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2월 28일, 후쿠시마현 타무라군의 한 마을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여교사는 저녁이 되어 일을 마치고 학교 옆의 여교사 숙소로 향했다.
아무 생각없이 화장실로 향한 여교사는 화장실 변기통 속에 그곳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남성의 구두가 보이자 화들짝 놀라서 정화조를 들여다 보자 사람의 발 같은 것을 발견했다.
여교사는 당장 학교로 뛰어가서 남아있던 교감과 동료 교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학교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급히 출동했다.
정화조 안에 사람의 시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은 발을 잡아당겨서 시신을 꺼내려 했으나, 정화조가 너무 좁아서 꺼내지지 않았다.
결국, 중장비를 동원해서 정화조를 파낸 다음 깨부수고 나서야 시신을 꺼낼 수 있었다.
시신은 남성이었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윗옷을 벗은 채로 정화조 안에 있었다. 벗은 윗옷은 가슴에 돌돌 말아 굳게 쥐고 있는 상태였다.
시신은 꺼내져서 한 번 오물을 씻어낸 뒤에 다시 소방서로 옮겨져서 한번 더 씻어낸 후 의사가 시신을 검사했다.
시신은 무릎과 팔꿈치에 긁힌 상처를 빼면 별다른 외상이 없었고 의사가 내린 사인은 저체온과 흉부순환장애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즉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살아있는 상태로 좁은 정화조로 들어가서 추운 날씨 가운데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2. 죽은 이는 누구인가?
죽은 피해자는 여교사 숙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가까운 마을에 사는 26살의 젊은 남성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의사가 내린 사인의 결론을 근거로 이 남자가 여교사를 훔쳐보려고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막상 정화조가 좁아서 빠져 나오지 못 해 그곳에 갇혀서 얼어 죽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경찰의 결론에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왜냐하면 이 청년의 평소 모습으로 봐서는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26살의 죽은 청년은 생전에 감수성이 풍부하고 고등학생 때는 밴드 활동도 했었다고 하며 이후에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유지 보수 회사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활달하고 예의바른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청년에 마을 주민들의 인기도 높았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행사가 있거나 결혼식을 할 때 이 청년에게 사회를 곧잘 부탁했고 마을 촌장 선거 때는 인망과 인기가 있던 탓에 찬조 연설을 부탁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여교사를 훔쳐보려고 정화조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마을 주민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던 것.
이런 탓인지 마을 주민 4천 여 명이 재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서를 경찰에 제출할 정도였다고 한다.
3. 사건의 의혹
게다가 여러가지 의혹도 경찰의 결론을 반박하는 요소였다.
가장 기본적으로 여교사를 훔쳐보겠다고 좁은 정화조에 숨어 들었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리하다는 반박이 제기되었다.
물론 그 청년이 남들은 전혀 몰랐던 변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몰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피해자의 구두 한짝은 여교사 숙소의 변기통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문제는 다른 한짝이었다.
경찰의 수색결과 다른 한짝은 집 근처 제방에서 발견되었다.
만약 경찰의 결론대로라면 이 청년은 여교사를 너무 훔쳐보고 싶었던 나머지 구두 한짝도 제방에 내팽개치고 정화조로 숨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상식적으로 이게 타당한 소리인 걸까?
게다가 발견된 시신의 상태도 해괴하기 짝이없다.
당시는 2월 말, 게다가 그 지역은 일본 북부의 후쿠시마다.
추운 날씨였을 거라는건 충분히 상상이 되는데,
그런 추운 상황에서 여교사를 훔쳐보겠다는 변태적인 일념이 아무리 강했다기로서니 윗옷까지 벗고 들어갔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청년의 죽기 전 행적도 불분명하다.
시신의 검안 결과 사체의 강직 정도로 보아 청년의 사망 시기는 시신 발견 이틀 전인 26일 정도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경찰의 조사로는 청년의 죽기 전 행적은 24일부터 불분명하다는 것. 청년은 23일에 선배의 송별회에 참석해서 그 다음날 새벽 1시에 술집을 나섰다.
이후 집으로 돌아간 청년은 24일 오전 10시쯤에 아버지에게 잠시 어딜 다녀오겠다고 말 한 뒤 사라져버렸다는 것.
이 청년의 승용차는 여교사 숙소 근처에서 발견되어서 청년이 적어도 이 근방에 볼일이 있었거나, 누군가를 만나려고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4. 누가 죽였는가?
마을에서 인망 높던 청년의 죽음에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당시 유례없던 열기의 촌장 선거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청년은 한 촌장 후보측으로부터 찬조 연설을 부탁받았는데 이후 부탁을 거절했다고 한다.
촌장 선거가 혼탁 과열 양상을 띄면서 이런 선거판에 염증을 느꼈다는 것.
그로 인해 원한을 품은 선거 관계자가 청년에게 굴욕적인 죽음을 선사한게 아닌가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단지 촌장 선거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는 건 너무 무리한 일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시신을 처음 발견한 여교사와의 관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 청년과 여교사는 생전에 알던 사이였는데 청년이 여교사의 애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여교사는 의문의 장난 전화에 시달려서 청년과 여교사의 애인이 함께 장난 전화를 녹음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은 여교사에게 장난 전화를 건 사람에 대해서 누군지 짐작이 간다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청년이 장난 전화를 건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그에게 제압 당해 청년을 굴욕적으로 죽게 만들기 위해 정화조로 밀어 넣은 게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추측의 영역에 남을 뿐이다.
5. 음모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관련?
그런데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이후 이 사건은 원전을 반대하는 측에 의해서 재조명되었다.
중요한 부분은 이 청년이 생전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회사의 직원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1989년 1월 6일에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재순환 펌프의 부품이 깨져서 깨진 부품의 일부가 원자로 안에 끼어 들어갔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 1988년 연말부터 이미 재순환 펌프에 이상이 있다는 경보가 울렸지만 이를 무시하고 원자로를 계속 가동한 결과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원자로의 책임자는 본래의 책임자들이 신년 휴가를 간탓에 대신 원자로를 대신 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책임자의 잘못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 본사에 소환되어 추궁받은 뒤 후쿠시마로 돌아가는 길에 우에노역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그런데 이 투신 자살한 직원은 정화조에서 의문사 당한 청년의 동료였다는 것.
음모론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정화조에서 의문사한 청년은 우에노역에서 투신 자살한 동료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다가 도쿄전력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고 결국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본의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와타나베 이츠키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바리조곤"을 제작했다.
바리조곤은 이 의문사 당한 청년의 죽음이 원자력 발전소의 어두운 부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으며,
의문사 당한 청년이 우에노역에서 투신 자살한 원전 직원을 살해한 암살자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진상을 알아 위험해진 암살자를 다시 암살자를 고용한(혹은 지시한) 쪽에서 살해하지 않았을까라는 것.
과연 정말로 이 사건은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를 확대해석한 음모론에 불과한 걸까?
출처 : 루리웹 노르가미 님(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22055966&objCate1=395&bbsId=G005&itemId=145&sortKey=depth&pageInde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