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면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면도할 때 나는 소리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변태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수염을 밀 때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든다.
아침마다 면도를 해야 하는 나로써는 매일 기분 좋은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래서 샤워를 하면서 듣던 노래도 면도하는 동안에는 정지시키고 면도와 ‘사각사각’ 소리에 집중한다.
면도를 할 때는 피부가 베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우면서 동시에 경건한 마음으로 임한다.
뜨거운 물로 세안을 해서 모공을 넓히고 적정량의 쉐이빙 크림을 바른 후 습관대로 코 밑부터 목, 턱 순으로 수염을 민다.
중간중간 쉐이빙 크림과 수염이 묻은 면도기를 씻겨주고 차가운 물로 세안을 하여 모공을 조여준다.
모든 것에 순서가 있고 몇 년간 해왔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부터 자신의 피를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따금 늦게 일어나거나 급할 때는 전자면도기를 사용한다.
시간도 절약되고 간편하지만 전자면도기는 ‘사각사각’ 거리지 않아 정말로 가끔 이용한다.
방수에 한번 충전하면 한달 내내 사용할 수 있지만 전자 면도기가 칼날 면도기를 대체할 순 없다.
이건 마치 DSLR이 보급화 되었지만 필름 카메라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다.
면도 후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팔이 가려울 때 수염으로 긁지 못한 다는 점이다.
수염이 하루 정도 자라면 생각보다 꽤 굵어지는데 팔이나 손이 가려울 때 수염으로 긁으면 시원하면서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여성과 수염이 적은 남성은 이 시원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 일까.
아니면 나만이 신체의 이용에 대해 하나 더 알고 있는 기분이 랄까.
누가 들으면 이건 확실히 변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