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펴낸 세월호참사 특조위 조사관 박상은씨 인터뷰.. "원인 조사보다 처벌에 초점 맞춘 수사로 종합적 원인 밝히지 못해"
날씨는 맑고 바다는 잔잔했다.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6800t급 카페리선 세월호에서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로 다급한 조난신고 전화(오전 8시52분)가 걸려왔다. 최초 신고자 학생의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했다.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에는 승객들의 구조 요청 전화가 그 뒤로도 오전 9시23분까지 18차례나 빗발쳤다.
오전 9시30분이 지나 목포해경 헬기와 연안경비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모두가 기대한 희소식은 없었다. 오전 10시17분,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라는 열일곱 살 아이의 휴대전화 문자를 끝으로 세월호와 세상 사이의 연결이 끊겼다. 오전 10시30분, 세월호는 거꾸로 뒤집힌 채 가라앉았다. 탑승자 476명 중 사망 304명, 실종 10명. 희생자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남녀 학생 250명도 포함됐다. 텔레비전 생중계 뉴스를 가슴 졸이며 지켜본 국민은 탄식했다. “이것이 국가인가?”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20709113807967 |