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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1인자 열전- 도사쿠
게시물ID : baduk_5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샤이나리
추천 : 10
조회수 : 310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6/09/18 22: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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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 글은 비전문인이 쓴 글입니다. 맹신은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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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중국에서 시작됐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요나라의 임금이 지혜롭지 못한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한 게임이라는 설입니다. 

그러나 현대 바둑의 근간을 이루는 틀을 만든 나라는 일본입니다. 특히 포석적 기틀은 도사쿠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 포석 기틀은 기타니 미노루와 오청원이 기틀을 잡음) 

당시 한국, 즉 조선은 순장바둑이라는 바둑이 기본이었습니다. 

97933_0.jpg

이렇게 당시 조선에서는 순장 바둑이라고 미리 포석이 배치된 다음에 진행되는 바둑이 기본이었죠. 왜 이런 식으로 흘러갔냐면 바둑 고수들의 대국을 보니, 대부분 포석을 저렇게 짜기에 미리 놓고 시작하자는 발상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순장 바둑은 포석이 미리 짜여져 있어서 초반부터 전투적으로 진행이 되지만 포석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포석 면에서는 여타 국가보다 발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첫 착점부터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었기에 포석 연구가 잘 진행 될 수 있었고. 덴노에게 바둑을 가르키는 사람과 바둑 명문가가 (예를 들어 혼인보) 따로 있었을 정도로 바둑에 대한 지대한 투자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류성룡 정도가 바둑을 잘했거나, 임금에게 바둑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할 뿐. 명확한 자료는 없음)

이 글에서 소개해드릴 도사쿠는 혼인보 가의 4대 당주로서 (혼인보 가문이라고 해서 혈연에 의한 세습이 아니라 제자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세습함) 현대 기력 체계를 확립하고 수나누기 원리와 도사쿠 류등 포석에 대한 기틀을 잡은 사람입니다. 

fa7_1075_i1.jpg
<머리카락 없다고 놀렸다면 목 날라갔을 겁니다>

우선 기력체계부터 이야기 하자면 현재 프로들은 1단부터 시작해서 9단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승단전을 해서 이기면서 올가거너나 세계 대회 우승과 준우승으로 몇 단씩 하이패스로 올리는 방법입니다 (후자는 이세돌 때문에 생긴 승단 방법입니다) 그리고 단 마자 달리 부르는 이름이 있고 뜻도 있죠.

初단: 수졸- 졸렬하게나마 자신의 몸은 지킬줄 안다 (프로의 단은 언급 할 때 숫자는 한자로 씁니다. 아마추어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고요. 그리고 1단은 一단이라 하지 않고 初단이라고 씁니다)

二단: 약우- 어리석게 보이지만 뜻이 있게 움직인다.

三단: 투력- 어느정도 싸울 힘을 갖췄다

四단: 소교- 간단한 재주를 부릴 줄 안다

五단: 용지- 지혜를 쓸 줄 안다

六단: 통유- 바둑의 그윽한 경지에 이르렀다

七단: 구체- 모든 방면에 완성도를 보인다

八단: 좌조- 앉아서 삼리만상의 변화를 훤히 볼 수 있다

九단: 입신- 바둑의 신에 이르렀다

현재 프로 바둑계에선 이러한 단 기력체계는 거의 무쓸모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단이랑 9단이랑 대국을 해도 무조건 호선 대국 (백이 덤을 가지고 대국하는 것) 을 합니다. 1단이 9단에게 아무리 약해도 정선 (백이 덤없이 하는 대국) 이런 것은 없습니다. 다만 조훈현 시대 때엔 승강 대회 때, 낮은 기력의 사람을 만나면 덤을 약간 빼는 등의 패널티는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사쿠가 세운 기력체계는 당시에는 엄격하게 적용 됐고 거의 혼인보 슈사이 시절까지 이어집니다. 1단 차이는 상수가 무조건 백을 잡고. (당시엔 덤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둘의 집이 똑같으면 그냥 무승부입니다) 2단 차이는 하수가 두점을 까는 식이었죠. 
일례로 기력 체계가 엄격했던 오청원 시절에 (1900연대 초중반) 기타니 미노루와 오청원의 10번기 도중 (당시 둘 다 6단) 기타니가 먼저 7단으로 승단하자, 10번기가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0번기는 치수 고치기. 즉 4승 이상 차이나면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상수로 인정하며, 앞으로 그와 줄 때 핸디캡을 가지게 되는 식이었는데. 기타니가 7단으로 올라간 이상 서로 같은 치수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후 오청원이 7단으로 올라가자 다시 재개됩니다)

도사쿠 본인은 워낙 실력이 돋보적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13단이라는 별명도 붙여줬죠.

다음으로 언급할 것은 바로 도사쿠의 포석입니다. 도사쿠는 현대 포석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을 듣고 있죠. 

도사쿠류 1.jpg

야스이 센가쿠와 둔 대국입니다. (흑 2점 접. 도사쿠 백) 현대적 관점에서는 백 1로 빈 귀를 차지하고 둘텐데. 바로 걸쳐가는 것이 제 관점에서는 이색적이네요. 어쩄든 대국으로 들어가서, 2로 받고 4로 굳히고, 7로 벌리는 등. 현대 포석에서 자주 보이는 진행이 보입니다. (2로는 현대엔 날일자로 받는 것이 많이 보이지만 옛날에는 이 기보처럼 눈목자로 받는 것이 더 많이 보입니다) 

거기에 14번 수는 7번 수에 많이 벌릴 수 없으니까, 중앙 탈출을 꾀하는 수이죠.

도사쿠류 2.jpg

그 다음에 15로 좌상 흑 네 점의 근거를 노리자, 센가쿠도 같이 16으로 백을 압박합니다. 이후 도사쿠는 17이하 23으로 흑을 곤마로 몰면서 양쪽을 두며  타개 하는 모습니다. 현대에서도 자주 몰수 있는 곤마는 동행하라는 격언에 부합하는 행마이죠. 비록 이 대국은 흑이 1집승을 하지만 도사쿠류를 언급할 때 자주 나오는 기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나누기 이론은 여태까지 진행된 결과가 애매할 때, 누가 더 잘된 그림인지 수순을 바꿔서 판단하는 방법이죠. 

10번기 1.jpg

이세돌(흑)  VS 구리 (백) 10번기 1국입니다. 

이세돌이 미니 중국식으로 1로 벌린 장면입니다. 보통이라면  A가 보통이지만 1은 즉흥적인 수입니다. 

10번기 2.jpg
그러자 구리는 2로 바로 3을 교환하고 4로 공격합니다. 통렬한 응징수입니다. 거기에다 B가 아닌 A에 돌이 위치해 있어서 더 강력한 느낌도 있습니다.

10번기 3.jpg
그 후에 흑은 5번의 갈라치기 및 진행 수순은 10번 수를 당하게 되서 백에게 벌써 주도권이 넘어간 느낌입니다. 애초에 흑이 A에 뒀으면 이렇게 까지 몰릴 일은 없었겠죠. 

그럼 이 장면을 수나누기 해보겠습니다. 


10번기 4.jpg

위 기보에서 수순만 바꾼 것입니다. 1번으로 갈라치기 부터 한 후에 백 4와 5가 교환된 장면에서 6으로 공격하는 장면이죠. 그러자 흑 7로 뜬금 없이 저기에 둔 겁니다. 당연히 A로 가까히 붙어야 하는 장면인데요. 

이렇게 수나누기 이론은 아주 어렵고 애매한 수순의 시비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이론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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