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의미 없는 꿈을 꾸거나 의미 없는 풍경이 내 눈앞에 들어왔을 때 말이다.
감정 없는 눈물
나는 그날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날은 2013년 6월 23일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따라 마시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보통 12시에 잠이 드는 나였지만 마침 밀린 서류작업을 끝마친 후였기에 시간은 새벽 2시였다.
일을 끝내고 난 뒤 맥주여서 그런지 흔하게 볼 수 있는 카스였지만 왠지 그날따라 맛이 썼고 또 시원했다.
맥주를 다 마신 뒤 말보로 레드 한 까치를 태우려 책상에 널부러져 있는 보라색 라이터를 잡았다.
차칵 차칵
차칵차칵차칵차칵
라이터 내용물을 보니 휘발유가 조금도 없었다.
아마 오래전에 버린 라이터였던 모양였이다.
나는 라이터를 무심하게 책상으로 던져버렸다.
모양새가 빠졌지만 나는 부엌으로가 가스레인지 불을 붙이고 담배를 입에 문체 갖다 대었다.
"후우"
연기를 내보내려 창문을 열자 유난히 커다란 달이 보였다.
단순한 내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컸다.
'아, 오늘 슈퍼문이 뜨는 날이라고 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딱히 오늘따라 유난히 큰 달이 슬퍼 보인다거나
시원한 맥주가 내 감성을 자극한다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마치 만화의 주인공이 슬픈 장면에서 말하듯
"어…. 어째서 눈물이 나고 있는 거야."
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내 입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난 전혀 슬프지 않았다.
새벽이라서 거나 몸에 술이 들어간 것도 이유가 되진 않았다.
말 그대로 그냥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걸 감사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의미 없는 눈물을 누군가는 보았을 태니깐
눈물이 나서였을까 조금 감성적이 된 나는 기타를 집어 들어 뜨거운 감자의 '고백'을 연주했다.
더 눈물이 흘러내린다.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자 무언가 머리에 스치듯 지나간다.
한 명의 여자 모습이 내 앞에 아른거린다.
갑자기 더 눈물이 난다.
이번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금 슬프다.
아주 조금
그렇게 몇 분간 이유 모를 눈물을 쏟고 난 뒤 나는 나 자신을 진정시킨다.
생각했다.
나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그리고 왜 슬퍼진 걸까
어떤 책에선 사람이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란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과연 슬픔도 그 범주에 해당할까?
사람이 슬픈 이유는 눈물을 흘려서일까?
나는 몇 번을 생각한 끝에 그것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죽을듯이 슬퍼도 눈물을 참는 경우는 많으니깐
'그러면 그 여자는 뭐지?'
스치듯 지나가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아는 사람은 아녔다.
평소 같으면 이러한 의문점에 대하여 더 흥미를 느꼈겠지만
시간이 2시 20분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난 씻고 자는 선택지를 택했다.
아침 6시 반이 되자 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려댔다.
습관적으로 알람을 끄고 부재중 통화가 왔는지, 새로운 문자가 왔는지 확인했다.
"……. 누구야 얘네"
부재중 통화와 새로운 문자가 상당히 많이 왔었는데 그중 반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분명히 이런 이름을 휴대폰에 저장한 기억이 없는데도 말이다.
문자는 대부분이 나에게 괜찮냐며 걱정을 해주는 내용이었다.
분명 내 이름까지 쓴 거 보면 잘못 보낸 것도 아닌데…."
나는 의식적으로 내 방을 둘러보았다.
이상했다.
분명 내방이었지만 내방이 아녔다.
내가 쓰던 물건이 있고 가구도 있었지만, 배치가 약간씩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로 표현 못할 이질감이 나를 덮쳤다.
나는 급히 일어서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
아파트 위치가 달라졌다.
이곳에 몇 년 동안 살았던 나이기에 미세한 변화도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내가 살던 곳이 아니란 걸 느꼈다.
그리고 내게 온 문자의 내용으로 추리해 볼 때 나는 어젯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세계에 나였던 내가 어젯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시련의 아픔으로 인해 집에서 오늘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잠들었다.
