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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0056.html
2020년 6월 17일 대법원 공개변론이 열린 사건은 기아자동차가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 규정을 지키지 않은 데 따른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다. 기아차는 단체협약 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를 특별 채용하도록 규정한 것이 민법상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제103조)의 법률행위로 무효라고 주장한다.
무효라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즉 고용 세습을 가능하게하기 때문에 다른 지원자의 기회를 박탈하고 고용 세습을 가져와서 불공정하므로,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법률행위로 무효라는 것이다.
경제지를 비롯한 보수 언론에서는 이런 문제를 기업과 노조의 대립, 이들에 대한 찬반 문제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중립적인 시각에서 보면 기아차의 이런 주장은 법을 좀만 아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괘씸하고 파렴치한 짓거리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측이 내세우는 가장 핵심적인 논거, 즉 고용 세습, 채용 공정성 훼손 문제가 알고 보면 실재하지 않는 문제, 즉 완전 허수아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아차에게는 공정성을 훼손하는(?) 고용 세습을 대신하는 금전적 배상이라는 선택이 언제나 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이 사건의 실질적인 쟁점은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것일 뿐, 고용세습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이 조항이 정말로 채용의 공정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기아차가 공정성을 지키기로 결심했다면, 기아차는 산재 유족에 대한 채용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고용 세습 문제나 공정성 훼손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기아차는 이에 대해 계약 위반을 이유로 금전적 손해를 유족에게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는 특별 채용이라는 보상 방법 때문인 것이지 산재유족에 대한 보상 자체가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건 아니다.
반면 이 조항이 무효가 되면 처음부터 지킬 의무가 없기 때문에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의무도 당연히 발생하지 않게 된다. 쉽게 말해 조항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다. 기아차가 무효를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즉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측의 입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게 다른 지원자들에게 사회질서를 훼손할 정도로 불공한 조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불공정하고 사회질서에 반한다는 행위를 한 것은 누구인가? 그렇게 하겠다고 합의해 준 것은 바로 자신들이지 않은가? 그러면서 이제 와서 스스로 한 약속을 뒤집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파렴치한 짓거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말고도 사측에게는 또 다른 가장 바람직하면서도 당연한 선택이 있는데, 그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를 애초에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다. 사측이 내세우는 논리, 즉 고용 세습은 불공하다는 논리는 산재로 인한 사망 자체가 당연하고도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사망자가 없으면 고용 세습 문제는 발생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치 산재 사망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세습은 안 된다고 나오는 것은 윤리적 측면에서 대단히 잘못된 태도인 것이다. 이런 자들의 손을 들어준 1심과 2심의 판사라는 것들은 도대체 진심 대가리에 뭐가 든 인간들인지 그게 궁금하다.
출처 | https://blog.naver.com/novushomo/2220077860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