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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 생활. 고마웠던 사람들.
게시물ID : soda_57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징오징오징어
추천 : 19
조회수 : 3458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7/06/28 00:16:51
지난 2년 동안 호주에서 기억에 남았던 외국인들.
1.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간신히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향했을 때 안내책자를 펼쳐놓고 백팩커스를 찾는데 도저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라. 동공지진 일으키면서 정장 말끔히 차려입은 양놈한테 도움을 좀 요청했더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어색하게 나를 밀어내길래 존나 당황했는데 갑자기 나보다 머리 한, 두개는 작은 아줌마가 생글생글한 얼굴로 내 앞에 척 나타나더니 너 여기서 내려! 너 여기로 쭉 가! 하면서 나의 구원자가 되어주었음. 고마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 깊숙히 숙여서 인사함. 완전 내 이상형. 내가 짝사랑했던 친구랑 얼굴도 행동도 닮아서 설렜던건 비밀.

2.  뙤약볕 아래에서 발품 팔면서 이력서 돌리는데 왠 보행기 집고 있는 할머니가 나한테 다가옴. 길 잃어버렸다고 집에 좀 데려가달래.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구글맵 찍어봤더니 할머니가 여태 집가는 방향 반대쪽으로 걸어옴. 30도가 넘는 폭염속에서 30분을 걸었는데 절반도 못감. 할머니는 자꾸 힘들다고 쉬었다 가자면서 멈추더니 헉헉대면서도 줄담배만 계속 핌. 나는 할머니가 걱정되서 물 좀 마시라고 내 생수통 건네는데 할머니는 자꾸 자기 아들 이야기만. ㅋㅋㅋㅋㅋㅋ 알고봤더니 이탈리에서 이민 온 할머니. 보행기에 의존하면서도 쿨하게 담배한데 무는 그 모습이 어찌나 쿨하던지. 결국 할머니 체력을 고려하면 도저히 걸어서는 못갈 것 같아서 택시 불러서 태워서 보내드림. 택시에 오르기 전에 자꾸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제스쳐를 취하면서 고맙다고 하는데 아들때문에 더 이상 속썩이지 않고 행복하시기를. 

3. 처음 쉐어 하우스를 들어갔는데 이탈리아 남정네만 4명. 2명이 존나 개새였음. 아껴먹던 내 깻잎 장아찌 냄새가 고약해서 썩은 고기인줄 알고 버렸다고 했던 개놈들. 근데 나머지 두명은 개귀여운 놈들. 나는 축알못인데 맥주먹으면서 자꾸 유벤투스 같이 욕해주니까 좋아하던 바보들. ㅋㅋㅋㅋㅋ 먼저 클럽에 가자고 하더니 막상 가서는 여자들한테 아무 말도 못하던 쑥맥들. ㅋㅋㅋㅋ 아직도 기억한다 리키&아드리안.

4. 길은 일어버렸는데 핸드폰은 꺼졌고...막막해서 아무 사무실에나 들어가서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사무실 리셉셔니스트는 물론 직장 상사까지 같이 나와서 구글맵 돌려가며 길 안내해줬던 오즈본 파크에서 만났던 통통이 오지 아줌마와 이상하게 나한테 친절했던 인디안 남정네! 일은 안하고 나 도와준다고 다같이 구글맵 뒤적여도 되는 겁니까? ㅋㅋㅋㅋ

5. 샐러드 공장에서 만났던 친구들. 뉴질랜드 억양때문에 항상 나를 곤란하게 만들면서도 항상 솔선수범해서 나를 도와줬던 마오리족 여성친구. 풋볼로 다져진 생활 체육인의 근육은 아시아 남성의 그것을 넘어섰지! 내심 좋아했었는데 어느날 나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나는 여자친구 있는데 너는 남지친구 없냐고 묻더라. 야..나..여자 좋아해. ㅠㅠ 내가 그렇게 여성스러워 보였니. ㅠㅠ 항상 친절했던 파키스탄 친구들과 쑥스러워하면서도 나를 배려해줬던 중국인 아줌마들. 슈퍼바이저 주제에 xbox게임 이야기하면서 나랑 농땡이쳤던 제이미와 처음에는 서로 다퉜지만 나중에는 나한테 인종차별 발언하는 놈한테 대신 달려들어서 싸워주던 나이지리아 친구. 다들 잘 살고 있겠지?

