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you Zombies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A. Heinlein(1959)
2217 시간 제 5 구역 동부 1970년 11월 7일 - 팝스 플레이스 주점
내가 브랜디 술잔을 닦고 있는데 미혼모인 내 어머니가 주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술잔을 닦다 말고 시간을 확인했다. 제 5 구역
오후 10시 17분. 날짜는 1970년 11월 7일. ‘시간요원’들은 언제나,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시 시각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시간요원들에게는 공간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하니까.
내 미혼모 어머니는 25세의 ‘남성’이었다. 나보다 키가 크지는 않았는데, 조금 더 어리고 다혈질 같아 보였다. 난 그의 외모가 싫었다.
사실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입단을 권유하기 위해 왔고 그는 내 목표물이다. 나는 최대한
바텐더처럼 보이기 위해 그에게 자연스레 웃어보였다.
그는 자기가 전혀 여자 같아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미혼모’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저는 한 단어에 4센트씩 받고 소설을
쓰는 작가예요.”하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다른 곳에서 술을 먹고 왔는지 살짝 취해있었고 사람들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난 조용히 술잔에 올드 언더웨어
더블 샷을 따라주고, 술병을 그의 옆에 두었다. 그는 게걸스럽게 내가 따라준 술잔을 비우고 혼자 한잔을 더 따랐다. 나는 조용히 비어있는
바를 수건으로 닦았다.
“그래요 ‘미혼모’씨. 소설은 잘 돼가요?”
술잔을 쥔 그의 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내게 잔을 집어 던질 듯 화난 눈치였다. 나는 수건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바 밑에 숨겨둔 곤봉을 찾았다. 시간요원으로서 과거를 고치는 데에 있어서, 불필요한 위험에 빠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을 부르르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속으로 화를 삭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잘 지내냐고 물어 본 것뿐인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나의 사과에도 그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일은 잘하고 있어요. 내가 글을 쓰고 위에서 출판하면, 그 쥐꼬리만도 못한 돈 받아서 먹고 살만하죠.”
나는 그에게 한잔을 더 따라주며 가까이 다가섰다.
“사실, 당신이 쓴 글을 읽어봤어요. 주인공이 여자인데도 여성의 시점에서 아주 감동적으로 잘 썼더라고요.”
순간 아차 싶었다. 바보같이 그가 자기 필명이 ‘로버트’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먼저 아는 척을 해버린 것이다.
이대로 있다간 의심 받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술에 취해서 내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내 결정적인
실수는 잘 못 알아들은 듯 했다.
“여성의 시점에서?!”
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닌 여성의 시점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래요? 누나나 여동생이 있나보죠?”
나는 최대한 의심스럽다는듯이 물었다.
“아니. 내가 말해도 당신 같은 사람들은 안 믿을 걸요.”
“과연 그럴까요? 나 같은 바텐더나, 정신과 의사들은 진실보다 이상한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들은 이상한 얘기들을 들으면 당신이 놀라 나자빠질 거예요.”
“당신은 ‘놀라 자빠지다’의 ‘놀’자도 모를 거야.”
어머니가 조롱하는 눈빛을 보냈다.
“난 더 심한 얘기도 들어봤어요. 별로 놀랍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가 또 콧방귀를 뀌었다.
“남은 술을 걸고 내기 할래요?”
“뜯지도 않은 새 술을 걸죠.”
나는 새 술병을 바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얘기 좀 해볼까요?”
나는 다른 바텐더에게 바를 맡기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안주 통이 있는 구석진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다른 사람들은
반대편에서 TV로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주크박스를 틀고 있었다. 모두들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할 것이다.
“좋아요.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밝힐게요. 나는 사생아예요.”
“여기서는 그런 차별 안 해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부모님이 결혼을 안 했다고요.”
“그렇다고 차별받지는 않을 거라니까요. 우리 부모님도 그런걸요.”
내가 강조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말을 내가 자꾸 끊어먹자 짜증을 냈다.
“언제 물어나 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에요?”
“네. 나도 사생아 맞아요. 말하기 부끄럽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가 결혼을 안 했어요. 사생아 가족이죠….”
