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외국인에게 성폭행당했습니다.(스압주의)
게시물ID : menbung_588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손다리미
추천 : 1
조회수 : 385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3/30 21:31:01
일단 저에 대해서 먼저 소개를 하자면,
20살 때부터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심해져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어져서 휴학을 결정했지만 일을 하다가도 세 달도 안 되어서 그만두기를 반복하고는 했습니다.

저는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숙부 댁에서 일하고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인천으로 올라와서 살게 된 것이죠.
숙부께서는 현재 편찮으셔서 요양원에 계시고 저는 사촌동생과 함께 살지만 함께할 시간이 없어서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집안일을 하는 등 전부 저 혼자 자취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저는 필리핀에서 몇년 유학을 다녀왔지만 영어 연습을 하지 못하다보니 영어 실력이 퇴화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서인지 외국인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고 국적이나 성별은 개의치 않고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는 했습니다.

3월 21일 인천 수인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한 흑인을 만나 먼저 말을 걸었고 대화하다보니까 가나 사람이라더군요.
하지만 제 귀에는 케냐라고 들려 잠시 착각했습니다. 
(저는 소음이 있으면 집중력이 분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에 얼마동안 거주했냐고 물어봤더니 4년차라고 하더군요. 
"그럼 한국말 잘하겠네?"라고 물어보니까 그렇지는 않대요.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길래 저는 순간적으로 기독교 천주교 구분이 안 가서 크리스찬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크리스찬이고 무슬림 친구가 한국말을 잘해서 일을 도와준다고 하더군요.
저는 당시에 폰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고, 직장 동료들에게 제 영어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 친구 보고 언제든 놀러오라고 전화번호를 교환했습니다. 
그 뒤로 7시 37분 문자를 통해 나는 카톨릭집안에서 자랐다고 말을 정정했습니다.

 3월 28일 
그 친구가 밥을 저한테 사주겠다고 문자하더군요.
그래서 7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전철 타고 오느라 늦어진다고 그 다음에는 8시 10분에 도착한다고 하더라구요.
결국 저녁 8시40분에 만나 역에서 20분 거리에 떨어져있는 일식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길래 저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거기에서 제 현재 나이를 밝혔고, 그는 29살이라고 했습니다.
사케를 반병씩 나눠마셨고, 
10시에 식당이 마감한다고 해서 여유를 부릴 수 없어 9시 55분에 서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워서 바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사과향 나는 보드카 한 잔을 시켰고 흑인은 안 마신다고 했지만 결국 맥주 한 병을 마셨습니다.
흑인이 말하길 
"오늘은 너의 생일이니까 내가 쏘겠다"(물론 실제로 제 생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술도 들어갔고 걱정 없이 신이 났습니다.

저는 클럽에 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부평에 있는 클럽에 가보고 싶어서 가봤더니 신분증이 없으니 출입이 불가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주민등록증을 안 챙기고 나와서 20분 거리를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혹시나 해서 보조배터리 등,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귀걸이와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이태원에 흑인이 아는 클럽이 있다고 했으나 인천에서 거기까지는 너무 멀어서 택시비가 4만원 넘게 나오기 때문에 제가 부담스러우니까 제가 다음에 가자고 했지만 걱정 말라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택시를 타고 40분을 달려 이태원 한 펍 라운지에 도착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참 많았고 저는 칵테일 두 잔을 시켜먹고 춤추며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그 흑인은 잭 다니엘과 콜라를 시켜 저한테 권했고 저는 2~3잔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많이 취하지 않아서 담배 한 대를 피고 어떤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했는 지 전부 기억이 납니다.
4시가 다 되어가자 파장 분위기라서 나가기로 했는데 제 폰과 민증, 지갑이 있는 가방을 자기가 매고 책임지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집에 가고 싶어서 이리 달라고 잡아당겼지만 절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길가에서 울고 소리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 아무도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지 않더군요.

택시에 타서도 저는 집 주소를 말했지만 기사님께서는 흑인이 말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제가 가방을 돌려달라면서 잡아당겼지만 그대로 제 팔을 잡고 끌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모텔 앞으로 제가 끌려가다가 무서워서 출발하려는 트럭의 와이퍼를 잡고 집에 가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으나 기사님은 나와서 양팔을 허리에 얹고 화가 났다는 듯이? 한심하다는듯이? 자세를 취하셨는데 저는 취했고 우느라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절망감과 무력감이 몸을 지배하는 느낌이어서 약하게 저항했지만 어쨋든 모양새는 같이 모텔에 가게 되었습니다.