'번뜩이던 여자는 여자친구였나'
나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가지 가설을 세웠다.
지금의 나와 원래 이곳 세계에 있던 내가 같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같은 행동을 연속적으로 했고, 그로 인해 서로의 세계가 뒤엉켰다.
나는 세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 새벽에 나와 술을 마신 친구로 추정되는 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딸칵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자는 숙취에 찌든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ooo아, 미안한데 어제 나 몇 시에 잤는지 기억하니?"
나는 다짜고짜 내가 궁금한 것부터 물어봤다.
.
"음.... 너 술 마시다가 담배 피우고 온다 해놓고 기타치다 그대로 자 버렸잖아... 그때가 2시 조금 넘어서였나? 야 근데 너 그렇게 어제 마ㅅ.."
나는 친구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전화를 꺼버렸다.
막막했다.
나는 생각해야 했다.
이곳에서 살 수는 없었다.
물론 살 수는 있겠지만 난 돌아가고 싶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한 시간 가까이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오른손 엄지와 중지를 빗겨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래 이 세계에 있던 나도 분명히 이 쪽으로 돌아오고 싶어할거야."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이쪽 세계에 있던 나도 분명 나니깐 기본적으로 생각은 같을 것이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2시경,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며 달을 보다 잠드는 것이다.
나는 어제와 같은 세팅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어제 눈물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공유 된 건가'
'전혀 슬프지 않을 꿈을 꾸고 이상하게 슬플 때도 이와 같은 거였나"
'슬픔 말고 다른 감정도 공유가 되는 건가'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관두기로 했다.
그런 생각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나서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벽 2시가 되자 나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맥주 한 캔을 마신 뒤 담배를 피우며 달을 보았다.
몇 가지 기억이 스쳐 갔다.
원래 나의 기억이었다.
'좋아, 분명 저쪽의 나도 시도하고 있다.'
그 뒤 나는 뜨거운감자의 '고백'을 끝까지 연주했다.
이제 잠들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재빨리 누워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자 난 재빨리 방을 확인했다.
어제 먹은 맥주캔과 피다만 담배꽁초가 보였다.
기타도 널브러져 있었다.
실패했다.
어제와 같은 세계 그대로였다.
'이유가 뭐야... 분명 똑같았는데...'
나는 다시 하면 될 거라 믿으며 매일 똑같이 시도했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매번 실패하긴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이 되자 나는 포기했다.
순간적인 감정의 공유는 되지만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저쪽의 나도 포기했을 거야, 내가 포기했으니깐'
나는 이렇게 합리화시키며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산 지 1년이 지나갔다.
어쩌면 그건 정말 우연이었다.
정말 우연히, 소파에 앉아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을 때였다.
2014년 8월 10일 슈퍼문이 뜬다는 뉴스가 방송된 것이다.
"저거다. 저거였어!"
나는 박수를 치며 천장에 머리가 박을 듯이 뛰어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이걸 저쪽의 내가 모르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기억 공유를 통해 알려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미 기억공유는커녕 감정공유도 안된 지 반년이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저 저쪽의 내가 알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8월 10일이 다가오자 나는 계획을 수행했다.
그건 내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더 방도는 없었다.
술을 마신 뒤 유난히 밝은 달을 보며 나는 빌었다.
"제발..... 제발....."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나는 그렇게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고백을 열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잠들었다.
6시 반의 알람 소리에 맞춰 나는 잠에서 깼다.
일어나자 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나는 한동안 정말 미친 듯이 방을 뛰어다녔다.
소리를 지르며 웃어댔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시간은 2013년 6월 23일이었다.
'원래 떠났던 시간으로 돌아왔어'
마치 내가 겪었던 일이 꿈처럼 되었지만, 분명히 꿈이 아녔다.
분명히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기억까지 생생하다.
졸지에 나는 차원이동에 시간이동까지 한샘이다.
나는 조금 진정이 되자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입에 문다.
차칵
그리고 책상에 아무렇게 널브러진 보라색 라이터를 집어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는 창가로 가서 태양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
.......
그 순간의 온몸을 덮는 그 오싹함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