내가 말하는 동안 그의 눈길이 내 왼손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럼 그렇지…. 어디서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면서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건,”
나는 그가 나를 신뢰할 수 있게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냥 여자들이 꼬이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에요. 결혼반지 같잖아요.”
이 반지는 1985년에 한 사내에게서 산 골동품이었다. 크레타 섬의 기원전 시대 물품이라고 한다. 다행히 어머니는 실망을
거두고 다시 내게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우로보로스 문장이에요. 끊임없이 자신의 꼬리를 씹어 먹는 뱀. 위대한 역설의 상징이죠.”
그 남자는 간신히 반지를 쳐다보았다. 괜히 장황하게 말을 꺼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당신이 사생아라면 내가 어떤 기분인지는 알겠네요.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
“잠깐,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얘기 중이잖아요. 맞으니까 듣기나 해요.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 음, 크리스틴 조젠슨이나 로버타 카웰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어요?”
“유명한 성 전환자들이잖아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는…”
“얘기하는데 방해하지 말아요, 얘기 안 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난 고아였어요. 1945년에, 태어난 지 한 달 쯤 됐을 때 클리블랜드의 한 고아원에 버려졌죠. 어렸을 때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어요. 그리고 성(性)에 대해서 배웠을 때… 믿어줘요. 고아원에서는 그런 걸 일찍부터 배워요….”
“나도 알아요.”
내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신 차리자.
“…나는 내 자식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아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그리고 싸우는 방법도 혼자 익혀야 했어요. 그리고 자라면서 왜 내가 입양되지 않고 있었는지 알게 됐죠.”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말상인 긴 얼굴에 뻐드렁니, 가슴은 작은데다 생머리였던 거죠.”
“예전의 나보다는 괜찮았을 것 같은데….”
“작가나 바텐더가 어떻게 생기든 상관없잖아요?”
그가 또 짜증을 버럭 내며 말을 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머니의 말을 끊는 걸 즐기고 있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작고 귀엽고 푸른 눈과 금발의 멍청이들을 입양하길 원한다구요. 그리고 그런 애들이 크면 남자들은 커다란 가슴과 귀여운 외모를 원하고 여자들은 졸라 멋있는 남성들을 원하죠.”
그는 어깨를 으쓱 했다.
“난 그 멍청이들하고는 비교도 안 됐어요. 그래서 웬치스(W.E.N.C.H.E.S.)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웬치스?”
“국제 긴급 여성 단체, 치료와 엔터테인먼트 부서(Women’s Emergency National Corps, Hospitality & Entertainment Section)예요. 지금은 ‘스페이스 엔젤스(Space Angels)’라고 불리죠. 우주인들의 예비 간호그룹(Auxiliary Nursing Group, Extraterrestrial Legions)이요.”
난 그 두 가지 다 뭘 말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뜻이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그건 여성들로 이루어진 우주인 재활 치료 단체(Women’s Hospitality Order Refortifying & Encouraging Spacemen)였다.
단어의 의미 변화는 시간여행에 있어서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 때는 그 사람들이 우주에 사람들을 보낼 수 없을 거라고 좌절하던 때였어요. 청교도들이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기억나요? 무튼 그 일이 내게 기회가 되었어요. 그때는 자원봉사자들이 적었으니까. 감정적, 정신적으로 성숙하면서 본받을 만한 여성, 특히 처녀였어야 했거든요. 그 사람들은 처녀를 안 좋은 생활환경에서 구제해 주고 싶어 했죠. 하지만 봉사자들은 거의 늙은 노파들이었어요. 아니면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들이거나… 뭐, 그래서 외모는 중요치 않았어요. 그들이 날 인정해 준다면 뻐드렁니도 고쳐주고 머리카락에 웨이브도 넣어주고 예쁘게 걷는 법이나 춤추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요. 그리고 원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트레이닝도 시켜주고요. 어쩌면 성형수술을 시켜줬을지도….”
나는 가만히 서서 듣고 있기가 힘들 것 같아 의자를 하나 가지고 와서 그의 옆에 편하게 앉았다.
“하지만 일하는 중에는 임신을 하면 안 되었죠. 일하는 기간 중에는 결혼도 용납이 안 되었어요.”
