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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중 - 6
게시물ID : history_74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이일
추천 : 0
조회수 : 69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2/05 19:47:41

말은 편안하게 할께요. 이전거 읽어 보니, 뭐 그냥 내용 적힌 거고, 혼자만 공부하는 거지 게시판에 올리는데,


다른 사람도 읽기 편하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해볼께요.


어제 신라 내용 보충


어제 내용을 보면 신라의 증훙을 이끈 지증왕과 법흥왕까지만 설명이 되어 있고,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진흥왕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는데, 동영상 강의가 거기서 끝나서 지금 첨부하겠습니다.


진흥왕은 7C에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왕으로, 신라로서는 처음으로 한성을 차지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특히 국가의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화랑도라는 어린 인재들의 모임을 국가조직으로 개편하였고,


법흥왕때 받아들인 불교를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이전에 언급되었던, 백제의 성왕ㅓ과 나제 동맹을 맞어 서울을 차지하였는데, 백제를 배신하고


서울을 백제로부터 뺏었습니다.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을 죽이고 승리하여 나제 동맹이 파기 되었습니다.


진흥왕은 이 외에도 정복군주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대가야를 멸망 시키고, 서로는 백제를 압박하고 북으로는 고구려를 압박했습니다.


이것에 관련된 유물로는 북한산비, 단양적성비, 순수비 등이 존재합니다.


특히, 북한산비는 단지 서울을 차지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였고,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 점에도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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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대외 관계


이전까지 공부했던 삼국의 대외관계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4세기 경에는 중국이 북으로는 전연, 남으로는 동진으로 분열이 되어있었고, 백제가 근초고왕에 의해서 전성기를 맞이 했을 때로


백제가 고구려와 신라를 압박하고, 중국의 동진과 왜와 친밀 왜교를 하였으며, 왜와의 교류증거로는 칠지도가 있다.


'화살표' : 공격, '-' : 친밀


전연 →  고구려 - 신라

          ↑   ↗

동진  -  백제  - 왜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 유물 : 칠지도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 유물 : 광개토비, 호우명그륵(4C 후반)


5세기 경에는 고구려의 전성기로 장수왕의 외교정책으로 고구려는 중국과 친밀 그 외 백제, 신라와는 적대적이었습니다.


북조 - 고구려 → 신라

     /   ↓    /

남조 -  백제 -  왜


6세기 경에는 신라의 전성기로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압박하였습니니다. 6세기 후기에는 중국이 통일을 하면서 한반도의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한반도에 위기는 고구려가 막아내고 후에 통일 신라 시대에는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내는데 이에 관련해서는 뒤이어 하겠습니다.

북조 - 고구려 ← 신라

         ㅣ   ↙

남조 -  백제  -  왜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 유물 : 순수비

남조와 백제와의 관계 유물 : 양직공도, 무령왕릉




삼국의 통치체제에 관련하여 넘어가겠습니다. 삼국의 통치체제는 말로 쓰는 것보다 적은게 훨씬 나은거 같아 사진으로 올렸어요.





여기서 중요시 해야 하는게 3국의 귀족회의인 제가회의, 정사암회의, 화백회의와, 지금과는 다르게 각 지방이 하나의 행정조직만이 아니라,


군사조직으로서의 역할도 했다는 점, 또한 파견된 지방관은 곧 지휘관인 점입니다.


그리고 특수 행정구역은 상업, 농업 이런게 아닌, 국경지역의 군사적인 이유로 특수하게 나누어 놓은 행정구역입니다.



삼국의 대외항쟁(백제, 고구려의 멸망)


이제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했던, 백제와 특히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서 진행하겠습니다.


백제 고구려 두 국가가 멸망한 이 7세기 경에는 특별한 외교정책이 있었는데, 가로로는 신라와 당 사이의 나당연합,


남북으로는 돌궐, 고구려, 백제, 일본의 연합니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합이 결성되고 신라에 의해서 삼국이 통일 되는 때 까지, 시간의 순서에 따라 6장면으로 설명이 있는데, 이에 관에서 차례대로


설명하겠습니다.


1. 나당연합의 결성

진흥왕에 의해서 백제의 성왕이 전사하고, 백제가 신라에게 칼을 갈고 있는 7C 초에는 신라는 선덕 여왕, 백제는 의자왕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의자왕은 우리가 알 고 있는 만큼 무능한 왕이 아니라 상당히 유능한 왕으로서 신라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신라는 버티기 어려워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고구려에 김춘추가 사신으로 보내졌지만, 고구려의 연개소문에 의해서 거절당하고 당나라로 넘어가게 됩니다.


당나라는 이전에 수나라가 을지문덕에 의해서 그리고 당나라가 안시성 전투에서 패해서, 고구려를 만만히 보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신라에서 동맹 제의가 들어와서 모종의 협약을 맺고 동맹을 맺습니다.


2. 백제의 멸망.

신라와 당나라는 엽합을 맺어 백제를 압박해 들어갔고 백제는 결국 황산벌전투(계백)에서 패배하여 660년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멸망 이후 흑치산치, 복신, 도침과 같은 몇몇 세력이 백제의 부흥을 위해 힘을 쓰지만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도 백제와 계속하여 친밀한 외교정책을 펴온 나라로서, 후에 백제 부흥을 위해 지원하였지만, 백강전투에서 부흥을 이루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3. 고구려의 멸망.

뚜둥,, 고구려가 멸망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은 나당 연합국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멸망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중국이


통일 왕조를 이루고 난 후에 중국의 한반도 침공을 온몸을 다해 방어하고 국력이 쇠하여 멸망에 이르렀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수나라의 침공을 을지문덕 장국이 살수대첩을 통해 막아내고 이 이후에 연개소문의 주도하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였습니다.


이후에 중국의 당나라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더 침공해 오는데 이때도 안시성 전투를 통해서 막아냅니다.


하지만,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을 하고, 두 국가가 침공해 오자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ㅜㅠ


고구려도 멸망이후, 안승, 고연무, 검모잠 등이 부흥운동을 하였지만,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부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4. 당나라의 욕망

백제, 고구려가 모두 멸망을 하고, 바야흐로 신라가 한반도 내에서 통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닌 당나라의 욕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중국세력은 통일이 되었을 때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가지고 있었고, 큰 걸림돌인 고구려가 멸망하자, 평양에 안동도호부, 웅진에 웅진도독부, 경주에 계림도독부를 세워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었습니다.


5. 나당전쟁

신라도 당나라의 야욕에 참지 못하고,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당 전쟁 중에 메소성 전투와 기벌포전투를 통해서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 외부로 몰아내었고, 평양의 안동도호부를 저 멀리 요하지방으로


내쫓았습니다.


6. 신라에 의한 통일

당나라를 한반도 내에서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지만, 어느정도 밀어내고, 대동강에서부터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하는 통일 신라를 이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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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좀 스토리 있게 쓰려고 했는데, 아직도 많이 미흡하네요..


차차 고쳐나가면서, 좀 더 다른 사람도 읽기 좋게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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