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진중권의 유일한 내전 : 옥석논쟁에 대하여
게시물ID : sisa_4162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점진적해방론
추천 : 1
조회수 : 634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7/19 18:41:00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 진중권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 ! 

시때 구분 못하고 헛소리 하는 작자들 있으면 재치있는 말 기술로 밟아주기도 하고 , 

그의 허를 찌르는 논평으로 , 하루하루의 이슈에 가장 좋은 해답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 진중권은 진보 진영의 강한 ' 이빨 ' 로써 소위 보수라는 작자들을 학살하고 다닌다는 점이 제일 유명한 이미지일 것이다 . 

그러나 이런 진중권이 딱 한 번 자기 진영 인사와 칼부림을 한적이 있다 . 

http://www.journalist.or.kr/news/photo/200512/4-KangJM_1_1_1.jpg
< 지금이야 진중권이지만 , 10년 전 까지도 이 사람이 독보적이었을 것이다 >


바로 야권의 대부 , 강준만 이라는 사람과 말이다 .

지금 사람들은 강준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것이다 . 그런 점에서 어쩌면 옥석논쟁의 의의는 최강 논객의 세대 교체라는 점도 있을지 모른다 . 

때는 2002년 지방선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 

http://tv03.search.naver.net/nhnsvc?size=120x150&quality=9&q=http://sstatic.naver.net/people/64/200805161107076531.jpg
http://tv03.search.naver.net/nhnsvc?size=120x150&quality=9&q=http://sstatic.naver.net/people/108/201106031151211121.jpg
< 당시 민주당 김민석 후보 (상) 와 민주노동당 이문옥 후보 (하) >

쉽게 말하자면 , 정권교체가 위급한 시기의 제3당 후보 당위성 논쟁 쯤 되겠다 . 

이렇게만 적어놓고 나면 당연히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밀어줌으로써 대통령까지 노려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느냐 하겠지만 , 

당시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은 이미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이었고 , 결과 역시나 김민석과 이문옥의 표를 합쳐도 이기지 못할 만큼 대승을 거두었다 . 

그러니 , 당시 이문옥 후보를 지지하던 진중권의 당위성이 ' 어차피의 논리 ' 를 등에 업고 어느정도 선전할 수 있었음이다 . 

하지만 이 논쟁의 의의는 다른 곳에 있다 . 

1 . 야권 연대 철학의 기반 

' 어차피의 논리 ' 가 있더라도 , 정권교체가 급급한 그 시기에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어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여론은 야권에서 당연시되었다 . 

하지만 진중권은 이 정치공학의 당위성에 최초로 도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

사실 , 애초부터 두 정당은 사상도 다르고 특히나 이문옥 후보는 상대적으로 훨씬 낮은 위치에서 동일선상에까지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당위성이 있는 셈이다 . 

이문옥 후보를 비난할 근거는 오로지 정치공학적 측면이지 않은가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4/Hcroh1.jpg/225px-Hcroh1.jpg
< 2010년 지방선거의 노회찬 후보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 >

이것을 필자는 야권연대 철학이 공론화된 최초의 시점으로 본다 . 

이러한 논쟁이 없었더라면 , 지금의 민주당이 미쳤다고 자신들의 당권 및 공천을 3당 요인들에게 헌납하겠는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 정치공학 ) 진짜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를 ( 3당의 당위성 ) 보여준 진중권 같은 사람 덕택일지도 모른다 . 

2 . 정치외교학의 몰락 

이렇게 후보의 당위성이나 진정성보다 정치공학적 승패 여부를 훨씬 더 중요시하던 당시엔 정치학도 꽤나 전문성이 있었고 , 강준만은 이 학문의 꼭대기에 있었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 ( 소위 기성정치라고 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

강준만이 이 당시 주장하던 것도 그 유명한 ' 택일적 경쟁 관계의 특수성의 원칙 ' 이었으니 말이다 .

이 말은 쉽게 말하면 결국 ' 서울시장 넘어가면 대통령도 위험할지 누가 아나 ? ' 라는 소리이다 . 

http://help.adobe.com/ko_KR/indesign/cs/using/images/iu_09.png
< 정치학은 결국 우리의 대체적 생각을 텍스트로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 그리고 우리의 정치 이야기는 항상 ' 아님 말고 ' 를 전제로 한다 >

그러나 지방선거는 (예상대로) 이명박의 대승으로 끝이 났고 , 심지어 대선은 노무현이 당선되는 바람에 이 논리가 완전히 박살나버린다 .

결국 3당 후보의 당위성을 무시해가며 주장했던 정치공학적 담론마저 무너진 셈이다 .

그렇게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창당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판도가 철저한 여론 중심 정치로 넘어오게 되면서 학문적 정치 , 공학적 정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

http://c.ask.nate.com/imgs/qrsi.php/8609258/11280796/0/1/A/1.jpg
< 지금 게리멘더링 배우면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거의 써먹지 못할 것이다  >

세계적으로 별로 유례가 없는 정치적 시대 변혁이 단순히 기성정치에 대한 싫증 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 

애초부터 기성정치도 국민들이 지지했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다만 , 그러한 것들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에 용감하게 칼부리를 들이대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


3 . 그 밖에 ..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 옥석논쟁은 다시금 재현될 ' 뻔 ' 했다 . 

http://archivenew.vop.co.kr/images/bd290b58e9c92b56aa42749bf88c2aad/2010-05/marked/03065549_s100503798964.jpg
< 독자의 당시 표정과 지금의 표정이 다른 짤 . jpg >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단독출마로 인한 표 분산 때문에 한명숙 후보가 패배했다고 하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 제 2의 옥석논쟁이 일어날까 했으나 

진중권의 일침만이 있었고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 

어쩌면 이건 ' 이길 수 ' 있었던 선거라는 아쉬움이 거셌던 것에 비하면 허무하게 끝난 셈이다 .

그리고 훗날 재보선과 박원순의 당선으로 이어지는 최상의 엔딩이 탄생하면서 이 당시의 패배를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다 .


.
.

그런데 이 이후로 노회찬 전 의원은 자세를 완전히 바꾸고 합당주의를 고수하기 시작한다 ㅡ,ㅡ ; 

http://z.enha.kr/pds/9/99/1_80.jpg

< 들러리 느낌을 완전히 감출 수가 없다 ㅡ,ㅡ ; 언제쯤 pd 의원을 다시 볼 수 있을까?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추천 많이 부탁드립니다 ^^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