그는 옛 생각에 정신적으로 힘든 듯 두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열여덟 살 쯤에, 산모 도우미로 일한 적이 있어요. 그 집은 값 싼 도우미를 원했죠. 물론 내가 21살이 되기 전 까지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걸 알았지만 그 때는 절실했거든요. 저는 그 집에서 온갖 집안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녔어요. 타이핑과 속기교실을 다니는 척 하면서 교양교실을 다녔죠. 나중에 공식적으로 일을 할 때 도움이 될까 해서요.”
나는 가만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까지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는듯했다.
“그러면서 100달러짜리 수표를 가진 겉만 번지르르한 청년을 만났어요.”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드디어 이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100달러짜리 수표가 현금 뭉치만큼 안전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저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그 돈을 제 맘대로 쓰라고 했어요.”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전 그러지는 않았죠. 그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남자는 제가 처음으로 만난, 제게 잘해주는 남자였어요. 그래서 야간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했어요. 그를 더 자주 보려고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어요.”
그는 그 말을 하면서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어느 날 공원에서부터 일이 이상해졌어요.”
그가 말을 멈췄다.
“어떻게 됐는데요?”
내가 물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일은 언제 생각해도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 후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사람을 다시는 못 봤죠. 나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사랑한다며 굿나잇 키스까지 해주던 남자가… 그 다음날 사라진 거예요.”
말을 마친 그의 표정이 갑자기 험상궂어졌다.
“그를 찾게 되면 죽여 버릴 거예요!”
그는 눈 앞의 포크를 손으로 쥐고 테이블을 쿡 찍었다.
“음, 무슨 기분인지는 알겠지만, 죽인다니… 좀 심한 것 같네…. 그 남자를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럼 뭣 하러 찾아요?”
"그 남자가 당신을 버리고 도망간 거에 대해서는 그냥 팔 한 두개 쯤 부러뜨리면 되겠지만…”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해요! 얘기가 다 끝날 때까지 들어봐요. 그 일 때문에 다시는 사랑을 못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웬치스에 그 어느 때보다 더 가입하고 싶었어요. 더 이상은 처녀만을 원하지 않기에 더 힘이 났죠. 치마가 꽉 끼기 전까지는….”
“살쪄서요?”
그는 내 물음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손에 쥔 포크롤 내 눈을 찍을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
눈치가 빠른 척을 해야했다.
“그럼 임신한 거예요?”
“네! 그런데도 그 지독한 구두쇠들은 저는 해고하지 않고 일을 시켰어요. 그리고 배가 불러서 더는 일을 못하게 되니까 그제서야 저를 해고했죠. 고아원에서는 날 다시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다른 임산부들과 요강에 둘러싸여서 자선단체 병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날 밤에 저는 수술대 위에 올랐어요. 간호사는 저보고 ‘긴장 푸시고 숨을 크게 들이쉬세요.’하고 말하더라고요. 그 후로 한참 고통스럽게 사경을 헤매다 가슴 아래가 마비된 채로 병실 침대에서 깨어났어요. 제 의사가 들어오면서 어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미라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괜찮아요. 진정제를 투여해서 그런 거니까. 곧 괜찮아질 거예요. 제왕절개가 손톱 까진 것 보다는 더 아프겠지만….’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왕절개요? 아기는 어떻게 됬나요?’하고 물었어요. 의사는 아기가 무사히 잘 태어났다고 대답했죠. ‘아들이에요, 딸이에요?’하고 물어봤더니 ‘건강한 딸입니다. 3킬로그램이에요.’하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말에 일단 안심했죠."
“아기를 가지는 건 뭔가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난 퇴원하면 아기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서 아빠가 죽었다고 믿고 살게 하자고 결심했어요. 내 아이에게 고아원은 절대 안 되니까.”
그는 말이 끝나자 포크를 내려놓고서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의사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내 성기가 특이했대나? 그래서 난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의사가 한참을 머뭇거리면서 ‘청심환 같은 게 필요할 수도 있어요. 필요하면 달라고 하세요.’하고 말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뜸들이지 말라고 그랬더니 35살 까지 여자로 살다가 그 후로 법․의학적으로 남자가 되어서 결혼도 한 스코틀랜드인 의사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냐는 식으로 자꾸 답답하게 돌려서 말하는 거예요. 짜증나게….”
