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시당초 십계명은 일상생활의 지극히 일부분만을 규정해놓았을 따름이다 >
종교는 한 시대의 텍스트에 불과함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 철학들의 구조 절차를 비교해보면 아주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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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 구약성경 ㅣ 선사 및 역사 초기 ㅡㅡㅡㅡㅡㅡ> 개개인들의 자유로운 구조 , 매우 기초적이고 철학적 기반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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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 ㅣ 특정 철학의 선지자 ㅡㅡㅡㅡㅡㅡ> 기초적 사회에 일정한 대안 , 새로운 구조를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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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후 ㅣ 선지자 사후 ㅡㅡㅡㅡㅡㅡㅡ> 후계자들이 그 구조의 부족한 부분을 덧대면서 새로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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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자들의 논리를 사실이라 가정하면 두 가지 정도는 반박이 가능합니다 .
개개인들의 자유로운 구조 , 매우 기초적이고 철학적 기반이 없는 사회 ---> 개개인은 신이 구조한대로 살아갈 따름임
기초적 사회에 일정한 대안 , 새로운 구조를 제시 ㅡㅡㅡ> 선지자의 몫이 아닌 신의 몫임
하지만 , 결정적으로 이 매개체에 추가와 편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텍스트의 성격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
후계자들이 그 구조의 부족한 부분을 덧대면서 새로워짐 ㅡㅡ> 삼위일체설을 빌려도 예수까지가 마지막 ' 신 ' 임 .
베드로와 그 외 소위 ' 예수를 영접한 후계자들 ' 까지 다 죽고 사라진 후엔
이것이 ' 신의 뜻 ' 이라 할 당위성이 전혀 없음
2 . 종교가 텍스트임을 인지하지 못하면 필시 위험하다 !
< 종교는 정녕 텍스트 놀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사례중 하나 >
우리는 이미 위에서 종교가 ' 구조화된 텍스트 ' 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그러나 현재까지도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
재미있는 사실은 , 히틀러가 기독교도들의 지지도 어느정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사랑과 박애를 기치로 삼는 기독교에서 이런 미치광이에게 권력을 주고 할렐루야 외쳤다는 사실만으로도 , 그동안 성경이라는 텍스트에 얼마나 많은 변화와 그로 말미암아 많은 주관적이고 극단적인 해석들이 나왔을지 물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 있지도 않은 본디의 텍스트로 돌아가자던 역사상 최악의 멍청이들 중 하나 >
종교가 텍스트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 마르틴 루터와 ,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이용한 아돌프 히틀러 .
그리고 이외 ' 종교 ' 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수많은 폭력과 범죄 , 궤변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수많은 사례들처럼 ,
이것들이 단순히 ' 자기 무지 ' 에서 끝나지 않고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알 수 있겠습니다 .
3 . 텍스트가 없어진 인간 , 다시 신을 찾다
< 21세기 현재 , 모든 텍스트는 붕괴되었다 >
그렇게 계몽시대를 전후로 하여 ' 절대적 텍스트 ' 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 머지않아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
절대적인 지표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
< 신이 있다 하더라도 , 그 텍스트가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 >
이후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 스탠스를 취하게 되는데 ,
하나는 일정 구조에 집착하지 않고 , ' 절대적 텍스트 ' 에 수렴할 만한 ' 생각 ' 들을 하고 사는 사람과
그리고 또 하나는 다시 옛날의 ' 텍스트 ' 를 취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
전자는 ' 절대적 텍스트 ' 의 시대가 망한 뒤에도 , 이를 대체할 텍스트들을 고민하고 또 서로 담론해보는 ' 임의적 텍스트 ' 의 시대를 이루었습니다 .
4 . 문제점
물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 위에서 이야기한 전자의 논리들이 모두 맞다는 근거를 대기 위해 이야기 하는것도 아닙니다 .
하지만 전자는 그들 스스로도 ' 수렴 ' 할 만한 것들을 생각해볼 뿐이고 ,
후자는 그것이 ' 정답 ' 이라 생각하며 어떠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
텍스트는 절대적이지 않고 , 이는 기정사실입니다 .
따라서 이후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좀 자신의 구조에 갇히지 않고 , 다양한 담론이 가능할 수 있게 생각을 열어보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