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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게시물ID : freeboard_2986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선생닝
추천 : 0
조회수 : 24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8/05/05 19:01:33
어린이날 새벽 2시, 일찍 잠든 탓에 정신이 말짱해져서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책을 꺼내 들고 읽었다.
타향생활을 하는 나는 어버이날 대신 5월 4일 아침 부모님 뵈러 고향에 갔다가 피곤하여 일찍 잠들었기에 새벽에 그만 깨 버린 것이다. 5월 5일은 우리 반 아이들과 약속이 있어서 새벽같이 올라와야 했기에 잠을 더 잘 요량으로 책을 펼쳤는데 평소같지 않게 계속 읽어 내려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짧지만 너무 유명한 러시아 이야기. 내가 가진 책에는 이 외에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또 다른 일화와 바보 이반의 이야기가 곁들여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몰랐지만,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자꾸만 상기되어 마음이 착잡하다.

'어린이 날, 가족과 계획이 없을 시 아침 10시에 학교 운동장으로'
라고 토요일 알림장에 써 주었지만, 내심 아무도 없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우리 반 녀석들은 모두 부모님과 즐거운 어린이 날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6학년이라 선생님과 노느니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할 수도 있고, 나도 혼자 집에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도......
 9시 55분, 학교에는 사이 좋게 남자 2명, 여자 2명이 있었고 나는 언제나 어린이날 행사를 해 왔던 교육대학교로 향했다. 이렇게 소규모로 애들과 다닐 때는 서로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이성친구 얘기, 비밀 얘기, 웃긴 얘기 등등
 "선생님은 휴일인데 애인하고 데이트도 안해요?"
 "애인이 없어서 미안하구나. 큰 기대는 안한다만 혹시 너에게 결혼 안한 이모나 고모는 없느냐?"
 "없어요. 근데 있어도 선생님은 싫어요."
 "왜?"
 "선생님은 너무 느끼해요."
 "정말 잘 알고 있구나, 개념 없는 초딩아. 넌 좀 짱인듯"
 소규모로 다닐 때는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조잘대다가 자신들이 무개념 초딩이 아닌 것을 증명하려는 듯 시사 얘기도 했다. 
 "선생님, 이MB 찍었어요?"
 "그럴리가. 선생님은 개념 충만한 성인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그쵸? 근데 참 이상해요. 왜 이MB이 대통령이 된거에요?"
 "그건......"
 교사가 갖는 직업병 중 하나는 어떤 질문이든 대답을 해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질문자가 답을 원해서가 아닌 습관적인 질문을 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잠시 진지해졌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지혜가 허락되지 않아서야." 
 "아.... 네.... 근데 오늘 5반에 수현이랑....."
 "응. 니들이 뭔 소린지 이해를 못했구나. 쟤는 이해 못하면 맨날 '네...' 하고 딴소리 하더라. 뭔 소리냐면 여자친구가 머리를 짧게 커트한 줄도 모르고 예쁜 머리띠를 선물하려는 남자도 자기에게 뭐가 필요한지 모르잖아. 오후에 비올 줄 모르고 오전에 세차하는 사람도 그렇고. 마찬가지로 이MB이 어떻게 할 줄 모르면서 대통령을 뽑은 거지."
 "근데 미국소 먹으면 광우병 걸리는 건 알잖아요. 근데 왜 수입해요? 알면 얼른 그만 둬야지. 독도도 그렇고 의료보험도 또 뭐라뭐라 하든데. 이MB도 영호처럼 개념을 밥 말아 먹었나?"
 "국밥에 말아 먹었다는 소문은 있지만, 확실치는 않구나. 그리고 영호가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비유를. 영호를 정말 싫어하나 보네. 하여튼 대통령이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해. 그 양반도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말야."

 그 이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한 뼘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달리다가 결국 얻은 것은 자기 무덤 분량의 땅 한 평 뿐이었던 어리석은 농부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묘하게 일치된다. 그리고 무개념 초딩인 줄만 알았던 우리 반 녀석들도 이 세태를 꼬집을 줄 아는 걸 보면서 한 줄기 희망도 보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에서는 사랑(서로 돌봄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으로 사는 것으로 나왔지만, 오늘 나는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고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희망이고 미래다. 나와 우리 세대가 실패를 반복하고 있지만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절망과 탄압 속에서 어려운 투쟁을 해야 하지만, 10년 후에는 밝아질 것을. 

13살 이놈들아, 빨리 커서 투표하렴. 광우병 걸리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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