“그래도 일단 참으면서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하고 다시 되물어봤죠. 그랬더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산모가 이제부터 남성이라는 얘깁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일어나 앉으면서 ‘뭐라고요?’ 하고 소리쳤어요. ‘진정해요. 제가 산모의 제왕절개 수술 중에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산모는 남과 여, 두 개의 성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둘 다 온전히 성숙한 건 아니었고 임신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만 여성성이 자란 거예요. 하지만 이제 다시는 여성의 성기를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버려서, 자궁을 잘라내고 남성으로 지낼 수 있도록 성전환을 한 겁니다.’ 의사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제게 손을 얹고 ‘걱정 말아요. 당신은 아직 젊고, 골격은 남성적으로 재적응할 거예요. 우리는 당신의 성비율을 모니터 할 거고 완벽하게 남성으로 만들어 드릴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난 울기 시작했어요. ‘제 아기는 어떡하죠?’ 그랬더니 하는 말이 뭔 줄 알아요? ‘산모가 직접 아기를 돌볼 수는 없어요. 새끼고양이도 먹일 수 없을 만큼 모유가 안 나오는 상태거든요. 아마 아기를 안 보는 게 나을 겁니다. 입양시키세요.’이러는 거예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죠? 난 당연히 ‘안돼요!’하고 소리쳤어요. 의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선택권은 당신에게 있어요. 아기의 엄마, 아니 부모니까요. 하지만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먼저 회복하는 게 중요해요.’ 이딴 식으로나 말하더군요. 다음날 간호사들은 제게 아기를 보여줬어요. 저는 매일 아기를 보러갔어요. 익숙해지려고요. 난 갓난아기를 본 적이 없었어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죠. 제 딸은 털만 없는 작은 원숭이 같았어요. 저는 딸의 옆에서 정말 잘 해주리라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4주쯤 후에 그 결심은 아무 소용이 없어졌어요.”
“왜요?”
“납치당했거든요.”
“납치요?”
로버트는 우리가 내기한 술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네. 병원 간호사한테요!”
그는 화난 듯 숨을 거칠게 쉬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빼앗아 버리는 건 무슨 심보죠?”
“정말 유감이에요.”
나는 그를 동정했다.
“한잔 더 따라 줄게요. 단서는 없대요?”
“경찰이 추적해 본 바로는 없어요. 누군가가 제 딸의 삼촌이라고 하고 보러왔는데 잠깐 간호사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데리고 나가버린 거예요.”
“생김새는요?”
“그냥 남자래요. 흔하게 생긴 얼굴이요. 당신이나 나처럼….”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 생각에 범인은 아기의 아버지 같아요. 간호사는 더 늙은 사람이라고 확신했지만 누가 알아요? 분장하고 왔을지. 그 사람 아니면 누가 내 딸을 데려갔겠어요? 아기가 없는 엄마라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남자라니까….”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역겨운 곳에서 11달 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지냈어요. 4개월 후에는 수염이 자라더군요. 외출하기 전에는 항상 주기적으로 면도를 했어요. 그 후로 제가 남자라는 의심을 하지는 않았죠. 확실해졌으니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간호사들의 가슴라인을 내려다보게 되기도 했어요.”
“음, 그래도 역경을 잘 헤쳐 나갔네요. 여자로서의 삶을 살다가도 별 문제 없는 돈 잘 버는 남자가 됐잖아요.”
그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뭘요?”
“망가진 여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을까요?”
“예전에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안 그러지 않겠어요?”
“난 여자로서 망가질 대로 망가졌어요! 그 건달 같은 놈이 날 망쳐놨다고요! 더 이상 여자로 살지 못해요…. 그리고 남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그가 빽 소리를 지르자 주위의 사람들이 잠시 우리를 쳐다보았다.
“익숙해지면 되잖아요.”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난 남자처럼 걷고 화장실을 제대로 찾아가는 법을 배우는 걸 말한 게 아니에요. 그런 것쯤은 병원에서 다 배웠어요.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죠? 젠장, 난 운전하는 법도 모른단 말예요. 사업을 할 줄도 몰라요. 간단한 노동도 못하죠. 조직에 상처를 너무 많이 입었고 근육도 약하단 말이에요.”
