의 죄가 받아들여지는가. 그는 그들의 사회에 속할 수 있는가. 그는 무릎까지 떨며 간절하게 물었다. 대사는 차가웠다.
  우리에게도 악마의 죄를 심판할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악령을 삼 년간 봉인했던 선례를 따라…… 그는 서 있지 못하고 넘어졌다.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죄는 세상을 무너뜨릴 죄였다.
  증기구름 엉킨 것을 뿜으며 배가 간다. 이편에서 오고 저편으로 간다. 거친 뱃고동 소리를 내는 배는 탑승한 이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고 감이 끊임없어 세상 바깥까지 닿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갑판에서, 그는 흐느적거리고 흐물거렸다. 세상은 그를 받지 못하면서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들의 하늘과 포니들의 하늘이 그를 주고 또 받았다.

 


  채석장의 돌가루가 뎅뎅거리는 종소리에 실려서 오면 해 지는 하늘이 붉었다. 비행선 몇과 페가수스들이 바삐 날아다니느라 한낮의 하늘은 번잡했고, 지상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황혼 무렵에 페가수스들은 날개를 접었고 어스 포니들은 장사를 접었다. 높고 낮은 집들의 창문은 모두 잠겨 있어 거리는 한산했다.
   지는 해를 닮은 포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석양 무렵의 나그네라면 누구나 낮게 한숨을 쉬기 마련이나 그녀는 그중에서도 특히 특별했다. ‘어째 생사가 불명이던만 기어코 기어와서 난리인고.’ 광산도 형무소도 많은 도시에 죄수(罪囚) 하나 느는 것 정도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엔 죄수(罪獸)도 죄인(罪人)도 늘지 않아서 낮 동안 도시는 시끄러웠다. 소란이 북적거리던 것이 아직까지 남아서 그녀는 머리가 아팠다.
  고개를 깊게 숙이고 걷던 애플블룸의 머리가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보니 익숙한 것이 노을을 등지고 있었다. “미하일?” 해지고 거친 넝마를 입고 머리는 풀어헤치고. 올려다보는 암말의 목을 아프게끔 만드는 남자가 작게 웃는다. 소리 없는 웃음은 점점 커지더니 미하일이라 불린 인간은 곧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땅에 쓰러지듯 스러져 울며 웃었다.
  미하일. “미하일?” 미하일, 미하일. 이름이 있어야 그도 있다. 이사육공일번이란 수감번호는 단지 그의 죄와 가장 비슷한 죄의 번호였다. 숫자로 된 것이 아닌, 미하일이란 포니의 작은 부름이 있고서야 그는 세상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잔존할 수 있었다.
  석 자의 짧은 이름이 하루 내내 머리를 괴롭히더니 이제는 부숴버리려 든다. 애플블룸은 조용히 희읍하는 그를 직접 봐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미하일. 어떻게 된 거예요?” 엎드려 꿈틀거리던 어깨가 다시 일어난다.
  꼿꼿이 선 그의 작은 눈은 부드럽게 휘어 있었다. “오랜만이지, 자기야?” 변함없이 능글맞은 목소리에, 애플블룸은 머리 아픈 것도 잊고 한숨을 뱉었다.
  거의 반년이 되도록 편지 한 통 없다가 근래에 연신 가슴만 철렁이게 만들고 나타나서 울더니 다시 보니 실없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한심했다. 내가 미쳤다고 저 포닐 걱정했지. 생각을 수정한다. 미하일은 인간이다. 포니든 인간이든 짜증나는 건 마찬가지이다.
  “왜 여깄어요?” 짤막한 말이 마음에 들어 미하일은 짧게 웃었다. 서글서글해 기분 좋은 웃음이지만 그마저도 심통이 난 포니의 눈엔 능청스럽게만 보인다. “왜. 여기 있으면 안 되나?” 애플블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이가 없다. “신문에선 칸텐 광산으…….” “애플블룸 어린이, 신문은 믿을 게 못 돼요.”
  그는 자꾸만 웃었다. 소리도 없이 입꼬리만 슬쩍 올린 웃음이 애플블룸에겐 낯설고 먼 것처럼 느껴졌다. 코앞에 있어도 닿지 않는 다른 세상의 웃음이다. 말하기가 쉽지 않다. 당신은. 턱이 벌벌 떨리고 멀리서 들리는 기적(汽笛) 소리가 흔들린다. 그녀는 웃음을 두려워했다. 그녀가 알던 웃음은 이제 없다. “당신은, 형무소에 있어야죠.” 그것은 입 안에서만 맴도는 울음이었다. 분명 말의 소리였으나 작고 낮아서 말소리가 되기엔 적합지 않았다. 애플블룸은 미하일과 눈을 마주했다. “그라고 허벌나게 많은 자석덜 깨고락지 깨고락혀 뒤지듯 혀놓고선, 물꾸신이 므싑지도 않소?” “뭐?” “형무소 들어간 것 아녔어요?” 대답은 놀랍도록 평안했다. “탈옥했지.” 듣는 포니가 듣기에 기괴하다.
  탈옥수는 무어가 그리 당당한지 팔자로 걸었다. 걷는 폭이 넓고 느려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애플블룸이 그의 뒤를 겨우 따르며 계속해서 따져댔다. “지금 장난해요? 포니 간 떨어지게만 만들고, 선처에 선처가 겹쳐서 고작 삼 년만 있으면 될 것을 못 참고 나와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걷는 채 미하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난 죄가 없어.” 죄도 없이 살점이 썩어문드러지는 고통을 천 일이나 겪어야 한다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그가 생각하기로는 아주 탐탁찮은 일이나 애플블룸의 생각은 그와 다른 듯했다.
  그녀의 크고 맑은 눈동자에 슬픈 빛이 가득 찼다. 고개를 돌린 미하일의 빛이다. 죄가 없어요? 그녀는 감히 피곤한 추방자에게 무엇을 묻지 못했다. “내 죄가 아냐.”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어깨는 처져 있었다.
  미하일은 무릎을 꿇었다. 그러니 그녀와 눈높이가 알맞다. 그는 바닥에 꿇어앉아 암말의 얼굴을 진득하게, 자세히 보았다. 애플블룸. 메마른 입술은 버석거려 이름을 겨우 전했다. 점점 다가온다. 한없는 슬픔이 숨결에 녹아 스러진다. 미하일은 눈을 감았다.
  “안 꺼져요?”
  그는 입맛을 다셨으나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일어섰다. 눈앞의 애플블룸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는 자신의 머리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배고픈데, 식사나 하러 가자.” “식사요? 빵이 넘어가요?” 빼어든 권총을 다시 총집에 꽂은 애플블룸은 그것을 다시 꺼내들까 하는 매력적인 고민에 빠졌다. 얻어먹을 게 뻔하면서 뭘 믿고 저리 뻔뻔한지. 여러모로 상종을 못할 작자다.
  “사람이고 포니고, 먹어야 사는 거야. 못 먹으면 죽는 거고.” 아주 간단한 이치지. 그는 뒷말은 굳이 잇지 않았다.

 

 

 

 

 

 

 

 

 

 

 

 

3513字.

24601은 레미제라블에 나오기도 하는 숫자. 그냥 영화를 재밌게 본 기억이 남아서 썼지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

막혀서 잘 안 나오긴 했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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