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사게시판에 쓴 이유는 단순히 6번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는데 ,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꼴 ㅡ,ㅡ ;;
그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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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자유롭게 ' 담론 ' 을 하던 시대
인간을 생각하는 생물이라고 이야기 하는건 막연한 이야기이고 , 한 단계 더 나아가 구조하는 생물이라 정의하고 싶은 바입니다 .
무언가를 일정히 구조하려 하는 것은 더불어 본능에 가깝습니다 .
하지만 기원전 , 기원후를 살아갔을 수 많은 ' 우리들 ' 은 혼자 구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구조를 공유 , ' 합의 ' 하며
' 합리적 사회 구조 ' 를 구축합니다 .
서로 다른 구조의 공유는 ' 담론 ' 에서 시작됩니다 .
< 처음엔 ' 담론 ' 이라 할 만한 것을 제대로 내놓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 >
< 담론을 논하는 ' 척 ' 하는 감언이설자들과 그렇지 않은 이의 구분은 엘리트정치로 발전한다 >
가장 그 의의에 가까운 담론들을 논하던 시기는 고대 그리스 시대 , 제자백가의 시대 정도로 여겨집니다 .
그리고 이 ' 담론 ' 을 논하던 철학자들은 급기야 , ' 담론 ' 을 하는 자들과 ' 텍스트 ' 를 떠드는 자들의 구분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엘리트정치가 됩니다 .
이 엘리트들은 각 군주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담론 외 적으로 많이 이용되곤 하였습니다 .
2 . 강자의 입맛 , 그 범주 내에서 ' 담론 ' 을 하던 시대
< 군주들 중에 흔히 , ' 어렸을때부터 책을 많이 보고 영특하였다 ' 라고 하는 이들의 대부분을 선무당이라 일컬어도 과언은 아니다 >
< 멍청하기만 하면 상관 없는데 , 항상 선무당이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이다 . >
급기야 군주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 담론 ' 의 범주를 만들기 이릅니다 .
이들은 대체적으로 ' 담론 ' 할 능력은 없는 것들이라 강자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정 범주를 만들어놓고 , 그 안에서 담론을 하게 합니다 .
< 대체적으로 왕권신수설이라 하는 것들이 이런 범주 내에서 파생된 ' 담론 ' 들이다. >
< 당시에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외적 이해관계가 없이 ' 담론 ' 을 이루어냈다면 역시나 이것도 ' 담론 ' 으로 표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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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에는 이런 사례도 존재한다 ... 알아서 생각하자 ( 고소 방지용 ) >
< 이 경우는 3번에서 다시 한번 언급해본다 >
3 . 텍스트의 범주 안에서 ' 담론 ' 을 하던 시대
전반기에는 ' 종교 사회 ' 가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집니다 .
' 담론 ' 그것보다 상위 개체로 존재하는 ' 절대적 텍스트 ' 를 인정하는 범주 내에서 담론을 하던 시대입니다 .
2, 3 번은 경우에 따라 현재 진행형인 나라들도 굉장히 많지만 , 종교 역시나 사회적 약속과 구조의 피조물이므로 , ' 담론 ' 의 상위 개체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위의 사진처럼 여러가지 소위 ' 이단 ' 들의 종교 중 ' 인간신 종교 ' 들은 특성상 개개인의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사이비도 상당히 많기에 이는 2번에 포함되어야 적절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
후반기는 계몽을 거쳐 ' 이성 의존 사회 ' 가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집니다 .
이는 급기야 엘리트들(1번에서 이야기한 그런 계통의)이 합의한 텍스트를 절대화시키는 범주 내에서 담론을 하던 시대입니다 .
하지만 이것의 한계는 절대적이지 않은 인간들이 무언가 그들만의 이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 간주 ' 한 것이 절대로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발현이라는 거대한 참사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
< 간음하지 말라고 신이 말하는거랑 우리처럼 X추 달린 인간들이 말하는거랑은 천지차이다 >
死 . 파시스트의 담론
그런가하면 인간 이성의 텍스트를 기준한다는 빌미로 벌어진 파시스트의 ' 담론 ' 도 있습니다
< 어쩌면 텍스트의 빠른 붕괴를 초래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
3번의 사례가 인간이 만든 절대성은 결코 절대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그것도 가장 처참한 결과로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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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쓰는 글은 문제 해결 담론입니다 .
5 . 포스트모더니즘은 담론의 종말인가
<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일련의 전쟁으로 여긴다 >
<사상의 정통성과 담론 하는 정체성의 충돌 , 이보다 더한 보수 진보 전쟁은 없을 것이다 >
<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 반달리스트들이 정당화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
<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정의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구조된 무엇인가를 다 부정하기 때문에 ' 맹목적 파괴 ' 라는 신념의 구조를 지닌 이들 역시나 배척해야 하는 것이다 >
위 두 그림에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필자가 생각하는 ' 정상적 '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
이 글 전체에서 설명하다시피 인류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구조의 욕망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
이를테면 우리가 죽어서 어차피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위에서 파시스트가 비판받고 , 그것이 대중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역시나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
<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장 좋은 의의는 ' 담론 ' 을 자유롭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 이는 텍스트에의 해방을 의미한다 >
< 필자가 생각하는 ' 최고의 담론 ' 은 1번의 담론 사회라고 여긴다 . >
< 여러가지 ' 담론 ' 들이 자유롭게 펼쳐지되 , 그들을 압제하는 논리적 굴레가 없는 것이다 >
< 후기 구조주의는 그런 맥락에서 탄생하였고 , 따라서 신고전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
<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져다준 텍스트에서의 해방 , 자유로운 담론 그 두마리 토끼를 잡게 된 것이다 >
< 그러나 이것이 지니는 일정한 ' 구조 ' 또한 붕괴되는 것이 당연하고 , 그 당연함을 알면서도 구조하는 이유는 우리의 ' 정체성 ' 때문이다 . >
6 . 창원과학고 학생 투신 자살
< 텍스트가 지배하던 시대의 피해자는 수도 없이 많다 >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기실 텍스트를 숭배하며 살고 있는 철학적 개도국이며 ,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도래한건 결국 ' 담론 ' 의 파괴라는 난해한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ㅡ,ㅡ ;;;;;;;;;;;;;;;;;;;;;;
< 텍스트를 숭배하던지 , 아니면 허무주의적인 삶을 살던지 .... 대한민국에 살어리랏다 ㅡ,ㅡ >
텍스트에 구차하게 얽매이면서 살지 말고 , 자신의 ' 담론 ' 으로 구조하고 사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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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추천들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