그는 내가 다시 따라준 술잔을 비웠다.
“난 그 인간이 웬치스에 대한 것도 망쳐놔서 정말 싫었어요. 대신 우주비행사를 하려고도 했었는데 배의 수술 자국을 보더니 군 서비스를 받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정하더군요.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런던으로 왔어요. 처음에는 튀김요리사로 시작해서 타자기를 빌리고 속기사로 직업을 바꿨죠. 4개월 동안 겨우 네 단어랑 원고 한 장을 썼어요. 정말 한심하죠? 그 원고는 실제 이야기였는데 종이낭비였어요. 그런데도 그 원고를 쓴 멍청이는 그걸 팔았죠.”
“그게 시초가 되었어요. 그래서 잡지를 잔뜩 사서 연구했어요.”
그는 혼자 빈정거렸다.
“이제 제가 어떻게 진짜 여성의 시점으로 미혼모 이야기를 썼는지 알게 됐겠죠. 물론 그 진짜 이야기는 아직 팔지 않았지만…. 제가 내기에서 이겼나요?”
나는 말없이 그에게 술병을 밀었다. 이미 알고 있던 얘기였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저기. 아직도 아까 말한 일을 하고 싶어요?”
그의 눈이 살기를 띄며 반짝였다.
“기다려요. 그 남자를 죽이고 싶어요?”
그는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맘대로 해요.”
“일단 진정해요.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어요. 도와줄게요. 그 남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 인간을 알아요?”
난 부드럽게 “일단 내 옷 좀 놔요. 안 그러면 밖으로 내쫒고 경찰들에게 당신이 취했다고 말해버리는 수가 있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바 밑에서 가져온 곤봉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내 옷을 놓아주었다.
“미안해요. 근데 그 인간 어디 있냐고요.”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때가 되면 알게 돼요. 병원 기록이랑 고아원 기록, 의료 기록이 있어요. 당신이 있던 고아원의 원장님이 페더리지 부인 맞죠? 그루엔슈타인 부인의 뒤를 이어 원장이 되었죠. 또 당신의 어렸을 적 이름이 ‘제인’이죠? 그리고 당신은 지금까지 내게 이런 얘기를 한마디도 안 해줬죠. 맞죠?”
그는 당황하고 무서운 듯 했다.
“뭐하는 거예요?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죠?”
“수작 아니에요. 당신이 적당하다고 생각 할 때까지 복수 할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는 당신이 복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그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인상을 쓰고 고개를 흔들며 술병을 옆으로 치웠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가 어디에 있는지나 말해요.”
나는 그가 치운 술병을 다시 집어 한잔을 더 따라주었다. 그는 술에 취했다. 하지만 그의 분노가 취기를 가시게 한 듯했다.
“잠깐 기다려요. 내가 당신에게 뭘 해주면 당신도 내게 뭘 해줘야죠.”
“뭘 원하는데요?”
“당신은 지금 하는 일이 싫죠? 만약 높은 임금에 안정적이고, 당신만의 상사와 많은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래요?”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 빌어먹을 헛소리나 집어치우시죠.’라고 할래요. 그런 직업은 없어요.”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내가 당신에게 그 남자를 보여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가 제안한 직업을 가지는 겁니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땐 날 죽여도 상관없어요.”
그는 어지러운듯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잔을 더 따라 마셨다.
“언제 그를 찾아줄 거예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약속한 겁니다! 그 남자는 지금 당장 찾아줄 수 있어요.”
나는 내 보좌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로버트를 데리고 가게 뒤로 가려는데 주크박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난 내 할아버지다! (<주1> 1930년대 컨츄리 음악)’
내가 1970년대의 노래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주크박스에는 클래식이나 예전 곡들밖에 넣지 않았는데 저 곡이 남아있을
줄을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서비스맨에게 “이봐! 잠깐 창고 들어갔다 나올 동안 저 노래 튼 사람한테 돈 돌려주고
꺼버려!”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로버트와 함께 가게 뒤쪽 창고로 향했다.
화장실 맞은편 창고에는 가게 매니저와 나만 열쇠를 가지고 있는 철문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또 오직 나만 열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갔다. 로버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창문도 없는 방을 둘러보았다.
