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가 본격적으로 상여시위를 시작하면서 그들은 종종 ‘원전지원금을 받는 마을에서 살기 싫으면 당신들이 떠나면 되지 않냐’는 노골적인 힐난에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김진선 씨는 “돈 때문에 이주시켜달라는 거 아니냐고 그래. 동네 개도 만 원짜리 지폐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거든…”이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한수원도 대책위의 이주 요구를 거절하거나 다른 차원의 문제로 희석하려 했다. 2년마다 바뀌는 월성원자력본부 본부장들은 항상 “이주시켜 줄 법이나 제도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상생과 지역발전을 강조했지만, 황분희 씨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발전이 되겠냐? 약속대로라면 이 마을이 전국에서 가장 잘 살고, 사람들이 살고 싶은 마을이 됐을 텐데. 마을을 둘러봐. 가게도 텅텅 비고. 이게 사람이 사는 마을이냐고!”라며 한수원이 제시한 유토피아를 비판했다.
그렇다면 대책위는 지역사회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왜 계속해서 이주를 요구하고 있을까? 김진일 위원장은 “여기는 창살 없는 감옥이거든. 집을 팔고 나가려고 해도, 거래가 안 돼. 30년 전에는 이 마을이 양남면에서 제일 비쌌다고. 근데 다른 데가 20배, 30배 오르는 동안 여기는 변한 게 없어. 오히려 나빠진 거지”라고 말했다.
<표1>은 지난 15년간 양남면 부동산 거래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거래량 자체가 적은 아파트, 오피스텔 등은 제외하였고, 단독/다가구 주택(448개), 상업/업무용(226개)과 토지(8,749개) 등 총 9,423개의 자료를 분석하였다.
거래량이 낮은 지역은 나아, 석읍, 상라, 나산, 읍천 순이며 월성핵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나아, 나산, 상라의 거래가 특히 적었다. 반대로 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인 신대, 신서, 효동리는 부동산 거래가 활발한 것을 알 수 있다. 거래량이 가장 낮은 나아리와 가장 높은 신대리의 거래량은 1,200회 이상 차이가 났다.
성혜중 씨는 2016년 9월 12일에 발생했던 규모 5.8 지진을 잊지 못한다. 부동산을 통해 이 집을 보러 온 울산에 사는 사람과 구체적인 가격과 거래날짜까지 정해놓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던 며칠 전에 지진이 발생했다. “경주에서 지진이 딱 터졌는데, 온다던 사람이 거래를 못하겠다고 말하더라고. 원자력이 있는 마을에 지진이 나니까, 당장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된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집을 살 수 있겠냐고. 결국, 포기를 하더라고.”
월성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표2>는 국토교통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 데이터를 참고하여 양남면 평균 공시지가 상승률(1996~2020)을 정리하였다. 다양한 종류의 지목(地目) 중에서 대표적인 장, 전, 대, 답, 임 자료를 활용하였다. 장은 제조업을 하는 공장시설물의 부지, 전은 물을 이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토지, 대는 영구적 건축물 중 주거, 사무실, 점포 등의 부지, 답은 물을 상시적으로 이용하여 재배하는 토지, 임은 산림 및 원야를 이루는 토지를 말한다.
<표2>를 보면 수렴, 하서, 나아, 읍천, 나산 순으로 평균 공시지가 상승률이 낮고, 그중 나아를 포함한 네 개 마을은 양남면 평균(5.27배)보다도 낮았다. 특히 1996년 나아리 평균 공시지가는 43,938원으로 양남면에서 세 번째로 높았지만, 지난 25년간 4.04배 상승함으로써 양남면 전체에서는 세 번째로 낮았다. 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신대리와 가장 가까운 나아리의 25년간 평균 공시지가 상승 폭은 12배 이상 차이가 났다. 물론 핵발전소에서 가까운 상라리는 거래현황은 적지만, 공시지가 상승률은 높기에 이러한 분석이 양남면 모든 마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월성핵발전소가 지역의 부동산 거래나 지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한 실증적인 연구가 부재하고, 대부분 기사도 주민들 혹은 부동산 중개인과 인터뷰 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있기에 이 분석이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실제 거래량과 공시지가 자료에 근거한 이 분석과정은 ‘거래가 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이사 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주민들의 경험’이 과장이나 단순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실제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거래현황과 공시지가 자료를 통해서 핵발전소에서 가까울수록 지가 상승률이 낮고, 무엇보다 거래량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민들은 한수원과 정부에게 이주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황분희 씨는 “이렇게 위험한 곳에 살면서 안전한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는 거지, 그래서 이주를 요구하는 거야. 제발 좀 여기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녀는 “한수원은 이주시켜 줄 법이 없다는데, 그것도 아니거든. 예전에 월성1호기랑 2호기 짓는 과정에서 마을주민 40명 정도를 개별이주 시켜줬어. 근데 이제 와선 법이 없다고 안 된다고 하는 거야”라며, 자의적으로 ‘법이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한수원을 비판했다.
주민대책위는 이주를 위한 공식적인 법이나 제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법을 마련해달라고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6년 9월에는 ‘월성원전 인근 이주요구의 타당성과 제도개선 방향’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도 열었다. 2016년 당시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은 “원전 주변지역 주민과 원전사업자와의 갈등은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2년째 서로 대치하고 있으며, 방사능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를 원하나 정부는 안전을 강조하며 ‘정착’을 위한 지원사업만 시행하고 있다”라는 이유로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인접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 대하여 이주 지원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담긴 개정법률안은 국회 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2018년 9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원전 인근 주민 이주의 필요성과 입법 과제’ 토론회에서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원전 인근 지역은 부동산 거래가 실종되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며, 타지역으로 이주도 어려워 ‘수용소’에서 사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몇 년째 이주시켜달라는 대책위의 요구에 한수원은 여전히 무관심하거나, ‘이주시켜줄 경우 들게 될 천문학적인 비용’을 먼저 걱정하며 이주를 가로막고 있다.
이렇듯, 월성핵발전소 최인접마을에서 사는 주민들은 재산권이나 거주이전의 자유 등 다양한 권리를 침해받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몸속에 있는 삼중수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