CCTV에 제가 울면서 열심히 저항했던 모습이 찍혀있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자꾸 저항하니까 무릎 꿇고 흑인이 애원하기를,"사랑한다 너를 응원한다 너를 케어한다"이런 식으로 저를 달랬습니다.
제 손등과 머리에 키스를 해서 침이 묻었을 것 같아서 나중에 해바라기 센터에서 DNA 검출을 했습니다.
그 뒤로 좁고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모텔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저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피곤했고 벗어날 길이 없어보여서 일단 모텔 아주머니께 "7시에 나갈게요!"라고 소리질렀습니다.
당시에 제 심정은 누구도 나를 도와줄 것 같지가 않았고 무기력했지만 무슨 일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변명하자면, 저는 술에 취해서 판단력이 흐려져있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투명한 화장실 문틈으로 저를 지켜보려고 하길래 담배 피러 나갔다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제 귀걸이를 빼고 세수를 하며 잘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방 안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남자친구에게서 전화를 했으나 저는 "나에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아버지께 전화해주세요, 사랑해요!"라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남자친구의 폰은 배터리가 없어서 곧 끊어졌습니다.
게다가 저는 술과 감정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도움 요청을 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고 싶었습니다만, 말로는 "잘 자"라고 하면서 흑인이 자꾸 제 머리와 어깨, 허리, 엉덩이를 만졌습니다.
소름이 끼친 저는 싫다고 그만하라고 만지지 말라고 거절 의사를 표시했으나 손을 거두는 척 하면서 지속적으로 시도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겉옷을 여미고 이불로 온 몸을 감싸는 것으로 방어했으나, 검은 손은 이불을 강제로 잡아당기고 겉옷의 단추를 풀고 제 옷 속으로 들어와 브래지어 후크를 풀려고 하더군요.
흑인은 제게 한 달에 몇십만원의 돈을 준다고 했고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외국인 등록증 사진을 찍게 해줄테니 자신을 신뢰해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자기가 시도했던 회유와 설득이 먹히지 않자 아침 7시쯤에 결국 본색을 드러내며 제 스타킹과 팬티를 벗겨서 강간을 시도했습니다.
 체중을 실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며 제 팔다리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른손을 빼서 목을 조르듯이 막았고, 왼손으로 그의 성기를 잡아 삽입을 막았습니다.
 모텔 사모님께서 방을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사모님께서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보셨습니다.
흑인은 하의를 주섬 챙겨입으며 "What's wrong with u"라고 저한테 잘못이 있다는듯이 탓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머니께 변명을 하러 나갔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7시 22분에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위치가 확인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모텔 안에서는 신호가 안잡혀서 그런지 전화는 1분만에 끊어졌고, 저는 다시 112에 전화했으나 다른 파출소에 연결되었는 지 위치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밖이 소란스러워져서 나가보니까 이미 사모님께서 신고하셨는 지 경찰관들이 와있었습니다.
저는 생리 중이었기 때문에 우선 팬티부터 챙겨입었고,
 상황 설명을 위해서 경찰관에게 다가가 "강간 미수를 당했어요"라고 했습니다.
한 경찰관이 방으로 들어가서 현장 사진을 찍었는데, 제가 속옷만 챙겨입었기 때문에 침대 위에는 스타킹만이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경찰차에 타려고 나가는데 모텔 아줌마가 저 보고 뭐라 하길래 "니 딸이 당해도 그딴말할끼가"라고 쏘아붙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흑인이 저한테 문자로 [경찰들을 왜 부른 거냐, 떠나라고 해라]라고 마치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 지 모르겠다는듯해보였습니다.
제 주민등록증을 빼앗긴 상태였는데 경찰에 이미 제출했다고 하더군요.
한 여경이 와서 옆자리에 탔고 대강 상황 설명을 다시 했습니다.
그렇게 파출소로 갔는데 마침 교대 시간이라서 거기에 있던 20여명의 경찰관들이 전부 저를 쳐다보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태원 파출소의 시설은 열악하여 저는 3층의 추운 주방에서 여경들에게 당시 상황을 진술하게 됩니다.
그렇게 밴을 타고 대학병원 해바라기 센터에 가서 저는 또 다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고 안정실 침대에 누워있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생리 중이고 피곤한데다가, 안구건조증이 있는데 렌즈를 끼고 12시간째였기 때문에 눈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늙은 간호사가 와서 저한테 "그러게 왜 그 남자 따라갔냐"라고 수치를 주더군요.
그래서 제가 변명했습니다.
"친구로서 믿었는데 그 신뢰를 깨뜨린 것은 가해자"
그런데 "남자는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라고 웃기는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 간호사는 자기 컨디션이 안좋다면서 왼손 DNA인지 오른손 DNA를 채취했는 지 헷갈려서 채취를 한 번 더 하게 합니다.
남자친구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는 자기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잘 자라고 책을 읽어주길래 저는 잠시나마 잠에 들었지만,
 남친과의 전화를 끊고나자 정신이 다시 또렷해지며 사건 당시의 불안함과 자책감으로 인한 괴로움이 제 심신을 덮쳤습니다.
피곤함도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손등과 손톱에서 DNA를 채취하고, 속옷과 스타킹은 해바라기 센터에 제출하게 됩니다.
해바라기 센터에서 생리대를 바꿔 착용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스트레스때문인지 몇시간동안 생리가 멈추더라고요.

그렇게 10시간 넘게 녹화 및 녹취 동의서, 가명 사용 동의서, 국선 변호사 선임 등 사인을 하는데, 국선 변호사가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여성 변호사가 없어서 외부에서 불러온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다시 안정실에 들어가 대기하다보니까 15시였는데 그때가 되어서야 밥 안먹냐고 센터분들이 물어보더군요.
국선 변호사 기다리느라 다음 날짜에 오시겠냐고 물어보던데, 결국 변호사는 6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조서인가? 쓰면서 저는 변호사 입회 하에 진술하고, 도장 찍고 그러고 집에 가려는데, 용산경찰서에 제 민증이 전달되었다는 말을 듣고 차없는 뚜벅이라서 거기까지 전철 타고 갔습니다.
 제가 마음이 약해진 상태여서 그런가 아무도 저한테 밥은 먹었냐고 안 물어보는 게 괜히 서럽더라구요.
저는 그렇게 2시간에 걸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착하고 보니까 22시가 다 되었더라고요. 
24시간째 끼고 있던 렌즈를 빼고 샤워할 힘이 없어서 세수만 깨끗하게 하고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외국인들하고 말을 하기가 힘들겠습니다.
영어 실력도 갈수록 더 퇴화하겠지요.
필리핀에 유학을 다녀온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성에 대해서도 원래 덩치 큰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게 있었는데 더 심해졌네요.
제가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저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위 글을 올린 이유는 사건 경위와 전후 사정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기 때문에 혹시 앞뒤가 안 맞거나 의문점이 생긴 부분이 있으면 덧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