“그 인간이 어디에 있다는 거죠?”
“지금 보여줄게요.”
나는 방안에 있는 단 하나의 물건인 시공간좌표계 변환 키트 1992-2를 열었다. 마치 서류가방처럼 생긴 이 물건은 내가 봐도
정말 아름답고 멋있는 물건이었다. 바로 어제 겨우 이 물건의 사용법을 알아냈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동을 시킬 공간을
그물로 쳐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건 뭐에요?”
내가 서류가방을 여는 것을 보고 로버트가 물었다.
“타임머신이에요.”
내가 대답하면서 그물을 우리 주위에 쳤다.
“뭐라고요?”
그가 뒤로 물러났다. 이때 주의할 사항이 있는데 그물을 칠 때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해서 그물코를 밟게
해야 했다. 잘못해서 신발 끈이나 발 하나라도 그물 밖으로 나간다면…. 그물 밖의 그 부분만 없어진 채로 재결합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요원은 일부러 사기를 쳐서 목표물이 그물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난 솔직한 편이 좋았다. 목표물이 놀라는 동안
스위치를 눌러서 더 놀라게 할 수 있으니까.
1030 시간 제 6구역 클리블랜드 1963년 4월 3일 - 에이펙스 빌딩
“이봐요!”
로버트가 소리 질렀다.
“이 빌어먹을 것 좀 벗겨줘요!”
“미안해요.”
나는 그에게 사과하고 그물을 벗겨주었다. 그리고 그물을 다시 서류가방에 넣었다.
“그 남자를 찾고 싶다면서요.”
“저게 타임머신이라고 했잖아요!”
나는 방금 전까지는 없었던 창문을 가리켰다.
“저 밖이 11월처럼 보여요? 아님 런던처럼 보여요?”
그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창문 밖의 꽃봉오리들을 얼빠진 듯이
바라보는 동안, 나는 그물을 넣은 반대쪽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100달러짜리 수표를 꺼내 서명이 1963의 것이 확실히 맞는지
확인했다. 시간요원단체에서는 내가 얼마를 쓰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수표쯤이야 아무런 돈 없이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은 시대에 동 떨어지는 것만큼은 정말 싫어했다.
그는 창문을 바라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 남자는 여기 있어요. 여기서 나가서 그를 잡으면 되요. 이건 당신이 여기서 쓸 수 있는 돈이에요.”
나는 수표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 사람을 마음대로 처리해요. 그런 후에는 내가 다시 데리러 올 거예요.”
100달러짜리 수표는 한 번도 수표를 사용해보지 못한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수표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를 빌딩
복도로 내쫒고 문을 걸어 잠갔다.
혼자 하는 시간여행은 어느 때보다 간단해서 좋았다.
7100 시간 제 6구역 클리블랜드 1964년 3월 10일 - 에이펙스 빌딩
문 밑에는 내 방의 계약 만료일이 일주일 남았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 밖에 다른 것들은 1년 전의 이곳과 다른 게 없었다.
바깥에는 나무들이 헐벗어 있고 눈이 잔뜩 쌓여있었다. 나는 예전에 내가 이 방을 빌렸을 때 두고 갔던 제 6구역 시간대의 돈과
옷을 챙긴 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차를 한 대 빌려서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던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오기 까지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아기를 데리고 다시
에이펙스 빌딩으로 돌아왔다. 이제 과거로 가야하는데, 1945년에는 이 빌딩이 건축되지 않았다. 미리 그것 까지 계산에
넣어놓아서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참 대견했다.
0100 시간 제 6구역 클리블랜드 1945년 9월 20일 - 스카이 뷰 모텔
나는 시공간좌표계 변환 키트와 아기를 데리고 도심 밖의 한 모텔에 도착했다. 예전에 내가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이름으로
그 방을 빌려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염려는 없었다. 창문과 문은 잠겨 있고 커튼까지 쳐 놓은데다가 바닥에는
타임머신이 작동할 때를 대비해서 아무것도 없이 치워놓았다. 만약 이동할 시공간의 바닥에 놓인 물건이 그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반동이 일어나서 시간의 소용돌이에 갇혀버리니까.