6. 세컨비자때문에 시골 깡촌으로 내려가는데 기차 안에서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던 이탈리아 아줌마. 오랜 친구 장례식에 간다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갑작스럽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길래 나도 모르게 나도 내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내게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사주었다. 잘 할거라고. 괜찮을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며 응원해주던 그 아줌마가 아직도 기억난다. 퍼스 동물원으로 가는 선착장 매표소에서 일한다고 했었던 것 같다. 매일 출근시간마다 같은 커피숍에 들리고 그곳에는 항상 만느는 사람끼리는 친구같다던 그 아줌마. 언제가는 얻어먹었던 와인의 보답으로 좋은 와인 한 병사서 찾아가고 싶었는데 끝내는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어디선가 한번 다시 볼 수 있기를.

7. 시골 깡촌 번버리에서 고생하는 동안 내게 의지가 되어주었던 로리스 할머니. 처음에는 무슨 사기꾼인줄 알았더니 알고 봤더니 신실한 몰몬교 신자. ㅋㅋㅋㅋㅋㅋ 한국에는 로버트 할리라는 유명한 몰몬교 신자가 있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페이스북에서 로버트 할리를 찾더니 나한테 연결해줬던 그 할머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뚝배기 하실래예? 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처음에는 삶이 여유로우니까 남들한테 싸구려 동정이나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봤더니 나마저 숙연해지는 아픔을 갖고 있던 할머니. 그래도 끝까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모습에 편협했던 나를 자책할 수 밖에 없었다.

8. 진짜 한국에 왔으면 인기폭발했을 것 같은 vini. 내가 평생 봐왔던 사람들 중에서 최고의 성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여유롭고 천덕꾸러기같은 성격은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만점. 염어도 잘 못하는 나를 여기저기 끌고다니며 별 걸 다 경험하게 해줬던 녀석이다. 갑자기 나를 끌고가 트럭 위에 쇼파 설치해놓고 잠을 자게 하지를 않나, 새벽중에 달리는 트럭에 메달려 스케이트 보드를 타지를 않나, 개새가 나를 파티에 초대하더니 청중들 앞에서 나한테 강남스타일을 부르게 하지를 않나 ㅋㅋㅋㅋㅋ  로리스 할머니한테 남같지 않은, 의붓아들 같은 존재였는데 정말 그 편겹없고 사랑스러운 성격에 감탄했다. 나는 항상 녀석에게 말했다. 너는 반드시 한국에 와야한다고. 그러면 여자들이 줄을 설거라고. ㅋㅋㅋㅋㅋ 떠나가는 마지막 날 나는 그림 그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녀석을 위해 비싼 미술 용품을 사줬고 녀석은 그걸고 내 초상화를 그려줬다. 함께했던 마지막 밤 녀석이 추천해준 영화를 보며 쇼파위에서 잠들었던 내게 손수 이불을 덮어줬던 기억. 아마 잊지 못하겠지?

9. 브이엔브이에서 일하면서 항상 나를 챙겨줬던 크리스마스 아일랜드 출신 아저씨. 이쁘게 생긴 대만 출신 여자를 내가 멍하니 쳐다보니 내 어깨를 밀
치며 가서 말걸어보라고 그렇게 나를 놀려댔던 아저씨. ㅋㅋㅋㅋㅋㅋ 그 친절한 성격때문에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항상 그 아저씨한테 말을 걸었지. ㅋㅋㅋㅋ 언제가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는 얘가 내 아들이야!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잘 생겼지! 하면서 자랑하던게 생각난다. 

10. xbox에 미쳐있던 오지 아저씨. ㅋㅋㅋㅋ 오타쿠에게 국경이란 없다라는 말을 몸소 체험케 해주었다. ㅋㅋㅋㅋㅋㅋ 아저씨 이제 xbox one 사셨어요? 아 진짜 드레곤 에이지 멀티 한번 같이 했어야 하는데. 

11. 돌소냐에서 만났던 사람들! 나보다 20살은 많지만 너무 매력 넘쳤던 태국 아줌마! 너무 순수했던 그 웃음에 완전 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한테 반한 영국 남자한테 이끌려 호주까지 오게됐다는 그 아줌마는 나한테 항상 태국 음식을 소개해주는 전도사였다! 허구헌날 점심으로 참치 통조림만 챙겨오는 나한테 자기 반찬을 푹푹 떠서 넘겨주던 마음씨 좋은 아줌마. 

12. 내가 아무리 꾀를 부려도 쓱 웃고 지났던 이탈리아 할아버지. 전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정신없던 나를 항상 감싸주면서 대형 노릇하려고 했던 중국인 형. 남은 건 그들을 향한 고마움과 추억 뿐이구나.

술 취했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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