아직까지 별 문제는 없었다. 제인은 내 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내가 엄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걸까? 나는
제인의 얼굴을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나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제인을 모텔
밖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제인이 깨지 않게 조심히 이마에 키스를 해주고 미리 준비해둔 작은 상자에 누인 후에 고아원으로
데려가서 계단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다시 두 블록 앞의 휴게소로 가서 공중전화로 고아원에 전화를 했다. 늦게 발견되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알려주는 게 나을 것이다. 노파심에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와 원장이 제인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여기서 할 일은 끝났다. 나는 모텔로 돌아와서 가까운 곳에 차를 버렸다. 그리고 1963년의 에이펙스 빌딩으로 돌아갔다.
2200 시간 제 6구역 클리블랜드 1963년 4월 24일 - 에이펙스 빌딩
나는 로버트와 그에게 상처를 준 남자가 충분한 관계를 맺을 때까지의 기간을 계산해서 시간이동을 했다. 내 계산이 맞았다면
로버트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그 남자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지독한 구두쇠의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서 기사더러 내가 숨어있는 동안 이 주위에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잠시 후, 나는 로버트와 한 여자가 서로 팔짱으로 끼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여자를 현관 앞에 세우고 굿나잇 키스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훨씬 길었다. 그리고 키스가 끝난 후 제인은 집으로 들어가고 로버트는 인도로 내려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팔을 손으로 쿡 찔렀다.
“복수는 끝났어요?”
내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을 데리러 왔어요.”
“당신!”
그는 나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네, 나예요. 이제 당신이 그토록 죽이고 싶어하던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았죠? 그리고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신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거예요. 충분히 생각을 깊게 더 해본다면…. 당신이 잃은 아기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겁니다.”
그는 내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크나큰 충격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자신이 시공간좌표계에서 엄청나게 패러독스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 온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다시 택시에 타서 시간 요원 단체의 본부인 더 링 빌딩으로 가 시간이동을 했다.
2300 시간 제 8구역 런던 1985년 8월 12일 – 더 링 빌딩
나는 건물로 들어가 경비를 깨우고 내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로버트를 침실로 데려가 행복 약을 먹이고 재운 뒤에
다음날 아침에 시간 요원 단체에 입단시키라고 말했다. 경비원은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지위는 내가 그보다 높았기 때문에 내 말에
복종 할 수밖에 없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지위에 대한 개념은 언제나 변하질 않아서 좋았다.
“이름은?”
경비원이 물었다. 나는 내 이름을 적어주었다. 나나 그나 이름이 다를 리가 없으니까. 그는 내가 써주는 이름을 보고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런 거예요? 흠….”
“네 일이나 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로버트에게 돌아섰다.
“당신이 부탁한 일은 모두 끝났어요. 이제 내가 말했던 꿈의 직업을 갖는 거예요. 당신이 잘 해낼 거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똑같이 될 거니까요.”
경비원이 옆에서 말했다. 나는 경비원을 쏘아보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내 눈을 피했다.
“날 봐요. 당신은 잘 해낼 수 있어요. 난 당신을 믿어요.”
나는 경비원이 로버트를 데려가는 것을 보며 다시 시간이동을 했다.
2217 시간 제 5 구역 동부 1970년 11월 7일 - 팝스 플레이스 주점
나는 내가 창고에 있던 시간을 고려해서 드람부이 한 상자를 들고 나갔다. 내 보좌관은 “나는 내 할아버지다!”를 틀었던 손님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손님보고 노래 틀라고 해. 플러그를 뽑아버리면 되니까.”
너무 피곤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1972년의 그 실수 이후로는 사람을 새로 입단 시키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꼭 알맞은 핑계를 대면서 사람이 흥미 있어할만한 얘기를 꺼내 자연스럽게 데려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평소보다 5분 일찍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계산대 옆에 가게 매니저에게 ‘나는 일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떠나니까 내 변호사를
만나 봐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작성해 놓았다. 시간요원 단체의 윗사람들이 내가 여기서 일 한만큼의 월급을 받아갈지 안 받아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마무리가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떠날 수는 없었다.
나는 창고로 들어가 1993년으로 시간이동을 했다.
2200 시간 제 7구역 런던 1993년 8월 28일 더 링 빌딩 관리부서 본부
나는 ID 카드로 체크인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한 일주일 쯤 자고 싶었다. 팝스플레이스 주점에서 내기에서 이겼던 술병을 들고
왔었는데 마시기 전에 일단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술잔에 술을 따라서 마시는데 맛이 아주 끔찍했다. 내가 도대체 왜 올드
언더웨어 같은 술을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보고서를 다른 보고서들과 정리했다. 나 자신까지 합해서 모두 40명. 나는 사람들을 입단시키는 게 너무 질렸다. 그래서
더 이상은 입단 미션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메모를 써서 보고서와 같이 슬롯에 넣고 침대로 향했다. 침대 위의 ‘시간이동 법칙’이
눈에 들어왔다.
◦ 내일 해야 하는 일을 어제에 해놓지 말 것.
◦ 성공한 일이 있다면 다시는 하지 말 것.
◦ 시간미션 한번이 60억을 살린다.
◦ 패러독스는 패러독스로 놔둘 것.
◦ 생각났을 때가 가장 빠를 때이다.
◦ 조상들은 평범한 인간이다.
◦ 신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이것들은 내가 신입 요원이었을 때만큼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30년의 시간이동 미션들이 나를 감정적으로 닳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잘 준비를 하며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내 배가 보였다. 기다란 수술 자국. 제왕절개 수술은 배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흉터를 보자 문득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의 반지….
영원히 자신의 꼬리를 씹어 먹는 뱀…. 무한 루프….
내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밖의 좀비 같은 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두통 가루를 먹은 것도 아닌데 머리가 아팠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
저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여기 이 어둠 속에는 나만, 나 혼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제인….
문득 제인이었던 때가 너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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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45년 여자는 영문도 모른채 어느 고아원에 맡겨진다.
여자는 외로움과 낙담속에서 하루하루 생활해간다.
세월이 흘러 1963년의 어느날, 여자는 한 방랑자 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걸 느껴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하기 힘들만큼 강렬한 힘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오래지않아 여자는 이 방랑자와 사랑에 빠지게된다.
그러다 방랑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방랑자는 편지 한 장 없이 홀랑 사라져버린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간다. 그런데 분만을 시도하던중 의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된다.
여자가 남녀의 특징을 모두 갖고있었던것.
그것때문에 여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의사는 그녀를 구하기위해 성전환수술을 하게된다.
그 바람에 여자는 남자로 바뀐다.
그런데 이 때, 누군가가 남자가 된 여자의 아기를 분만실에서 납치해가버린다.
남자는 이 일로 상처를 심하게 받은 뒤 스스로 추스르지 못해 떠돌이 주정꾼신세가 된다.
7년후인 1970년 어느날, 남자은 우연히 '팝스 플레이스'라는 술집에 들러 ,
바에 앉아 안주도 없이 술을 들이키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자신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나이든 바텐더에게 털어놓는다.
얘기를 들은 바텐더는 딱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남자을 '시간여행단체'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여자를 임신시킨 뒤 훌쩍 떠나버린 방랑자 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고한다.
결국 두 사람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 바텐더는 남자를 1963년에다 떨궈준다.
1963년은 바로 여자과 방랑자가 만났던 해이다.
그런데 남자는 이상하게도 고아원 출신의 여자에게 마음이 끌리는것을 느껴 두 사람은 사랑을하고
결국 그 여자는 임신을 하게된다.
한편 바텐더는 그로부터 9개월뒤, 어느 병원에서 여자아기를 납치해 1945년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한 고아원에 이 여자아기를 맡겨놓는다.
그러고 난 뒤 남자를 '시간여행단체'에 등록시키기위해 다시 1985년에 데려다놓는다.
바텐더의 권유로 '시간여행단체'에 가입한 남자는, 그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된다.
그리하여 훗날 이 단체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로회원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이 원로회원은 시간여행을 즐기기 위해 바텐더로 위장한뒤,
또다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1970년 '팝스 플레이스'에서 떠돌이 남자를 만나던 운명의 그날로...
출처 : 로버트 하인라인의 단편소설
- 그대들은 모두 좀비(All you Zomb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